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SNS로 제2인생 연 '실버스타'
사진=KBS안테나 영상 캡처 |
“미쳤어, 내가 미쳤어.” 이것은 율동인가 안무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시대를 풍미했던 관능적인 몸짓과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릴 때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이다. 게다가 정확한 박자.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최근 KBS1 ‘전국 노래자랑’에 출연한 77세 지병수 할아버지다. “종로 멋쟁이”로 자신을 소화한 지 할아버지는 손담비의 ‘미쳤어’에 부르며 춤을 췄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클립 영상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네이버 캐스트 KBS안테나에 게재된 클립 영상은 공개 1주일이 지난 지난달 31일 오전 9시 기준 201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화제의 인물이 된 지 할아버지는 지난달 29일 KBS2 ‘연예가 중계’를 통해 원곡의 주인공인 손담비와 컬래버레이션 무대도 선보였다. 각종 방송 출연은 물론 광고계 러브콜도 받고 있다.
SNS를 중심으로 노년 스타가 뜨고 있다. 처음부터 스타는 아니었다. 평생 엔터테인먼트와 무관한 업(業)에 종사하다 뒤늦게 숨겨놨던 끼를 발산한 사례들이다. 지 할아버지를 비롯해 1947년 생인 유튜버 스타 박막례 할머니, 60대에 데뷔한 모델 김칠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진=김칠두 할아버지 SNS |
SNS의 힘으로…제2의 인생 활짝
‘박막례 할머니’는 유명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이다. 손녀 김유라 씨가 할머니와의 호주 여행기 영상을 2017년 1월 유튜버에 올린 것이 시작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 2년 만에 구독자 수 80만 명을 넘어섰다. “막 대충 만드는” 국수 레시피는 350만 조회수를 넘었다. 인기 드라마 KBS2 ‘하나뿐인 내편’ 리뷰 영상은 1개월 만에 250만 조회수를 바라보고 있다. 사투리와 비속어가 뒤섞인 거침없는 멘트가 특징이다. 솔직함 속에 묻어나는 따뜻함과 관록이 뭉클함을 안길 때도 있다.
김칠두 할아버지는 1955년생이다. 지난해 데뷔한 ‘병아리’ 모델이다. 식당을 운영하다 접은 그는 딸의 권유로 모델 아카데미를 다니기 시작했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모델은 젊은 시절의 꿈이었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이국적인 외모, 흰 머리 듬성듬성 섞인 장발 때문인지 주름조차 ‘힙’(‘앞서 있는’을 뜻하는 영단어 hip)하게 보인다. 다양한 브랜드를 섭렵하며 주목 받는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박막례 할머니’ 캡처 |
신선함에 열광…“세대 차이 극복의 키”
이들의 공통점은 SNS다. ‘지담비’(지병수 할아버지+손담비) 열풍은 클립 영상의 힘이 컸다. KBS는 SNS에서 클립 영상이 회자되자 ‘손담비 비교영상’, ‘미방영상’, ‘관객샷없는버전’, ‘세로캠’ 등 다양한 버전을 재생산했다. 영상 콘텐츠는 SNS 등으로 확산돼 화제성에 불을 붙였다. 박 할머니는 유튜브, 김 할아버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기존 스타 스타 시스템이라면 이들의의 탄생은 불가능에 가깝다. 훈련 기간 등을 이유로 나이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가 점점 어려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 은퇴를 앞둔 ‘실버 스타’들에게 새 길을 열어 준 셈이다.
젊은 세대가 ‘실버스타’를 빠르게 발굴하고 뜨겁게 소비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우리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처럼 친근한 ‘실버스타’들이 ‘기성세대=권위주의’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사는 모습이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중장년층은 체면을 내려놓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동년배들에게 부러움을 표한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혐오로까지 번지는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도 한다. 박 할머니는 지난 1월 게재된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 편에서 키오스크만 놓인 패스트푸드 가게를 찾는다. “카드 없고 기계 못 만지면 먹지도 못하느냐”고 역정을 낸다. 작은 글자와 낯선 용어 탓에 기계를 한참 바라보다 시간 초과에 걸린다. 유쾌한 영상이지만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를 되짚는다. 해당 영상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나 속상해서 울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사진=김칠두 할아버지 SNS |
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모습
고령화 사회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드라마, 예능 등 노년의 삶을 조명하는 콘텐츠도 급격히 늘었다. 지난달 19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 드라마에서 타자화됐던 알츠하이머 환자를 중심에 놓고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호평 받았다. ‘실버 스타’의 탄생도 이와 맞물려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번 ‘지담비’ 열풍에 대해 “아이돌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는 어르신의 모습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선한 풍경”이라며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된다면 노년층과 젊은 세대가 서로 머나먼 존재가 아니라 친근한 가족으로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막례 할머니’ 영상 캡처 |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