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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잘나가는 부자들이 창문 많은 집에서 살았던 이유

by도서출판 길벗

게다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창문을 없애기도 했다는데...

요약

  1. 중세시대에는 창문세Window Tax가 있었다.
  2. 얼토당토않은 얘기로 들리겠지만 당시 창문은 일종의 사치품에 속했기 때문에 창문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도 많았다.
  3. 이들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창문을 없앴는데 건물 크기에 비해 창문수가 현저히 적은 기형적인 형태로 건설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세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재정 활동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입을 말한다. 조세는 이 같은 재원 마련 기능 외에도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유도하거나, 소득재분배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납세자의 의사와 달리 강제성이 부여되었다는 점, 정부로부터의 수혜 정도와 무관하게 세금이 부과된다는 점, 반드시 서비스 생산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 등으로 인해 조세부과 시논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데 사용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는 돈을, 그것도 강제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부과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조세가 내포하는 강제성과 수혜 정도와 무관하게 부과된다는 특징 때문에 발생하는 납세에 대한 논쟁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과세 주체 즉, 정부는 엄격한 원칙 아래 조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를 ‘국세부과의 원칙’이라고 한다. 국세부과의 원칙은 크게 ‘실질과세의 원칙’, ‘신의성실의 원칙’, ‘근거과세의 원칙’, ‘조세감면의 사후관리’ 등 네 가지 세부 내용으로 구성된다.

실질과세의 원칙은 법적인 형식보다는 경제적 실질성에 근거하여 과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세무공무원은 법에 근거해 신의성실한 세무처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근거과세의 원칙은 조세를 부여할 때 명확한 근거자료를 기준으로 과세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조세감면의 사후관리는 과세 주체가 조세를 감면한 경우 그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그 감면에 대해 일정한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국세부과의 원칙 중 근거과세의 원칙의 경우, 조세를 부과하는 근거를 적절히 설정하지 못하면 납세자가 조세부과의 근거를 축소 내지 은폐할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근거 자체가 잘못된 대상으로 설정되면 적합한 납세자에게 적절한 수준의 조세를 부과하지 못하게 된다. 적합하지 못한 대상을 근거로 조세가 부과될 때 어떠한 문제가 생기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역사적 선례가 하나 있다. 바로 중세시대의 창문세(Window Tax)다.

부자는 창문이 많은 집에 산다?

창문세는 납세자가 소유한 집의 창문 수에 근거해 부과했던 세금을 말한다. 창문의 개수를 근거로 세금을 부과하다니, 어떻게 보면 얼토당토않은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때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창문은 일종의 사치품에 속했다. 창문 재료인 유리가 고가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창문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큰 건물에는 그만큼 창문이 많을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조세가 ‘납세자의 경제적 능력’에 부합하는 형태로 부과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창문을 근거로 한 조세 부과는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1692년 영국이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창문세는 사실 그 이전부터 여러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었다. 창문세를 최초로 고안해낸 국가는 다름 아닌 프랑스였다. 1303년 왕권 강화가 필요했던 필립 4세는 다양한 세원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세금을 신설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창문세였다. 창문세는 짧은 기간 동안 징수된 후 곧바로 폐지됐지만 이후 프랑스가 14세기 중후반 백년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군자금 확보를 위해 다시 시행되었다.

프랑스에서 고안한 창문세를 영국이 받아들인 시기는 1696년이었다. 이전까지 영국에는 창문이 아니라 난로에 근거해 과세하는 난로세Hearth Tax가 있었다. 1662년 찰스 2세는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영국과 웨일즈에 난로당 2실링씩을 과세했다. 난로를 기준으로 세금을 징수하려다 보니 담당 공무원이 해당 가정집 내부를 직접 들어가서 난로의 보유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과 국민들 간의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난로세는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난로 하나당 성 미카엘 대축일과 성모 영보 대축일에 각각 2실링씩 부과되는 조세였다. 이러한 조세 부과 형태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커다란 부담을 안겨줬다.


결국 난로세는 네덜란드의 윌리엄 공이 영국을 점령한 후 민심을 달래기 위해 1688년 폐지되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의 분쟁이 발생하자 다시 줄어든 세원을 확보할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문세가 도입됐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창문이 열 개 이하일 경우 0.1파운드, 11개 이상~20개 이하의 경우에는 0.3파운드, 21개 이상은 0.5파운드를 각각 부과했다.


건물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창문을 근거로 과세했기 때문에 난로를 근거로 해서 과세하는 것보다 명확한 징수 근거를 확보하기에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 사람들도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당시 영국인들은 창문을 기준으로 부과된 조세를 축소 내피 회피할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가장 쉬운 방법은 창문 자체를 없애는 것이었다. 난로세를 회피하기 위해 벽난로를 없앴던 납세자들은 창문 또한 없애기 시작했다.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어둡게 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지어진 건물들 중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건물들을 보면 크기에 비해 창문수가 현격히 적은 기형적인 형태로 건설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세금 회피가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는다?

납세자가 세금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을 바꾸는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교란(distortion)이 발생했다’고 표현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조세를 부과하지 않으면 납세자는 자신에게 가장 높은 효용을 가져다줄 선택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조세가 부과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회피하려는 선택을 최우선으로 내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 선택이 조세 부과 이전에 했던 선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합리적이라는 데서 교란이 발생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창문세 역시 교란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면 누가 어두컴컴하고 통풍도 잘 안 되는 창문 없는 집에서 살기를 선택했겠는가?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Jean Babtiste Say)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Jean Babtiste Say)는 영국 여행 중 창문이 없는 집을 목격하고 창문세가 가진 폐단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역시 잘못된 조세정책으로 인해 유발된 교란 행위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창문을 통한 과세를 회피하기 위한 납세자들의 노력 못지않게 창문을 통해 과세하려는 당국의 노력 또한 지속되었다. 당시 영국인들이 건물 외부에서는 마치 하나의 창문처럼 보이게 하면서 창문 간격을 넓게 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하려 하자, 정부는 창문 간격이 일정 기준보다 벌어져 있으면 별도의 창문으로 간주해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또한 조사원이 방문할 때 일시적으로 창문을 폐쇄했다가 다시 만들기도 했는데, 이러한 행위가 적발될 경우에도 20실링의 벌금을 물리거나 일시적으로 폐쇄했던 창문을 다시는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기도 했다.


영국이 이런 식으로 창문세를 부과하자 한동안 창문세에 주목하지 않았던 프랑스인들도 다시 창문세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 성공한 후 귀족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거두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는데, 이때 프랑스인들이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창문세였다. 당시 귀족들은 자신의 신변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세에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창문을 근거로 한 과세 방식은 신대륙에서도 이어졌다. 1789년 미국은 처음으로 직접세를 도입했는데, 당시 과세 대상은 토지, 집, 노예 등이었다. 특히 집에 대한 과세가액을 산출할 때 해당 집의 창문 수와 크기를 활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징수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개입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세금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세금징수원을 감금하거나 폭행한 사례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창문세는 이처럼 다양한 문제를 유발했음에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륙과 신대륙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창문세가 사라진 시기는 1851년이며, 프랑스는 1925년이 되어서야 창문세를 없앴다. 14세기 초 필립 4세가 처음 창문세를 고안한 이후 600~700년 뒤에야 창문을 근거로 한 과세 기준이 사라진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창문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적절하고 효과적인 과세 근거를 찾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문세처럼 잘못된 과세 근거로 인해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속하는 일조권마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문세가 폐지된 이후 적절한 과세 근거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유럽의 각국 정부는 새로운 과세 근거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꾀한다. 영국인들이 주목한 것은 모자였다. 부자들은 고가의 모자를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싸구려 모자를 한두 개 소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모자 가격에 따라 차등적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4실링 미만의 모자는 3펜스, 4~7실링 하는 모자의 경우에는 6펜스 등의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렇게 차등적으로 세금이 부과된 모자를 살 때 납세가 이루어지면 모자 안쪽에 납세가 완료되었다는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 도장을 위조한 사람의 경우에는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이 밖에도 장갑세, 벽지세 등 다양한 방식의 과세 근거가 모색되기도 했다.

납득할 만한 과세 기준을 만들려면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 뿐’이라는 농담이 있다. 즉, 세금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강제성이 부여된 의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유사 이래 지속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17세기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1세는 여타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러시아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후진성의 상징인 긴 수염을 자르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의 귀족과 교회는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이를 격렬히 거부했는데, 이때 표트르 1세가 선택한 방법은 수염세였다. 표트르 1세는 수염을 계속 기르려면 해마다 100루블씩 수염세를 내도록 강제했고, 수염세 도입 7년 만에 러시아에서는 턱수염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수 세기 동안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지속 되어왔던 행동양식이 10년도 안 되어 세금 때문에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 인류가 얼마나 세금 납부를 싫어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납세자는 세금 납부를 싫어하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조세수입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장기적으로는 증가하는 복지재정 규모를 대비하기 위함이며, 단기적으로는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절하고 합리적인 과세 근거인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4년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에 해당하는 양악 수술이나 피부 관련 시술 등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세법 개정안이 통과된 바 있다. 당시 의사협회는 미용 목적의 시술 또한 치료 목적을 함께 지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미용과 치료 목적을 엄격히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토로하며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의사협회의 이러한 지적은 명확한 과세 근거를 확정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는 다양하게 발생하는 과세 관련 논의의 일면을 단적으로 확인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납득할 만한 과세 기준을 만드는 일은 이렇듯 복잡하면서도 힘들다. 조세수입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 방안을 강구하는 데 있어 앞서 언급한 창문세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참조 :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