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약사’ 안정적 직업 버리고 호주, 캐나다로 간 그녀

[라이프]by JOB화점

[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약사 생활을 뒤로하고 호주로 훌쩍 떠난 여성이 있다. “약사는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에 한국을 떠난 그였지만, 호주에서 다시 약사가 되었다. 영주권을 받고 정착할 만 했더니 또 캐나다 영주권을 받아 떠난단다. 이번에는 캐나다 약사가 되기 위해서. 한국 약사, 호주 약사이자 캐나다 약사 준비생인 손정은 씨를 이메일로 만났다.

한국을 떠나 호주로, 호주를 떠나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약사 손정은 씨. 손정은 씨 제공

-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튜브 채널 ‘둥근이가 떴습니다’의 둥근이, 그리고 블로그 ‘벨끄&아이다’의 아이다입니다. 저는 현재 한국과 호주 약사이고, 올해 5월부터 밴쿠버에서 인턴 약사로 일하게 되는 캐나다 약사 준비생입니다.”


- 한국에서 호주로, 호주에서 또 캐나다로.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길을 찾아서 약사가 되었던 제가 어쩌다 보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별것 아니다.’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곳에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소심한 도전가, 호주로 가다 

자신을 ‘안전한 길로 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손 씨는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약대에 간 건 졸업 후 진로가 안정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대입 준비생 시절 부산대학교 약대,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 합격증서를 받았던 손 씨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약사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로 진로를 택했다. 그랬던 그가 모든 걸 뒤로하고 호주로 떠난 이유가 궁금했다.


- 호주로 떠나기 이전, 한국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 미술, 컴퓨터를 좋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고1 때는 부모님께 미대에 보내달라고 조른 적도 있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좀 더 고려하게 됐죠. 좋아하는 건 취미로, 진로는 안정적으로 선택하여 약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약대 마지막 학기에 실습을 나갔던 대학 병원에서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4년을 일했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 여가 시간에는 좋아하는 일들을 계속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 없이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죠.”


- 본인을 “안전한 길로 가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요. 호주 행이라는 도전을 택하신 계기가 있나요?


“병원 4년 차 시절, 제가 생각했던 안정적인 삶이 행복한 삶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손 씨는 병원 약사를 그만둔 후에 캐나다 유학에 눈을 돌렸다. 주변에 캐나다 행을 준비하는 약사가 많았기에 막연한 관심이 샘솟았지만 ‘안전 지향’인 그에게 도전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동네 약국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던 그 즈음 손 씨는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일부 환자가 가진 '약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처음 마주했고, 자신이 약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손 씨는 호주 이민을 준비 중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호주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 접하고 유학을 고민했다. 해외로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기에 결심을 굳히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로 떠났습니다. 영주권을 받고 이민을 간 것이 아니라, 일단 가서 부딪혀 보고 길을 찾으려고 떠났죠.

손정은 씨와 남편. 손 씨는 남편을 두고 "제 도전의 시작이자,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손정은 씨 제공

- 남편을 만나신 게 호주 행의 계기가 되신 것 같은데요. 두 분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기타 동호회에서 만났어요. 만난 지 몇 달 만에 (사귀기도 전이었는데) 자기랑 결혼하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 오빠는 어떨 것 같은데?”라는 제 대답에 남편은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생각해 봤습니다.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어떨 것 같은지. 괜찮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여태 그렇게 살고 있네요.


제 블로그 타이틀인 ‘벨끄 아이다'라는 말은 연애시절 남편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이기도 합니다. ‘별것 아니다'의 경상도 사투리죠. 저는 남편이 이 말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모든 일을 ‘별것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도전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배우고 싶었죠.


남편은 제 도전의 시작이자,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에요.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호주로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원래 겁이 많고 걱정과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편이 옆에서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기다려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어요. 남편 덕분에 겁나는데 눈 질끈 감고, 잘 될 거라고 믿으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힘들 줄 아는데도,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재밌기도 하지 않았냐"라고 묻는 그 말에 넘어가서 또 캐나다로 가는 거고요. ㅎㅎ”


- 약사에 대한 회의감이 크셨다고 했는데, 왜 호주에서 다시 약사가 되었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워킹홀리데이비자 만료 후 호주에 계속 살려면 영주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호주에서 약사 시험을 치는 거였어요. 앞으로 호주에서 어떻게 살지는 영주권을 받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손 씨는 “처음에는 호주에서 약사가 아닌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유학원에서는 손 씨에게 일반 유학생 신분으로 호주에 머무르기 위해 4년간 1억 원이 넘는 학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큰 돈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던 중 손 씨의 눈에 띈 것이 ‘호주 약사 시험’이었는데, 한국 약대 졸업생이라면 영어 시험과 약사 시험 1차(총 3차)까지만 통과해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 약사가 되려 시험을 본 것이 아니라 호주에 살고 싶어 시험을 본 셈이다. 다시 ‘진짜 약사’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어 공부를 하다가 ‘직업의 장단점'에 대해서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는데요. 그 질문에 답하면서 제가 약사라는 직업 자체가 아닌 일했던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호주라는 다른 환경에서 약사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주에서 약사로 일해보고 나서 다시 약사라는 직업이 좋아졌다”는 손 씨지만 “그 말이 곧 호주 약사는 꿈의 직업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호주에서의 약사 생활은 장단점이 있고 이는 개인의 능력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호주에서 다시 약사가 되다 

약사 시험 통과 후 비자를 승인 받고 인턴 약사로 취업하기까지 3년. 인턴 근무 1824시간을 채우고 정식 약사가 되기까지 1년이 더 걸렸다. 비자 조건 때문에 대도시가 아닌 시골 약국에서 인턴을 시작한 손 씨는 그 기간 중 ‘고생했던 인턴 시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정식 약사로 일하시게 되기까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인턴 근무했던 약국의 약국장은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야 할 일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약사와 직원들이 단체 사직하는 사건이 터졌지만 저는 인턴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두지 않았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 달 후 약국에 불이 나 건물 절반이 탔고, 약은 전부 폐기했죠. 그래도 일을 했습니다. 새로 뽑은 직원과 약사는 아는 것이 없었어요. 겨우 인턴이던 제 비중이 얼마나 커졌는지 상상이 가시나요. 빈 사무실을 렌트하고, 주변 약국에서 약을 빌려 업무를 재개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셋업하고, 다시 약국 비슷한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 몇 달 동안 진짜 힘들었는데, 그때 ‘문제 해결 능력'이 진짜 많이 는 것 같아요.


모든 과정이 끝나 정식 약사 등록이 완료되었을 때의 기억도 아직 생생합니다. 전날까지는 (인턴이라는 이유로) 모든 일에 약사의 확인을 받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항상 약사의 조언을 받았는데, 하루 사이에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어졌으니까요.”

호주에서 인턴 약사로 근무하던 시기 불타버린 약국 내부와 인근 사무실에 꾸린 임시 약국에 구비했던 약들. 손 씨는 약국 화재 이후 임시 오픈한 약국에서 필수 약품조차 구비하지 못한채로 힘겹게 근무했었다고 설명했다. 손정은 씨 제공

마침내 호주에서 정식 약사가 되어 병원 약국으로 이직하고, 번듯한 대도시 약국으로 다시 한 번 이직했지만 손 씨는 또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이번에는 캐나다로의 이주를 결정한 것이다. 더구나 캐나다로 떠나기 전 반년은 다니던 약국을 그만두고 ‘로컴 약사’로 일했다. 로컴 약사는 기존 약사의 휴가, 사직 등으로 결원이 생길 때 일정 기간 동안만 고용하는 임시직 약사이다. 손 씨는 “남편과 함께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6개월을 어떻게 보낸 걸 제일 잘했다고 기억하게 될까’를 고민한 끝에 (힘들어도)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죠. 그러고 나서 차에 실을 수 있을 만큼의 짐만 들고 여기저기 떠돌면서 7개월을 보냈습니다. 

- 호주 여러 지역에서 바쁜 삶을 보내셨어요. 가장 행복했던 시기와 이유가 궁금합니다.


”망설임 없이 정식 약사 1년 차 때를 꼽을 거에요. 인턴 시절이 워낙 암흑기였기에 그 곳에서 벗어났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이직을 했던 약국이 객관적으로 봐도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당시 일했던 곳은 비영리 사립 병원에 소속된 약국이었는데요. 오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대로, 규정대로, 윤리적으로, 약사가 해야 할 일들만 생각하면 되는 환경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약사로서 할 수 있는 전문 서비스들도 많이 제공했고요. 무엇보다도 같이 일했던 팀이 정말 좋았어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고, 즐겁고 보람찬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약사로 첫걸음을 떼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또 그런 약국에서 그런 팀과 일할 날이 올까요?” 

한국을 떠나 호주로, 호주를 떠나 캐나다로 

-캐나다로 떠나는 이유에 대해 “호주가 싫어진 건 아니고, 다양한 미래의 선택지와 도전을 위해서”라고 하신 바 있습니다. 왜 하필 캐나다였나요?


“남편이 여러 나라의 이민 동향을 살펴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전까지는 훨씬 어려웠던 캐나다 영주권 신청 기준이 낮아지면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조건만으로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외 이민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기회의 문이 열렸을 때 그 기회를 잘 잡는 것이 정말 중요하죠. 저희 앞에 캐나다의 문이 열렸고, 저희가 딱 맞게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망설이고 고민하면, 기회는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서 바로 준비했습니다.”


- 현재 호주, 캐나다 영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이를 유지하려 거주기간 등을 맞추는 노력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개의 영주권은 앞으로의 어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인가요?


“먼 미래까지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제가 호주랑 캐나다를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평생 두 나라의 영주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캐나다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지금 캐나다로 가는 것도 완전히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러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캐나다에 그대로 눌러 살 수도 있고, 아니면 금방 호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겠죠.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될지도, 다 정리하고 한국에서 살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그 결정을 1년 뒤에 내릴지, 5년, 10년 뒤에 내리게 될지 조차 모르죠. 아직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기에 최소한의 조건들을 채우면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캐나다에 가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2년 정도 살면서 그 후의 일들을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 동안 저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하며 살 것이고, 할 수 없는걸 억지로 무리해서 끼워 맞추려하진 않을 거예요. 딱 여기까지가 저의 계획입니다. 그렇게 장기 프로젝트는 아니죠?”


- 한국에서 호주로, 또 캐나다로.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많은 분들이 저의 상황을 이해하고 응원해주시지만, 어떤 분들은 쓸데없는 짓이나 욕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하게 될 경험들은 쓸데 없는 것이 아니고, 제가 내린 결정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욕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도 타인의 시선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면서 살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손정은 씨 제공

“겁은 많은데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서 고생 중인 소심한 도전가” 

- 삶에서 가장 잘한 결정 한 가지와 가장 후회하는 결정 한 가지를 꼽아주세요.


”여기까지 들으셨으면 예상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가장 잘 한 결정은 호주로 떠난 거예요.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그냥 부딪혀보자 하고 다 정리하고 떠나본 거요. 그래서 다 정리하고 캐나다로 떠나는 마음도 가벼워요.


살면서 크고 작은 후회를 하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후회는 힘든 순간에 밀려오고 지나가는 감정인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만 지나고 보면 그 경험들을 통해서 제가 많이 배웠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걸 깨닫고 나니 후회를 잘 하지 않게 됩니다. 저의 모든 결정들이 모여서 지금의 제가 된 거니까, 그중에 하나라도 달랐다면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겠죠? 저는 지금 제 모습에 만족해서 돌려놓고 싶지는 않아요. 모든 결정이 다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미래를 꿈꾸고 계신가요?


여행하듯 살고, 사는 것처럼 여행하고 싶어요. 일생을 긴 여행 온 것처럼 생각하고 많이 돌아다니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살고 싶습니다. 빨리 달려야 할 때만 바짝 힘내고, 피곤하면 좀 많이 쉬어가면서, 남편이랑 손잡고 속도 맞춰서 천천히 다니려고요.


- 도전, 정말로 “해보니 벨끄 아이다” 맞나요? 도전하고 싶지만 용기 내지 못하는 ‘겁쟁이’들에게 한 마디해주세요.


“Hell, yes! 지나고 보면 다 벨끄 아입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요.(웃음)


저는 원래도 그랬고 지금도 겁이 많습니다. 하지만 힘든 순간은 지나갈 거고 많은 걸 배울 것이라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겁나도 저질러볼까 하는 마음이 꼬물꼬물 생깁니다. 옆에서 괜찮다고 주문 외워주는 사람이 있으니 눈 딱 감고 가보는 거고요.


예전의 저에게 누군가가 ‘해봐도 된다’, ‘같이 해보자’고 말해줬다면 저는 더 빨리 움직여 볼 수 있었을 거예요. 아무도 그래주지 않았거든요. ‘정말 하려고? 꼭 해야겠어? 잘 생각해 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해보세요. 미리 걱정하지 말고, 변명 만들지 말고,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부딪혀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분명 후회합니다. 그때 할걸, 이제 너무 늦었다고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도 아직 늦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요.”


그는 자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겁은 많은데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서 고생 중인 소심한 도전가’라고 했다. 도전이란 겁이 없어서 할 수 있는게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겁이 나도 저지르는 것 아닐까.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 주문입니다. 외우세요. ‘벨끄 아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

2021.07.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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