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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8년째 '1일 1라면' 중인 현직 교사 "평생 라면 사랑할 것"

byJOB화점

[덕질에 진심입니다] <3> 낮에는 교사, 퇴근 후엔 라면 전문가! '피키' 지영준 씨


부담 없는 가격, 진한 맛, 간단한 조리법에 든든한 양까지. 라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람 한 명이 한 해에 먹는 라면은 약 76개로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


이렇게 맛있는 라면도 너무 자주 먹으면 질리게 마련인데, ‘나는 절대 질리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있다. 8년째 라면 전문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는 자타공인 라면 덕후, ‘라면정복자 피키(닉네임)’ 지영준 씨다.

군 전역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 씨가 먹은 라면은 1500종류가 넘는다. 일주일에 10개는 기본, 많을 때는 15개도 먹는다. 매일 한 개 이상 맛보는 셈이다. 국내 라면은 물론 해외 라면까지 공수해 시식하고 세밀하게 리뷰를 남긴다. 8년 동안 한 우물을 파자 데이터도 차곡차곡 쌓였다. 그의 블로그는 이제 방대한 ‘라면 사전’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라면에 열정을 불태우는 그의 직업은 흥미롭게도 라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초등학교 교사다. 낮에는 학생들과, 퇴근 후에는 라면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라면정복자 피키’ 지영준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죽는 날까지 세상 모든 라면 맛 볼 것"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 라면을 먹어보고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꿈을 가지고 8년 가까이 ‘라면 완전정복’ 블로그를 운영하는 ‘라면정복자피키’ 지영준이라고 합니다. 직업은 교사입니다.

수많은 음식들 중 ‘라면’에 집중적으로 파고드셨다는 게 흥미로워요. 라면을 집중탐구하기 시작하신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변함없이 라면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많은 분들이 제게 안 질리냐고 물어보세요. 그런데 저에게 ‘라면 질리지 않냐’는 말은 사람 만나는 게 질리지 않냐는 말과 비슷하게 들립니다. 라면 리뷰를 한 지 8년이 지났고, 블로그를 통해서 리뷰한 제품만 해도 1100여 종이 넘는데도 매일 새로운 라면을 먹고 공부하고 있어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라면이 있고, 각각 고유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거든요. 제가 모르던 새 라면을 만나는 것, 혹은 단종되지 않고 꾸준히 팔리는 라면을 먹어보는 것 모두 매번 새롭고 행복합니다.


또 제가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을 갖고 부담이 안 되는 수준에서 라면을 리뷰하기 때문에 더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라면 덕질’은 일이 아니라 취미이고 제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근원이기에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힘이 됩니다.

아마 이 질문은 여러 번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라면이 맛은 있지만 영양적으로는 그리 좋지 않잖아요. 평소에 얼마나 자주 드시는지, 또 식단이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정말 많이 들은 질문인데요. 최근에는 1주일에 평균 10개 정도 먹는 것 같아요. 10개라는 숫자만 보면 엄청나게 많이 먹는 것 같지만, 저는 라면을 맛보는 것을 중요시하지 많이 먹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한번에 반 개 정도만 먹는 편입니다. 물론 정말 맛있는 라면은 다 먹지만요.


라면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적게 먹으려고 노력해요. 소식하되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헬스를 꾸준히 했는데, 지금은 헬스장에는 못 가지만 많이 걷고 움직이면서 운동량에 신경 쓰고 있어요. 원래 활동적인 편이기도 하고요. 건강검진 결과에도 이상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라면을 먹어보고 소개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유지해야죠.^^


1월에 공개하신 비건(채식)라면 모음글 반응이 좋더라고요. 요즘 비건 음식이 건강이나 윤리적 소비와 맞물려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잖아요. 평소에도 꾸준히 라면 신제품 정보를 모으시는 것 같은데, 라면에도 시기에 따른 유행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라면도 시기에 따라 유행을 타요. 이러한 유행은 방송이나 라면 회사 등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회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합니다. 신제품들을 보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라면 트렌드를 알 수 있죠.


라면이 유행하는 현상을 분석하면 경제, 사회, 문화 여러가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라면을 맛보는 것뿐만 아니라 개발 스토리, 역사, 마케팅도 공부하고 심지어 라면 회사들의 재무제표나 시장 점유율 등도 살펴보면서 라면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에게 더 다양한 라면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더라고요.

"현직 교사...광고제안은 모두 거절 중"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시잖아요.^^ 학교에서는 어떤 선생님이신가요.


올해는 6학년 담임을 맡았는데요. 학교에서 ‘즐겁게 직장생활하는 교사’로 알려져 있어요. 하하. 그런데 처음 취직했을 때는 지금처럼 즐겁지가 못 했어요. 교사라는 직업에 적응하느라 학교생활이 참 힘들었는데요. 사춘기 학생들과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아이들의 마음을 잘 배려하지 못 했어요. 그래서 저도 학생도 힘들어 했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과의 관계도 좋고 제 일에도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훌륭한 교사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학생들도 선생님이 ‘라면정복자 피키’라는 걸 알고 있나요. 반응도 궁금해요.


신기하게도, 제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어느새 제 정체(?)를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블로그가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서 제가 라면정복자 피키라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저는 영상보다 글을 좋아해서 주로 블로그에서 활동하는데, 제자들이 ‘선생님 왜 요즘은 유튜브 업로드 안 하세요?’라며 물어보기도 해요.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유튜브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 꿈은 유튜버가 되는 게 아니라 라면과 관련된 목표를 달성하고 기록하는 거라서 글 쓰는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학생들 가르치랴, 퇴근해서 라면 리뷰하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지 씨는 피곤하지 않다고 한다. ‘온 세상 라면 리뷰’를 평생의 목표로 잡고 길게 보고 있기에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고.


교사는 겸직이 금지돼 있지만 책 집필이나 강연 등으로는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 외에 라면 업체로부터 광고 의뢰가 들어오거나 하지는 않나요.


교사는 직무상 비밀유지, 품위 유지, 정치운동 금지 등 필수적으로 준수할 사항을 지키고 직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겸직이 가능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라면과 관련된 책 두 권을 내면서 부수입이 발생하여 신고했고요. 겸직 규정에 위배되지 않아 허가를 받았습니다.


광고 등 적극적인 영리활동은 하지 않아요. 다양한 업체에서 제품 광고 의뢰나 협찬이 들어오지만 모두 거절해 왔고, 앞으로도 거절할 생각입니다.


사실 이런 기준은 교사가 되기 전부터 유지해 온 거예요. 라면 업계에 취업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제 꿈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세상의 모든 라면을 먹어보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물론 협찬을 받아서 쓴 글도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저처럼 자본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고 리뷰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맛없는 건 맛없다고 쓰고, 아무도 소개하지 않는 비주류 라면도 직접 구입해서 먹어보고 소개하는 사람이요. 돈과 상관없이 즐거운 마음만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 씨는 8년 동안 ‘광고나 협찬의 입김 없이 온전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누군가 자신의 글을 보고 도움을 받는다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비건라면 특집,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라면 특집 등 비교적 소수 독자를 위한 콘텐츠에도 정성을 들인다. 독자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며 리뷰 주제 추천을 받기도 한다.

일과 취미를 다 잡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중고생 시절 입시만을 위한 공부를 했고, 목표했던 의대를 갈 만 한 성적이 나오지 않아 4번의 수능을 치르고 나니 어느 새 20대 중반이 됐다. 고민 끝에 교대에 원서를 내어 합격했으나 입학식에도 가지 않고 곧바로 휴학계를 낸 뒤 군에 입대했다.


미뤄둔 숙제를 해치운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21개월 간의 군 생활. 입시공부만 하던 일상과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지만 오히려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됐다.


라면의 매력에 빠진 것도 군대에서였다. 당직근무 때 간부의 심부름으로 매점(PX)에 들렀다가 진열대의 라면을 구경하면서 '전역 전에 여기 있는 라면들을 하나씩 다 먹어봐야겠다'는 작은 목표를 세웠다. 지 씨는 "그 작은 목표(라면)덕에 희망을 얻고 삶이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취미가 열어 준, 완전히 새로운 인생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교사라고 하면 지금도 평생직장이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물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즐겁고 만족스러우시겠지만 혹시라도 먼 훗날 다른 길을 가실 가능성도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분야인지.


일단 저는 교사라는 직업에 매우 만족합니다. 처우나 평생직장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학생들을 만나고 서로 소통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보람 있어요. 아이들이 웃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뿌듯하고 행복해요.


그렇지만 앞으로 ‘평생’ 교사를 할 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학교 밖에서 해 보고 싶은 것도 많고요. 다만 인생이 언제나 제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으니까요. 교사 생활을 오래 하다가 은퇴하게 될 지, 아니면 언젠가 다른 일에 도전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교사를 하는 동안에는 좋은 선생님, 학생과 학교를 사랑하는 행복한 선생님으로 살 거예요.


먼 훗날 퇴직 후에는 한국소비자라면협회(가칭)를 만들어서 라면 정보를 공유하고, 라면 박물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라면에 대해 집대성한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꿈도 있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공부할 겁니다.

그는 올해 라면에 관한 세 번 째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라면의 역사와 다양한 스토리를 담아 짬짬이 원고를 썼고, 어느덧 80% 이상 글이 완성됐다고.


“올해 바라는 거요? 여름 쯤에는 멋진 책을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6학년 제자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어요. 제자들과 2년째 같이 생활하고 있는데요.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겁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