AI 닥터가 온다

AI로 신약 개발을 넘어 질병 진단과 예측, 치료까지 가능해졌다. AI는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가 의료계다. 난치병이나 희귀질환처럼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물론이고, 일반 진료에서도 AI의 도움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더 나아가 AI가 신약 개발과 치매 예방 등 건강 증진 활동으로 인류의 건강한 삶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기대 때문에 전 세계 의료기관은 AI 도입에 관심이 많아 시장이 급속도로 커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의사의 진료를 돕고 검사 결과 분석 등을 하는 의료 AI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22년 10억7000만 달러(약 1조4700억원)에서 10년 만인 2032년에 217억 달러(약 29조7800억원)로 20배 가까이 급성장할 전망이다.

일러스트. 장인범

일러스트. 장인범

의사도 놀라는 AI 진료 능력

의료 AI도 여러 가지가 있다. 검사 결과 분석과 진단 보조, 환자 관리와 의무기록 작성, 신약 개발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이 의료 거대언어모델(LLM)이다. 오픈AI가 내놓은 ‘챗GPT’처럼 의료 분야의 질문을 던지면 척척박사처럼 대답해 주는 것은 물론 진단까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의사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높은 수준의 결과를 보여주는 의료 LLM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 스타트업 오픈 에비던스가 만든 ‘오픈 에비던스’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을 주축으로 개발된 오픈 에비던스는 의사들을 위한 대화형 AI다. 챗GPT처럼 의사들이 자연어로 대화하듯 질문을 던지면 방대한 의료 자료와 최신 연구 논문 등을 참고해 답변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그 결과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챗GPT같이 대중적이고 뛰어난 AI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환각오류(Hallucination)가 있는데, 과연 오픈 에비던스의 대답이 정확할지 의문이 따른다. 그런데 실제로 이를 사용해 본 의사들의 답변은 의외였다. 오픈 에비던스의 답변은 깜짝 놀랄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정주연 카카오벤처스 투자심사역은 “오픈 에비던스의 답변이 아주 정확하고 거짓이 없어 의사들이 신뢰한다”라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픈 에비던스는 증거 기반 의학(EMB)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즉 미국의학협회저널(JAMA),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 등 의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저널에 실린 논문과 발표 자료, 각종 질환자들의 치료 데이터 등을 토대로 한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오픈 에비던스를 도입하는 병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니얼 내들러 오픈 에비던스 창업자는 미국 의사의 25% 이상이 매일 오픈 에비던스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힘입어 오픈 에비던스는 유명 벤처투자사 세콰이어 캐피털 등으로부터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1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 AI 진단 오케스트레이터(MAI-DxO)’도 의료계에서 주목하는 의료 LLM이다. MAI-DxO는 가설 설정, 검사 선택, 증상 해석 등 각각의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여러 AI를 조율해 추론 기법으로 최종 진단을 도출한다. 마치 바이올린, 트럼펫, 팀파니 등 다양한 악기 연주자가 모여 하모니를 이루도록 이끄는 지휘자 같은 역할이다.


MAI-DxO 역시 의료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내과 전문의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부대표 겸 투자심사역은 “MS의 의료 AI 실력이 깜짝 놀랄 정도”라고 감탄했다. MS에 따르면 권위 있는 의학 저널에 실린 복잡한 의료 사례 304건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숙련된 전문의 그룹보다 4배 이상 높은 진단 정확도를 기록했다.

메드팜 M의 미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 이미지<p>

메드팜 M의 미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 이미지

구글도 구글리서치와 구글클라우드를 통해 ‘메드팜2(Med-PaLM 2)’라는 의료 LLM을 개발했다. 메드팜2는 구글이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제미나이’가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학습해 의료 분야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답을 해준다. 구글에 따르면 메드팜2는 미국의사면허시험(USMLE)에서 높은 성적을 보였다. 이에 미국 메이요클리닉은 의료진 교육에 메드팜2를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구글은 후속 모델로 ‘메드팜 M(Med-PaLM M)’도 개발했다. 메드팜M은 문자는 물론 그림, 소리, 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를 다루는 일종의 멀티모달 AI다. 따라서 문서 자료를 넘어 방사선 촬영 기록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의료 이미지까지 분석한다.

의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그렇다면 의사들은 이 같은 의료 AI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경우에 따라 의사들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사들의 반응은 반대였다. 오진 가능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반기는 편이다. 정주연 카카오벤처스 투자심사역은 “의사들도 생각이 변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의사들도 진료가 부정확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하는데 의료 AI로 오진 가능성을 줄일 수 있어 반긴다”며 “오히려 AI에 대한 저항감이 없고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의료 AI는 의사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최신 의료 정보를 반영하기 때문에 진료 효율성을 높인다. 방대한 의학 논문과 자료가 쏟아지는데 진료에 쫓기는 의사들이 이를 모두 숙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의사를 대신해 AI가 이런 최신 의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의사들이 진료하는 데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분석부터 검사까지, 진단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의료 AI

의료 영상 분석은 AI가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분야다. 이 분야의 대표 기업이 국내 스타트업 루닛이다. 의사들이 설립한 이 업체가 개발한 AI ‘루닛인사이트’는 방사선 촬영이나 CT 영상 등을 AI가 분석해 폐암 징후 등을 찾아낸다. 특히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크기의 이상 징후까지 발견해 의사의 진단을 돕는다. 앞으로 이 업체는 전신 암 진단까지 가능한 AI를 개발할 계획이다.


딥노이드가 개발한 ‘딥AI’도 흉부 방사선 촬영 사진과 뇌 자기공명혈관촬영(MRA) 영상 등을 분석해 의료진의 판독을 보조한다. 코어라인소프트 역시 흉부와 두경부 CT 영상을 분석하는 다양한 AI 솔루션을 갖고 있다. 특히 ‘에이뷰 LCS 플러스’ 솔루션은 폐결절, 폐기종, 관상동맥 석화 현상 등을 AI로 찾아낸다. 코어라인소프트는 AI 솔루션을 앞세워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5개국이 공동 진행하는 유럽 폐암 검진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제이엘케이는 뇌 촬영 영상 분석에 특화한 AI업체다. 이 업체는 CT와 MRA 등 각종 의료 촬영 장치로 찍은 영상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뇌출혈, 뇌경색, 뇌동맥류, 치매 등 뇌와 관련한 다양한 질환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이 업체는 한국인 뇌MR영상 데이터센터와 독점계약을 맺고 센터가 10년간 확보한 140만 장 이상의 뇌 영상 데이터를 활용해 AI를 개발했다.

흉부 X-ray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nbsp;10가지 비정상 소견을 진단·검출 보조하는 루닛인사이트 CXR<p>

흉부 X-ray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10가지 비정상 소견을 진단·검출 보조하는 루닛인사이트 CXR

뷰노는 AI를 이용한 심전도 측정 의료 장치 ‘하티브 P30’을 개발했다. 이 장치는 AI가 이용자의 심전도를 분석해 심방세동, 빈맥 등 이상 징후를 찾아낸다. 이 업체는 의료 AI의 해외 진출을 위해 올해 초 일본 최대 의료정보업체 M3와 함께 일본에서 의료 AI 전문 스타트업 M3 AI도 설립했다.


응급의학과 의사인 김중희 대표가 설립한 알피는 AI를 이용해 심전도검사 결과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ECG버디’를 개발했다. 김중희 대표는 “기존 심전도검사 결과를 판독할 때 효용이 떨어지고 정확도가 낮다는 것이 문제”라며 “응급 상황에서 심전도 결과를 판독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짚었다.


이에 따라 알피는 심전도검사 결과를 막대그래프와 바이오마커로 표시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ECG버디는 현재 각 대학병원을 포함해 45개 병원이 도입했다. 김중희 대표는 “앞으로 스마트워치 등과 연동해 개인도 심전도 결과를 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착용형 디지털 기기의 성능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의대 출신 의사 4명이 설립한 스타트업 포트레이는 AI로 생체 정보를 분석해 신약 개발을 돕는 일을 한다. 이들이 AI로 분석하는 것은 공간전사체다. 공간전사체는 인체 조직의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편 배달을 위한 번지수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인체 내 공간전사체를 알면 암세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만큼 치료약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 업체가 개발한 AI는 공간전사체를 분석해 암세포를 추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와 함께 약물을 암세포에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신약 물질도 AI로 개발한다.

질병 예방과 예측, 신약 개발의 히든 카드

질병 예방과 예측에도 AI가 유용하게 쓰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치매 예방이다. 한국전기연구원 전기의료기기연구단은 노인들의 언어, 뇌파 등을 수집 분석해 알츠하이머 징후를 찾아내는 AI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100여 명을 대상으로 AI 실증 실험을 진행한 결과 6명의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7명의 의심 대상자를 선별했다.

제이엘케이가 개발한 치매 검진에 활용할 수 있는 AI 기반 뇌 노화 분석 솔루션, 에이트로스캔<p>

제이엘케이가 개발한 치매 검진에 활용할 수 있는 AI 기반 뇌 노화 분석 솔루션, 에이트로스캔

의사 출신 노유헌 대표가 설립한 이모코그는 치매 초기에 해당하는 경도인지장애의 진행을 늦추는 디지털 치료용 앱 ‘코그테라’를 개발했다. 코그테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을 이용자가 따라 해 기억력을 개선하도록 만든 앱이다. 


노유헌 대표는 “코그테라는 국내 최초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경도인지장애 디지털 치료제”라며 “소프트웨어로 치료와 관리를 동시에 해준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버튼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을 위해 버튼 조작 없이 말로 진행하도록 개발했다”며 “12주간 훈련을 통해 효과를 측정한 결과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에게 디지털 치료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일반적 생각을 깨트렸다”라고 덧붙였다.


많은 여성이 다달이 겪는 월경일 예측과 생리통 해소에도 AI가 쓰인다. 디에이엘이 개발한 AI 소프트웨어 ‘달채비’는 이용자가 기록한 월경 상태를 분석해 다음 월경일을 예측한다. 월경이 불규칙한 사람들은 다음 월경일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이 업체는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과 함께 AI를 이용한 월경 유형 검사도 개발했다. MBTI처럼 30가지 질문을 통해 이용자의 월경 유형을 분석하는 AI다. 이 업체는 의외로 많은 여성이 자신의 월경 관련 신체 변화를 잘 모른다는 데 착안해 AI를 이용한 월경 유형 검사를 개발했다. 월경 유형을 파악하고 월경 습관을 기록하면 불편한 월경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AI를 빼놓을 수 없다. MS는 세계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함께 2019년 AI혁신연구소를 세워 AI를 활용한 신약 연구를 추진 중이다. 얀센은 영국의 AI 스타트업 베네볼렌트와 손잡고 AI를 이용한 난치성 표적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머크도 영국의 AI 스타트업 베네볼렌트와 엑스사이언티아 2개사에 투자한 데 이어 아톰와이즈와 협업해 AI로 에볼라 치료제용 후보 물질을 찾아냈다.


국내 제약업계에서도 대웅제약이 AI를 이용한 신약연구팀을 구성했고, 유한양행은 항암제 연구를 위해 AI 스타트업 아이젠사이언스와 손잡았다. SK케미칼도 AI 스타트업과 함께 간염 및 폐섬유증 치료를 위한 후보 물질을 개발했다.

AI가 바꾸는 의료, 넘어야 할 벽은?

그렇다면 의료 AI가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제도적으로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른다. 각 나라마다 의료법이 달라 AI를 어디까지 활용할지 제각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책임성과 윤리성이다. 의료 AI가 잘못 판단할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지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이 달린 분야만큼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AI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공통적이다.


데이터 활용도 마찬가지다. 의료는 쇼핑이나 검색과 달리 전 세계가 공통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다. 각 나라마다 국민의 유전형질이 다르고 건강 정보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인들의 건강 정보를 활용한 AI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무리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 AI는 해외보다 자국민의 건강 정보를 활용한 자체 개발 AI가 중요하다. 


물론 해외 AI 동향을 참고할 수 있지만 이를 활용하려면 해당 지역 구성원들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이유로 세계 각국은 해외에서 등장한 AI가 자국민의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데 매우 민감하다. 의료 분야에서는 이 같은 데이터의 AI 활용이 지극히 제한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건강보험 적용 문제도 남아 있다. 신약이든 진단 기기든 의료 분야에서 널리 쓰이려면 건강보험 적용이 필수다. 그러려면 규제 기관의 인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만약 의료 AI를 진료에 도입할 경우 AI의 진료 수가를 어떻게 적용할지가 관건이다. 


미국은 의사의 진료 시간과 진료 난이도에 따라 보험 수가를 적용하는데, AI의 경우 어떻게 적용할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만약 의료 AI에 보험을 적용하면 미국의 경우 의사의 진료 수가에서 이를 빼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보험료 적용 문제에 대해서는 그만큼 논의가 필요하다.   


최연진(한국일보 IT 전문기자) denmagazine@mcircle.biz

박유리 에디터 abrazo@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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