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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억대연봉 내려놓고 40세 은퇴, 4년차 파이어족의 이야기

byJOB화점

[FIRE기획] <3> 전직 은행원 ‘쁘레드아저씨’가 말하는 ‘조기 은퇴자의 마인드’

업무 강도는 높지만 그만큼 보상도 후해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직업, 은행원. 4년차 파이어족 ‘쁘레드아저씨(닉네임)’는 사회적 평판도 좋고 보수도 흠잡을 데 없는 직장에서 자발적 조기 은퇴를 택했다.


억대연봉 받을 수 있는 직장을 내려놓고 한참 일할 40세에 은퇴한다는 것 자체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은퇴 뒤 맞닥뜨린 진짜 문제는 돈이 아니라 ‘자존감’에 관한 것이었다고. 조기 은퇴 뒤 매일매일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는 쁘레드아저씨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본인 제공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기은퇴TIP연구소’ 쁘레드아저씨입니다. 저는 4년 전인 마흔 살 때 은행에서 조기 은퇴했습니다. 은퇴 뒤 새로운 것 배우는 재미에 살았는데 작년부터는 코로나19때문에 외부활동 자체가 힘들어지더라구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김에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IT기기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원래는 ‘오늘의량식(dailypred)’이라는 채널명으로 IT꿀팁이나 전자기기 리뷰 콘텐츠를 올렸어요. 그런데 구독자분들께서 IT영상보다 조기 은퇴 관련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조기 은퇴에 초점을 맞춘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독특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의 닉네임 ‘쁘레드아저씨’도 과거 채널명이었던 ‘오늘의량식(양식, pead)’에서 비롯됐다. 은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과 재테크 공부 팁, 파이어족으로 살면서 느끼는 장단점을 주로 다룬다.


은퇴 전에는 주로 지점에서 근무하며 개인/기업대출, 외환업무를 담당했다. 본점 증권운용부에서도 일했다. 돌고 도는 돈이 모이는 곳, 세상 부(富)의 흐름이 보이는 곳이 은행이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은행에서 근무하는 동안 돈이 무엇인지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사회적으로 한참 일할 나이에 탄탄한 직장을 자발적으로 그만두고 나온 이유를 묻자 쁘레드아저씨는 “꾹 참고 계속 다녔다면 매년 1억씩 받을 수 있었기에 포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솔직히 답했다.


최대한 오래 다녔으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한 번뿐인 인생이니 스스로를 위해 살고 싶었다고. 직장 다닐 때는 하루하루 힘들어서 빨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막상 퇴직하고 나니 그간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 직장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은퇴라는 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돈도 필요하고요. 준비는 언제부터, 어떻게 하셨나요.


은행 입사하자마자 제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바로 깨달았습니다. 은행 업무라는 게 큰 돈을 다뤄야 하는 일인 동시에 사람도 같이 대해야 해서 스트레스가 많아요.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처음에는 해외 MBA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리먼 사태가 터지면서 유학은 포기했고 아예 재테크로 공부 방향을 바꿨어요.


저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준비했습니다. 동네 도서관과 교보문고에서 싹 쓸어 읽었어요. 부동산, 주식, 회계, 외환, 파생상품 등등 경제 관련된 책을 진짜로 몇 백 권 읽었습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했고, 재테크라는 것이 어차피 은행에서 하는 일과 다 연관된 것이라 돈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는데 그 중에서도 워렌 버핏 선생님의 가르침이 제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그는 자기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나누는 버핏을 ‘선생님’이라고 칭하며 ‘자산운용업계의 백종원’이라고 표현했다).


그 덕분에 다양하게 자산을 늘려서 지금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됐어요. 주식투자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수익형 부동산이 매달 생활비를 벌어 주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제일 먼저 샀었는데 아파트는 퇴직할 즈음 다 팔았습니다. 마이너스통장 빼고 지금 대출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직장이라는 타이틀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 

배울 점은 많았지만 힘겹게 다니던 직장을 자기 발로 나왔다. 애써 일하지 않아도 매달 ‘따박따박’ 생활비가 들어온다.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고 은퇴했으니 하릴없이 집에서 놀기만 하는 걸까? 지금까지 인터뷰한 파이어족들은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 은퇴 전에는 주로 생계를 위해 일했다면 이제는 자아실현이 제1목표가 됐다는 의미다. 쁘레드아저씨 역시 “일은 신성한 것이고 일을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 자체를 아예 하지 않고 산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조기 은퇴하고 난 뒤에 하는 일은 그전과 달라야 합니다. 은퇴하고 나서도 또 다시 돈 벌 생각으로 일 해야 한다면 그건 ‘이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유튜브 '조기은퇴TIP연구소' 영상 캡처

파이어족으로 생활하면서 곤란한 점을 다루신 영상에서 ‘한참 일할 나이의 남자가 대낮에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때 남들의 시선이 민망하다’고 하셨더라고요. 그 부분이 정말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기억에 남습니다. 기혼자의 경우 은퇴 결정이 더욱 어렵다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많이 들었고요. 조기 은퇴에 대해서 가까운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많은 분들이 조기 은퇴에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데, 정작 은퇴하시면 돈 말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생깁니다. 일단 예전에 쓰던 명함을 쓰실 수 없고요. 매일 아침마다 가던 ‘자리’도 사라집니다. 동료도 없어져서 많이 외로워 지실 거예요. 금전 이외에도 사회생활이 주던 가치들이죠. 이게 은퇴와 동시에 없어져 버립니다.


결국 은퇴한 다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걸 재정의해야 하는 숙제가 생기는 셈이에요. 은퇴 전에는 ‘A회사 다닌다’ 라는 식으로 소개하면 되지만 은퇴 뒤에는 아니니까요.


은퇴는 모든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한참 일할 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면 남들과 달라 보일 수밖에 없어요. 이게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라서 주목을 끌게 됩니다. 남들의 시선을 우호적으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으실 거예요.


또 결혼해서 아이가 있으신 분이라면 아이가 나를 어떻게 볼지도 정말 중요합니다. 이건 돈이 충분히 있냐 없냐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내 가족, 내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는 길은 오롯이 은퇴 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혼하기 전부터 “조기 은퇴 할 거다”라고 말했거든요. 가족들이 제 결정을 존중해 주고 지지해 줘서 행복하게 이런 문제들을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이스라엘로 교환학생 갔을 때 찍은 사진. 이 때 코셔(유대교 율법에 따라 준비된 음식. 도살 시 가축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위생적으로 가공된다는 점 때문에 유대인이 아니라도 코셔 인증 받은 식품을 찾는 사람이 많다) 문화를 접하면서 동물복지는 물론 '정당하게 돈 벌기'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은퇴 뒤 예전보다 돈을 많이 소비하지 않고도 만족스럽게 생활 중이라는 말씀도 인상깊었습니다. 조기은퇴자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마인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실적으로 월급 받던 때처럼 소비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돈 대신 시간이 많아지니까 전에는 돈 써서 처리했던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거든요. 적은 돈으로도 더 큰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들을 다 먹지도 못 하고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린 적이 많았어요. 이제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또 평일 낮에 돌아다니면 가격은 싼데 서비스의 질은 더 높아요. 지금 조기 은퇴 4년차인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줄지 않더라구요. 오히려 이렇게 쓰면 죽기 전 때까지 내가 번 돈 다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물질적으로 조금 부족해도 사는 게 행복합니다. 저는 이제 믹스 커피에 우유랑 얼음을 넣어 마시는데 그게 직장 다니면서 야근할 때 마시던 카페 커피들보다 더 맛있더라고요.


그리고 항상 ‘은퇴하지 않았을 나 자신’과 경쟁하면서 산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은퇴하지 않았더라면 앞으로 받게 될 연봉을 시급으로 계산해 보니 5만원 정도 되더라고요. 매일 시간당 그만큼의 가치를 만들어내자는 다짐을 합니다.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건강도 잘 챙기고 새로운 것도 배우면서요. 은퇴하지 않았을 나 자신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아이 커가는 모습 볼 수 있어 행복 

‘잘 나가던 직장인’ 시절에 비해 금전적 여유는 줄었지만 시간을 주체적으로 쓸 수 있게 됐다. 제주도 일 년 살기 버킷 리스트를 달성했고, 앞으로는 농막 짓고 텃밭 가꾸기·어학연수·검도 다시 시작하기가 목표다. 요즘에는 빨래, 설거지, 청소를 적극 연구해서 효율적 루틴을 만들고 서툰 칼질이나마 요리도 직접 한다.


이 모든 노력의 중심에는 자식사랑이 있다. 그는 “아이 한자, 수학, 영어 과외도 직접 해 준다. 아이가 잘 클 수 있도록 서포트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시간을 배분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시국 이전에는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창업 교육도 받고 IT국비교육도 받았다.

사진=본인 제공

IT분야 창업 교육도 받고 준비중이라고 하셨는데 예전부터 꿈꾸던 분야였나요? 미래 계획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 주셨어요. 그땐 컴퓨터가 한 달치 월급만큼 아주 비쌌거든요. 유년시절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 컴퓨터 덕분인지 학교에서 컴퓨터부 부장을 했습니다. 전국대회 나가는 것도 준비해 보구요. 어린 저에게 스스로가 대단히 중요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현실적 여건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진로는 포기하고 결국 문과생 은행원이 되었습니다.


퇴직을 하고 나서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가 돌이켜보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그 꿈이 제일 먼저 생각 나더라구요. 그래서 내일배움카드 제도를 통해서 총 2,000여시간 정도 IT교육을 받았습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니까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도 들더라구요. SQLD라는 데이터베이스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지금 꼭 창업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하는 건 아니구요. ‘내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한가?’ 이런 것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배워보고 있습니다. 요즘엔 컴퓨터 말고 세무사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또 시간 역시 많으니까 언젠가 무엇 하나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진=유튜브 '조기은퇴TIP연구소' 영상 캡처

‘돈독처럼 무서운 게 또 있을까’라는 영상에서 “돈도 정당하고 도덕적으로 벌어야 된다” 면서 비트코인 과열양상을 비판하셨어요. 요즘 같은 시기에 상당한 소신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그리고 자산 증식에 대한 쁘레드님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도덕(moral)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먼저 갖추지 않고 너무 큰 돈을 갖게 되면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도덕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는 법은 제가 감히 말씀드릴 주제는 아닌 것 같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워렌 버핏 선생님을 보며 배우는 점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도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존경받는 세계 최고 부자와 동시대를 살아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렌 버핏 선생님은 심지어 비밀 없이 자기가 아는 것들을 쉽게 풀어서 알려주십니다. 자산운용업계의 백종원 선생님이죠. 그분 스타일이 고리타분한 것 같지만,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남다른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게 또 긴 시간을 통해 검증된 것입니다. 워렌 버핏 선생님의 가르침만 잘 살핀다면 도덕을 지키면서도 부자가 되는 법 역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이란?
“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고,
나를 성장하게 하는 모든 과정” 

44세, 은퇴 4년차.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앞으로도 쭉 뛰고 싶다는 ‘쁘레드아저씨’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들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빌게이츠 형님’처럼 큰 규모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할 수는 없겠지만 힘 닿는 대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은 꿈도 있다.


“지금 가장 큰 목표는 사랑하는 아이가 온전히 자기 발로 설 때까지 아빠의 자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꼭 달성할 수 있도록 지금 같은 행운이 계속되기를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