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차 여행자의 핫한 투어리즘 사가현, 루트 그랑블루
사가현 가라쓰에서 하도미사키까지, 규슈 여행 고수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루트 그랑블루. 드라이브, 버거, 활오징어, 해중 전망까지 담은 생소하고 깊은 일본 여행지입니다.
풍부한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역사까지, 동선이 짧아도 감성을 채우고 추억을 만들 최고의 투어리즘이 이곳에 있다.
사가현 가라쓰시 가라후사 바이패스에서 하토미사키까지 이어지는 약 20km의 드라이브 코스를 ‘루트 그랑브루’라 부른다. 눈치챘겠지만, 코스의 이름은 1988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서 따왔다. <그랑브루>의 실제 모델인 자크 마욜(Jacques Mayol). 인류 최초로 바닷속 100m까지 잠수한 전설의 다이버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가라쓰에서 종종 여름휴가를 보냈다. 사가현 북서부의 짙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를 경험하며 꿈을 키웠을 것이라는 나름의 스토리텔링이다.
그런데 프리다이버의 이야기를 빼고서라도, 루트 그랑브루는 규슈를 좀 다녀봤다는 N차 여행자에게 가장 핫한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탁월한 전망 품은 가라쓰성
![]() 가라츠성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데라자와 히로타카가 7년에 걸쳐 완공한 성으로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 루트 그랑브루의 시작점에서 가라쓰성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최상층 천수각의 360도 파노라마 전망 때문이다. 성이 학 대가리라면 가라쓰만과 마쓰우라강으로 이어지는 우아한 곡선은 마치 날개와 같다. 마이즈루성(舞鶴城, 무학성)으로 불리는 이유를 확인했다면 다음은 니지노마쓰바라(虹の松原)의 오롯한 풍광을 감상할 차례다.
해안을 따라 무지개처럼 우아하게 펼쳐진 숲은 무려 100만 그루의 소나무를 품고 있다. 본디 방풍림으로 식재되었는데, 360여 년이 지난 현재의 규모는 폭 500m, 길이 약 4.5km에 달한다. 니지노마쓰바라는 시즈오카 미호노마쓰바라(三保の松原), 후쿠이현 게히노마쓰바라(気比の松原)와 더불어 일본 3대 명숲으로 꼽히며, NHK가 선정한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일본의 풍경’ 5위에 오르기도 했다.
![]() 가라츠버거 버스 |
한편, 송림 내에는 ‘규슈 4대 버거’로 통하는 햄버거 맛집이 있다. 이름하여, 가라쓰버거. 업력 60년에 6개 지점을 운영 중이지만, 놀랍게도 매장의 정체는 빨간 버스가 고작이다.
놀랍도록 정교한 자연의 조화 나나쓰가마
![]() 나나쓰가마 |
겐카이나다(玄界灘)의 크고 거친 파도는 사가현 최고의 경승이라는 나나쓰가마(七つ釜)를 만들어냈다. 이곳은 가라쓰성에서 20km, 루트 그랑브루를 따라 30분쯤 달리다. 북쪽 해안으로 조금만 더 접근하면 만날 수 있다. 7개의 해식동굴로 이루어진 나나쓰가마의 경관은 가히 압도적이다. 거기에 동굴 밖에서 솟아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신비하고 기묘하기까지 하다. 용암과 침식의 조화, 이토록 정교한 자연의 솜씨로 빚어낸 절경은 당연히 일본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나나쓰가마라는 이름은 ‘7개의 가마솥’이라는 뜻이다. 그중 가장 큰 동굴은 폭 약 3m, 깊이 약 110m로 유람선을 타고 탐방해야 할 정도다. 이마저 파도가 잔잔할 때만 접근이 허용된다.
나나쓰가마는 자크 마욜과 특히 인연이 깊다. 그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돌고래들의 유영을 보며 잠수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나나쓰가마가 세계적 다이빙의 명소로 꼽히는 이유가 납득이 된다.
요부코에서의 놓칠 것 없는 하루
![]() 요부코 아침시장 |
요부코(呼子)는 가라쓰시 북쪽 해안가에 있는 어항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아침 시장(呼子の朝市)은 일본 어시장 중 세 손가락 안에 들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약 200m 길이의 골목에 오전 한때 나타났다 사라지는 노점이 40~70개나 된다. 이곳 바다에서 잡히는 신선한 해산물에 건어물이 주종을 이루지만, 각종 채소와 식자재를 비롯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 오래전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인기를 구가했을 추억의 소품까지 실로 다양하다.
요부코 주변 해역은 겐카이나다의 낮은 수온과 높은 파도 덕분에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 자연히 오징어 요리도 유명해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미식 스폿이다. 요부코에서 먹을 수 있는 오징어는 야리이카(ヤリイカ, 창꼴뚜기)와 겐사키이카(ケンサキイカ, 검은창꼴뚜기)로 잡히는 즉시 식당 수족관으로 옮겨져 이키즈쿠리(生き作り, 활어)로 공급된다.
요부코의 활오징어회는 너무도 신선해 접시 위에서도 투명한 살 사이로 검은 반점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리고 쫄깃한 식감에 씹을수록 고소함과 달큼함이 우러나는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또 활어 접시를 비우고 나면 다리는 튀김과 소금구이로 먹을 수 있다. 한 가지 메뉴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요부코 활오징어의 매력이다.
한편, 마린 펄 요부코(マリンパル呼子)에서 출발하는 유람선 이카마루(イカ丸)는 요부코 앞바다를 둘러본 뒤 나나쓰가마로 이동, 동굴 탐사까지 경험하게 한다. 또 해중 전망선 지라(ジーラ)는 선내 창을 통해 해수면 1.2m 아래 바다 풍경을 선사한다. 반잠수형 유람선이 지나는 요부코에서 무인도 다카시마(鷹島)까지의 해역은 일본 최초의 해상공원이다. 정겨운 아침 시장과 신선한 미식,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까지 요부코에서의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사랑도 확인하고 소라구이도 먹고, 하도미사키
![]() 하도미사키 연인의성지 |
하도미사키는 규슈 최서북단, 히가시마쓰우라반도(東松浦半島)부 끝점에 위치한 곶으로, 일본 지자체가관리하는 겐카이국정공원(玄海国定公園)이다.
일본 사람들은 하도마사키를 ‘사랑의 성지’로 부른다. 절벽 위 초원에 설치된 하트 조형물이 바로 믿음의 증표다. 그 앞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반드시 결실을 이룬다는 믿음 때문에 많은 연인이 이곳을 찾는다.
하토미사키 주변 해역은 1975년 일본 최초의 해중 공원으로 지정됐다. 해중 전망탑은 일본해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육지와 86m 떨어진 바다에 놓여 있다. 해중 전망탑은 물 위는 물론 바닷속까지 아우른다. 여행자들은 높이 20m의 전망탑에서 세 방향으로 섬과 어우러진 바다 풍경을 조망하거나 수심 7m의 해중 전망실에서 수초 사이로 물고기들이 노니는 바닷속 정취를 목격할 수 있다. 더욱이 이곳은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지점이라 열대어가 유영하는 모습도 보인다.
가라쓰시는 일찍이 서귀포시와 자매도시로 연을 맺고 교류를 이어왔다. 어쩌면 올레 코스가 조성된 것도 당연하다.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는 루트 그랑블루의 204번 국도 변에 있는 미치노에키 모모야마 덴카이치(道の駅 桃山天下市)를 기점으로 하도미사키까지 11.2km에 걸쳐 이어진다. 그리고 하도미사키 해변에 돌하르방 2기를 세워놓은 것 또한 두 도시의 우정을 상징한다.
![]() 하도미사키 캠핑장 |
![]() 하도미사키 포장마차 |
하도미사키에는 캠핑장과 일본 정부가 관리하는 전통 숙박시설 국민숙사(国民宿舎)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으면 마다라시마(馬渡島) 너머로 저무는 규슈 최고의 낙조 감상이 가능하다. 게다가 제주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정갈한 해수욕장과 좀 더 가까워질 기회도 찾아온다.
그뿐 아니다. 해변 위쪽으로는 이곳의 명물 소라, 반건조 오징어, 전복, 굴을 직접 구워 주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해안가를 따라 산책하듯 걸어 나오면 쉽게 만날 수 있다.
숯불에 바로 구운 소라와 사케 한잔, 여행자들이 하도미사키를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김민수(여행작가) denmagazine@mcircle.biz
추천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