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 방에 화분 280개…자신만의 정글에서 사는 남자

[라이프]by JOB화점

[덕질에 진심입니다] <2> 덕업일치 실현, 홈 가드닝 크리에이터 박상혁 씨


영어에 ‘green thumb’ 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초록색 엄지’인데, 마법의 손이라도 가진 것처럼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반려식물’이라는 신조어가 퍼질 정도로 식물이 주는 힐링과 안정감이 주목받는 요즘, 4평 넓이 방 안에 280개가 넘는 화분을 꽉 채우고 살 정도로 식물을 사랑하는 남성이 있다. 식물에 푹 빠진 '초록 손', 식물 덕후 박상혁(그랜트) 씨다.

박 씨의 집은 온통 초록색이다. 화분 좀 키운다는 사람이라면 으레 베란다를 ‘그린 존’으로 정해두곤 하는데 그의 집에는 베란다도 없다. 어떻게, 왜 그렇게까지 많은 식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것일까. ‘덕업일치’를 실현 중이라는 박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문 열고 들어가면 ‘나만의 정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랜트의 감성' 채널을 운영하는 홈 가드닝 크리에이터, 식물 애호가, 식물 덕후 박상혁입니다. 현재 베란다 없는 실내에서 280개가 넘는 식물들과 함께 숨쉬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덕후는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난다’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어릴 적부터 식물을 좋아하셨는지, 아니면 식물에 ‘꽂히게’된 계기가 따로 있으신지요.


사실 식물 그 자체보다는 햇빛과 자연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화분에 식물을 담아 키우기 시작한 건 어머니의 영향이 컸는데요. 어릴 때 살던 집 거실 벽 한 면에 덩굴 식물이 자라고 있었거든요. 아파트에 살던 시절에는 아파트 내부에 실내 정원이 있어서 아이비에 물을 자주 주기도 했어요.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우게 된 건 군대 전역한 직후부터예요. 오랫동안 키우던 선인장과 산세베리아가 시들시들해진 게 신경쓰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식물 관련된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는데, 처음으로 직접 분갈이를 해 보고 식물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저와 함께 숨쉬는 초록 친구들이 생겨났고요.


매일 도시의 콘크리트 정글만 보다가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흙도 만지고, 생명을 지키고 키워내는 기쁨을 느끼게 되자 점점 식물에 꽂히게 됐어요.


4평 방, 그것도 침실에 식물을 꽉 채워놓고 산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식물로 가득한 공간에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친구들이 제 집에 처음 놀러오면 식물에 압도당하곤 해요. 작은 방에 식물 수 십 여 종이 울창한 정글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지나다니면서 잎이 몸에 살짝씩 스치곤 하는데, 전 이런 게 좋아요. 저만의 숲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사는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해가 들 때 햇빛에 반짝이는 식물을 보면 저도 모르게 도파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여유로운 봄날 주말, 아무도 없는 한강 공원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느낄 때처럼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거든요.

"가끔 4평 남짓한 내 방의 일부분을 보면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런데 풀이 좋은 걸 어떡해."

('그랜트의 감성' 블로그에서) 

예전엔 광고인, 지금은 홈 가드닝 크리에이터 

박상혁 씨는 ‘그랜트의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블로그 등 SNS를 운영하며 실내 가드닝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다. 식물 키우는 법, 테라리움(유리 용기 안에 작은 정원을 꾸미듯 여러 식물을 배치해 키우는 것), 식물원 탐방기 등 식물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영상과 글로 풀어낸다.


풍부한 식물 관련 지식을 쉬운 말로 막힘없이 풀어내는 그의 원래 직업은 광고인이었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며 가드닝을 취미로 두던 시절에는 낮에 받은 스트레스를 식물과 ‘교감’하며 풀곤 했다. 모닥불이나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긴장을 푼다는 뜻의 불멍, 물멍이라는 말처럼 식물 애호가들은 ‘식멍’을 즐긴다.


박 씨 또한 퇴근하면 멍하니 식물을 감상하기도 하고 물도 주면서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직업을 바꿔 덕업일치를 실현한 그는 “식물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책도 읽고 국내·해외 화원 관계자나 애호가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늘수록 지식 역시 자연스레 깊어졌다.

식물 키우랴, 감상하랴, 영상 찍고 글 쓰고 편집하랴… 그야말로 24시간이 부족하실 것 같아요. 평소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콘텐츠 만드는 것이 주된 일이다 보니 시간을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중 주말 관계없이 식물에 대한 영상이나 팟캐스트를 접하고 책을 읽어요. 제가 키우는 식물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그걸 바탕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듭니다. 또 가드닝 활동을 통해서 알게 된 다른 애호가 분들과 온·오프라인으로 교류하기도 해요. 농장과 화원도 방문하고요. 

식물이 잘 안 자란다면 ‘환경’부터 점검하세요 

식물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상혁님의 콘텐츠를 보면 꽃보다는 잎 위주로 ‘초록초록’함이 특징인 식물을 주로 키우시는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꽃 피우는 식물은 질 좋은 햇빛과 순환 잘 되는 바람이 필요하고, 어떤 종류는 혹독한 추위를 느껴야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어요. 제가 사는 실내환경과는 맞지 않죠. 제 침실은 서향이라서 오후 반나절만 햇빛이 들거든요. 겨울에 해가 낮게 뜨면 옆 건물에 가려져서 1월 한 달 동안은 거의 해가 들지 않고요. 베란다도 없어서 완전한 실내공간이기 때문에 늘 온도가 일정합니다.


이런 조건을 고려해서 가장 적합한 식물 위주로 잘 키워내는 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지금은 실내에서만 식물을 키우지만, 기회가 된다면 실외 가드닝도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사실 저도 식물을 참 좋아하는데, 햇빛이 잘 안 들어서 그런가 영 안 자라더라고요. 초보도 기르기 쉽고 구하기도 쉬운 식물은 무엇이 있을까요.


반그늘, 반양지 같은 용어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저는 이런 용어를 원예 마케팅 용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식물 판매자들이 ‘실내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는 아카시아나 유칼립투스는 호주가 원산지인 식물이에요. 자생지 환경을 찾아보면 그늘 한 점 없는, 아주 강하고 질 좋은 햇빛을 받으며 바람도 잘 통하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모르고 들여온다면 실내 공간에서는 바로 죽어나가기 일쑤죠. 기르기 쉬운 종류가 따로 있다기보다는 내 공간이 어떤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햇볕이 들지 않는 북향이라면 방 안쪽은 마치 동굴과 같은 공간이 됩니다. 창가 근처에서 키우되, 스파트필름이나 금전수 등 간접적인 빛으로도 잘 버티는 식물이 좋아요.


동향이나 서향은 반나절 동안 직접적으로 빛이 들어오기에 다양한 수목을 키울 수 있어요. 이런 곳에서는 잎이 큰 열대 관엽식물 종류가 잘 자랍니다. 필로덴드론 종류 중 필로덴드론 콩고, 몬스테라 종류 중 몬스테라 델리시오사, 양치 식물 종류 중 보스턴 고사리가 좋아요.


남향은 햇빛을 가리는 주변 건물이나 나무가 없다면 여름을 제외하고 봄, 가을, 겨울 아주 풍부한 햇빛이 드는 곳이에요. 베란다처럼 환기를 자주 시킬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꽃을 피우는 제라늄 종류 키우기 좋고요, 실내에서도 동향/서향에서 키우는 다양한 수목을 다 키울 수 있어요. 또 햇빛이 좋기 때문에 다육식물과 선인장까지 키울 수 있어요.

식물을 잘 키우는 ‘초록 손’의 소유자가 있다면 이상하게도 유독 키우는 화분마다 죽이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려식물을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키우는 팁이 있나요.


제일 중요한 건 식물에 대한 관심입니다. 아무리 예뻐 보여서 들여와도 그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사실 ‘장식물’로 들여오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식물도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병도 나고 해충 때문에 아프기도 해요. 빛이 줄어들면 밥을 잘 못 먹는 셈이라 약해지기도 하지요. 내가 키우는 식물의 원산지를 확인하고 되도록 비슷한 환경에서 키워주는 게 좋습니다.


또 물을 제대로 주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도 필수고요. 물을 줄 땐 흙이 마르는 걸 반드시 확인하고 찔끔 주는 게 아니라 화분 구멍으로 물이 다 나올 때까지 푹 줘야 해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물 조절을 하지 못해 죽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식물과 함께하는 매일이 행복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고민일 텐데, 실내에서 화분을 놓고 키우고 싶어도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생활하시는 환경을 보면 화분이 꽉 차 있는데 공간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창고 수납 공간이 따로 있어서 덩치가 있는 흙/화분은 보통 창고에 보관하고 있어요. 또 가구의 경우 선반, 책상 등 다양한 곳에서 식물과 조화를 이루어 배치하려고 해요. 처음에 식물이 많지 않을 때 예쁜 식물이 곳곳에 있었다면, 지금은 울창한 정글이지만 말이죠(웃음). 미관적으로도 예쁘게 하는 것과 식물의 성장 최대치에 대한 고민이 여기서 항상 생기는 것 같아요.


식물이 너무 크게 자라면 적절한 가지치기와 뿌리정리를 통해 덩치를 작게 만들어서 다시 크게 키우기를 반복해요.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공간에 새로운 식물을 들이기도 하고, 기존 화분의 위치를 바꿔주기도 해요.


‘식물 키우기 참 잘했다’라고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문득 앞을 봤는데 햇빛 받는 식물이 보일 때요. 앞서 말했듯 여유로움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초록빛 우거진 환경이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제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정말 행복함을 느끼게 돼요.

봄날 주말처럼 포근한 식물의 매력에 빠져 사는 박상혁 씨. 올해 목표는 뭐냐고 묻자 그는 "잘 먹고, 건강하게 숨 쉬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초록색 친구들처럼 편안하고 덤덤한 대답이다. 좋아하면 닮는다는 말, 참말인가 보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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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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