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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베토벤이 일으킨
파격적인 세 가지 혁신

by도서출판 길벗

"시민이든 귀족이든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베토벤 혁신 1. 자신의 감정을 음악에 담다

구체제를 풍자한 그림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의 음악가들은 궁정에 소속된 고용인 신분으로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고, 귀족의 자제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요. 베토벤은 달랐습니다. 그는 왕과 귀족에 예속된 삶을 거부했지요.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1789년)은 당시 음악가의 처우에 부당함을 느낀 베토벤의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시민이든 귀족이든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신념을 굳히게 됩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왕과 귀족을 위해서도, 시민을 위해서도 아닌 인류 모두를 위해서 곡을 쓰겠노라고.

베토벤은 고용주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곡을 만들어 독립적으로 살아간 최초의 음악가였습니다. 위대한 선인들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사슬을 베토벤이 마침내 끊어버린 거죠. 그때까지 음악가가 자신의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는 것은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베토벤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베토벤이 음악의 새로운 문을 열면서, 이후 등장하는 일명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감정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베토벤이 낭만주의의 선각자로 불리는 이유이지요.

베토벤 혁신 2. 고용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위상을 확립하다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

베토벤에게는 제자도 있었는데요. 피아노를 좀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체르니 연습곡》의 저자, 바로 카를 체르니(1791~1857)였습니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베토벤은 조금씩 귀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음악 인생이 그대로 끝날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지요. 귀가 들리지 않으면서 베토벤은 두문불출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를 괴팍한 독불장군이라고 수군대기 시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귀가 들리지 않으니 누가 말을 걸어도 냉정하게 지나쳐버리기 일쑤였으니까요.


독일의 본에서는 철학, 미학, 문학을 열정적으로 논하며 사람들과 곧잘 어울리던 베토벤, 하지만 청각에 이상이 생기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둬버렸지요.

18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빈의 정경

1802년 베토벤은 의사의 권유로 빈 외곽의 한적한 도시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이곳에서 동생들에게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쓰는데요. 유서라고 하니 죽음을 예고하듯 들리지만, 그 반대입니다. 베토벤은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죽음의 유혹 속에서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예술이었다. 내 안에 있는 음악을 모조리 꺼내놓기 전까지 나는 아직 세상을 떠날 수 없다.”

그렇습니다. 베토벤은 벼랑 끝에서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깨달았던 겁니다. 예술이 자신을 세상에 붙들어 매어놓고 있음을.


죽을 만큼 괴로운 고통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킨 베토벤, 그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작곡에 몰두합니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불멸의 걸작들을 잇달아 완성하지요.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불안정한 프리랜서 신분임에도 늘 풍족한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요. 베토벤은 평생 쾌적한 집을 찾기 위해 이사를 60회 이상이나 다녔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초상화는 본인을 그린 그림 중에서 베토벤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규칙에 따라 가발을 착용하고 고용주의 취향에 따라 작곡해야 했던 고용인이 아닌, 누구의 간섭도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당당한 예술가의 기개가 느껴집니다.

베토벤 혁신 3. 고전주의 음악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리다

“헨델, 바흐, 글루크, 모차르트, 하이든의 초상화가 내 방에 걸려있다. 이들을 보면서 인내심을 배운다.”

베토벤은 생전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재능이란 무엇일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사람과 기존의 양식을 활용해 더욱 발전시키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베토벤은 후자였습니다. 선인이 창조한 음악 양식을 철저히 탐구해 그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모든 파격을 시도했고 결국 고전주의 음악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으니까요. 순수 기악곡에 성악을 도입하면서 기악곡의 새로운 역사를 쓴 <교향곡 제9번 합창>이 대표적이죠.


참조 : 클래식 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