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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이주헌의 혁신@미술]<12>

'단순화'의 힘…
버리면 얻는다

by이데일리

추상미술과 단순화


불필요한 건 없애고 대상의 중요특질만 뽑아내 표현

몬드리안, 형태 단순화로 시작 기하학적 추상에까지

잡스, 심플로 승부…포드·맥도날드도 단순화로 성공

다다익선 아닌 소소익선…번다한 변수 빼야 핵심 떠

이데일리

피터르 몬드리안이 시차를 두고 그린 나무 그림이다. 위에서부터 ‘저녁, 붉은 나무’(Evening, The Red Tree·1908∼10), ‘회색 나무’(Gray Tree·1911), ‘꽃 피는 사과나무’(Blossoming Apple Tree·1912). 네덜란드 출신으로 바실리 칸딘스키와 더불어 20세기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몬드리안은 자연의 재현 요소를 없애고 ‘신조형주의’라 말하는 보편적 리얼리티를 구현했다. 후기로 갈수록 구성·색을 최대한 절제하고 단순화한 ‘기하학적 추상’에 이르는데, 3연작 격인 나무그림은 그 과정으로 가는 초기 단계인 셈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헤이그미술관 소장.

“잡스는 버튼을 제거해 장치를 단순화했고, 기능을 줄여 소프트웨어를 단순화했으며, 옵션을 없애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했다. 그는 심플함을 향한 자신의 애정을 선불교의 참선 덕으로 돌렸다.”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전기를 쓴 애스펀연구소의 CEO 월터 아이작슨이 잡스의 탁월함을 평하며 한 말이다. 잡스 또한 1983년 ‘애스펀디자인콘퍼런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매우 단순한 스타일, 우리는 실제로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전시될 만한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의 운영방식, 제품 디자인, 홍보, 이 모든 것은 한 가지로 귀결한다. 단순하게 가자, 정말로 단순하게.”

‘단순화의 화신’ 잡스는 기존 휴대폰들이 기능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미로를 헤매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자 아이폰을 구상했다.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휴대폰이 그에게는 복잡하고 불편한 허접쓰레기처럼 보였다. 게다가 카메라를 장착한 휴대폰의 등장으로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급속히 축소하는 것을 본 잡스는 2005년 당시 애플 수익의 45%를 차지하던 아이팟도 그런 운명을 당할 수 있으리라 우려했다. 잡스는 직접 휴대폰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물리적인 버튼형 키패드를 떼어낸, 최초의 멀티터치 스크린 형식의 아이폰을 출시했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팀원들과 함께 “세부사항 하나하나에 몰두하고 회의를 거듭하며 다른 휴대폰들이 복잡하게 만든 것을 단순화하는 방법을 파악해” 이 위대한 성공을 이뤘다고 상찬했다.

포드, 표준모델 하나만 제작…자동차 가격 ‘단순화’

‘무조건 심플’(Simplify)의 공동저자 리처드 코치와 그레그 록우드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거의 모든 위대한 성공 신화는 단순화의 신화”라고 단언했다. 코치와 록우드는 잡스뿐 아니라 포드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 펭귄북스 창립자 앨런 레인, 맥도날드 창립자 맥도널드 형제와 레이 크룩, 보스턴컨설팅그룹 창립자 브루스 헨더슨,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 이베이의 창립자 피에르 오미디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업가가 단순화로 남다른 성공을 얻었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일례로 포드는 기존 제품을 재설계해 단순한 표준모델 하나만을 만듦으로써 자동차 가격을 매우 저렴하게 ‘단순화’했다. 이로 인해 “1920년 포드사의 자동차의 판매량은 1905년과 1906년에 비해 무려 781배나 증가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게 됐고 ‘자동차의 민주화’가 이뤄졌다. 당시 “포드사의 자동차색이 죄다 검정색인 이유가 조립라인의 속도를 따라잡을 만큼 빨리 마르는 페인트가 일본산 검정페인트밖에 없어서”였을 정도로 포드사는 싼값에 대량으로 생산하는 새로운 생산체제를 가동했고, 이 단순화의 노력은 엄청난 보상을 가져다줬다.


맥도날드 역시 메뉴의 다양성을 포기하고 재료공급과 식당운영, 음식조리와 서빙을 극도로 단순화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뒀다. 그로 인해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 식당이란 개념을 최초로 보편화한 기업이 됐다. 맥도날드의 방식은 이후 햄버거뿐 아니라 치킨·피자전문점이 패스트푸드 식당으로 급성장하는 데 중요한 본보기가 됐다. 단순화는 본질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리학자이자 발명가인 미첼 윌슨은 과학적인 이해력도 단순화에 대한 감수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해본다면, 우선 매우 복잡한 것들을 이해하는 능력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장 복잡한 것처럼 보이는 무엇을 간과해서 한순간에 저변에 깔려있는 단순성을 파악해내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추상미술 ‘단순화의 가치’ 선명한 메시지 전달

미술은 단순화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예술이다. 특히 추상미술은 단순화의 힘과 가치에 대해 매우 강력하고도 선명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추상미술을 뜻하는 영어 ‘앱스트랙트 아트’(abstract art)의 앱스트랙트가 ‘추출하다’는 뜻을 지닌 데서 알 수 있듯 추상미술은 대상의 다른 것들은 다 사상하고 정수 혹은 중요한 특질을 뽑아내 표현하는 미술이다. 한마디로 지극한 단순성을 추구하는 예술인 것이다.

이데일리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1828∼1962)이 그린 ‘IKB 191’(1962). 하늘빛 혹은 바닷빛 푸른색으로 화면을 뒤덮어 무(無) 혹은 공(空)을 연상시킨다. ‘IKB’(International Klein Blue)는 푸른색뿐인 모노크롬(단색추상) 작품을 만들고 스스로 붙인 이름. 작가는 푸른색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자연세계에서 가장 추상적인 것”이라고 했다.

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나, 인간이 추상이미지를 조형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 자체는 아주 오래됐다. 기원전 3만 9000년경 스페인의 엘 카스티요 동굴에 그려진 붉은 원반 무늬처럼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암흑기(기원전 900~700년) 그리스의 도기화처럼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한 고대의 도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디자인이나 장식 요소로서 추상무늬를 오래도록 사용해왔지만, 순수미술로서 추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여년 전의 일이다. 미술, 특히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미술은 사실의 재현을 중시해 그 특질을 고도로 발달시켰다. 그러던 서양미술이 19세기 낭만주의와 인상파를 거치면서 화면이 풀어지기 시작했고, 20세기에 들어 표현주의와 입체파를 거친 뒤에는 마침내 순수한 추상회화의 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추상미술이 본질적으로 대상에서 특정한 한 가지 요소를 추출해 표현하는 미술이란 사실은 20세기 추상화의 선구자 피터르 몬드리안(1872∼1944)의 나무 주제 그림들에서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909년 작 ‘저녁, 붉은 나무’에서는 나무의 형태를 꽤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1911년 작 ‘회색 나무’에 이르면 상당히 단순화해 나타내고, 1912년 작 ‘꽃 피는 사과나무’에 와서는 거의 온전한 추상형태를 보여준다. 이 단계에서 좀 더 나아가면 예의 수직선과 수평선, 사각형의 색 면으로 이뤄진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법칙은 단순…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이렇게 대상을 지속적으로 단순화함으로써 몬드리안은 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구성 형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몬드리안은 자신이 포착하고자 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그토록 활기 있게 끝없이 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절대적인 규칙에 의해 움직인다.” 몬드리안의 이런 시각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또한 크게 공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파인먼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단순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을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 추상미술은 산업화를 통해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인류가 마침내 ‘버림의 미학’에 의지해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라 ‘소소익선’(少少益善)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확산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소익선은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중요한 화두가 돼 있다. 이를테면 노트북이나 텔레비전의 중량 혹은 두께를 더 줄이기 위해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나, 불필요한 가재도구를 버리고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하는 미니멀라이프가 점점 더 주목을 받는 현상 등이 그런 것이다.


이런 버림의 미학, 소소익선의 미학이 추상의 미학이라면, 사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삶의 추상화(抽象化)’ 혹은 ‘일상의 추상화’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삶을 추상화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복잡한 체계에 현혹되지 않고 번다한 변수들을 제거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핵심적인 의미를 찾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추상미술은 우리에게 늘 불필요한 삶의 무게를 덜어내라고 시그널을 보내주는 나침반 같은 예술이라 하겠다.

엘 카스티요 동굴벽화(El Castillo Cave Paintings)

이데일리

2012년 스페인 북부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발견된 ‘붉은 원반’ 그림. 엘 카스티요 동굴벽화에는 이외에도 ‘손바닥 스텐실’과 ‘동물’ 그림’ 등이 남아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벽화가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일 가능성도 점쳤다.

스페인 북부 엘 카스티요 지역의 동굴에서 ‘손바닥 스텐실(물체를 대고 염료를 뿌려 윤곽을 그리는 그림)’과 ‘붉은 원반’ ‘동물’ 등을 그린 벽화가 발견된 것은 2012년. 기원전 3만 9000∼4만 800년경에 그린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던 ‘알타미라 동굴벽화’보다 2만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연대결과를 두고 고고예술학계는, 현대인류 조상의 최고(最古) 예술품이라고 흥분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술레웨시섬과 보르네오섬에서 잇따라 더 오래된 동굴벽화가 발견되며 ‘가장 오래된’이란 타이틀은 내줘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엘 카스티요 동굴벽화가 가진 예술적 의미는 적지 않다. 특히 주목할 것은 ‘붉은 원반’. 구상이 아닌 추상의 이미지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조야하고 거친 형태로 그저 점과 점에 가깝지만, 그래서 100년 전 본격화한 정교한 추상화와도 거리가 멀지만, 단순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태생적 예술성은 근원이 깊다는 뜻이다. 참고로 동굴벽화의 연대는 탄산칼슘(석회암 주성분) 시료를 얻은 뒤 우라늄-토륨 방사성 연대측정법을 이용해 측정한다. 땅에서 출토돼 지층정보를 살필 수 있는 석기 등 유물과 달리, 벽화는 연대를 직접 알아내기 어려워 벽면에 쌓인 탄산칼슘의 연대로 그림나이를 추정한다.

이주헌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