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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금수저라 퇴사한게 아니니까...“회사 일 아닌 ‘내 일’”

byJOB화점

[퇴사 일기]<4> N잡러가 된 퇴사자의 '나'를 위해 사는 '나'로서의 여정


《'직장인은 항상 사직서를 품고 산다'는 말을 실천한 우리 주변 평범한 퇴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가슴 속 사직서를 던지기 전 엿보고 싶은 남들의 '퇴사 일기'.》 

코로나19 시작 시기에 자발적으로 퇴사했어요. 이런 시대가 올 줄 몰랐죠. 여러분은 퇴사하실 때 꼭 뉴스와 신문을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황은지 씨 제공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고 바느질하는 삶을 살고 있는 ‘N잡러’ 황은지 씨(32). 은지 씨는 코로나19 전염병이 시작되던 지난 2019년 12월 회사를 그만뒀다. 그 후 선택한 새로운 직업은 (하필이면) 자영업자 겸 프리랜서. “이런 시대가 올 줄 모르고 퇴사했다”는 그는 현재 친언니와 함께 ‘풍요하리 제작소’라는 공방을 운영하며 독립출판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어려운 시기, 직장을 떠난 N잡러의 퇴사 이야기가 궁금했다.


- 언제 퇴사를 하셨고, 직장생활은 얼마나 하셨나요?


“2019년 12월, 코로나가 발병한 시기에 자발적으로 퇴사했어요. 사실 이런 시대가 올지 모르고 퇴사했답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퇴사하실 때는 꼭 뉴스와 신문을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직장생활은 약 6년간 했고, IT회사를 다니다 이직해 퇴사 직전에는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했어요. 원래 문헌정보학을 전공했거든요.” 

‘일’을 하기 위해 한 자발적 퇴사

2019년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의 황은지 씨. 황은지 씨 제공

- 퇴사를 선택하신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퇴사하던 때 친언니가 바느질 공방을 열었어요. 그 즈음 저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에 푹 빠져 있었고요. 제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갈고 닦아서 공방에 적용하면 잘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원래 제 꿈이 ‘조기 은퇴’ 였거든요. 거기에 직장에서 억울한 사건이 있었고 따돌림을 당하게 된 것이 방아쇠가 됐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직장생활마저 여의치 않아지니 퇴사 결심이 선 거죠.”


-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의 기분이 궁금합니다.


“그때 저는 많이 지친 상태였어요. 스트레스로 자가면역 질환 증세가 나타났고, 사무실에서는 숨이 안 쉬어지는 날도 있었죠. 하지만 사직서를 제출하고 귓가에 시끄럽게 울리던 내적 잡음들이 모두 조용해졌어요. 즉시 고요한 상태가 찾아와서 신기했습니다.”


- 많은 퇴사자들이 퇴사 후 재충전의 시간을 갖더라고요. 은지 씨도 그러셨나요?


“탈탈 소진된 상태로 퇴사를 했더니 재충전의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반년 이상 걸린 것 같아요. 참 힘든 시간이었는데 회사원 습관에서 하나, 둘 벗어나다 보니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가장 먼저 바꾼 습관은 ‘알람을 끄는 일’이었어요.” 

퇴사 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N잡러가 되다 

하지만 퇴사를 했다고 모든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6년간 직장에서 돈을 벌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 불안함이 생겼고 “너 아직도 노냐”는 주변의 오지랖이나 시선들도 힘들었다. 실제로 다시 이력서를 써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취업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지 씨는 직장으로 돌아가는 대신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N잡러’가 됐다. 

결국 이 길을 가라는 계시였던 거 아닐까요? 우주가 도왔던 것 같아요. (웃음)

황은지 씨는 퇴사 후 공방 운영, 독립 출판, 비대면 클래스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N잡러가 됐다. 황은지 씨 제공

- 퇴사 후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그림책과 에세이 총 2권을 독립출판하고 일러스트도 그리고 있습니다. 또 언니와 함께 운영하는 바느질 공방에서 캐릭터 굿즈 제작·판매나 비대면 그림책 낭독 클래스, 바느질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하고요.”

- 공방 운영, 독립 출판, 그림책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다양한 일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왕 퇴사한 것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싶었어요. 다들 학교,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 알고 살잖아요. 저도 그게 행복해지는 길인 줄 알았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어느 순간에도 제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요. 심지어 천직을 찾기 위해 전공 살린 취업도 성공했는데, 일에 대한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길게 사는 인생인데 그 가치를 꼭 찾아보고 싶었어요. 유일하게 좋아서 시작한 일은 제게 어떠한 길을 제시해줄지 궁금했습니다.”


- 조기 은퇴하신 분들을 인터뷰하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이 있어요.’ ‘진짜 나를 찾아서’ 퇴사했다는 말이요. 은지 씨는 어떤가요?


“저도 공감해요. 퇴사 무렵 ‘그 정도 실력으로는 결국 직장으로 돌아올 거’라며 저를 폄하하는 동료가 있었어요. 그 때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탓에 기분이 상했죠.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진짜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나의 중심을 찾는 일’인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제게 있어 회사생활로는 찾을 수 없는 가치였어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었던 그림 에세이를 만드는 일은 은지 씨에게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는 힘이 됐다. 황은지 씨 제공

자발적 퇴사자라고 전부 ‘금수저’는 아니다 

자발적 퇴사자 인터뷰에 자주 달리는 “금수저”는 댓글이 생각나 은지 씨에게도 물었다. 기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은지 씨는 “학창시절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과 성적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마쳤고,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을 정도”라며 손사레를 쳤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직 싱글이고 모아둔 적금이 있기에 자발적 퇴사를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


- 퇴사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경제적 이유 같아요. 속된 말로 돈벌이, 밥벌이라고 하죠.


“퇴사 전에도 지금도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자인 지금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직 계획에 따라 초석을 다지는 기간이고 그 계획을 따라가다 보면 밥벌이 이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위 질문에 이어서, 지금의 경제적 상황은 어떠신가요.


“벌어 둔 돈과 열심히 언니와 공방 운영을 하면서 얻은 수익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저희 브랜드를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붙들며 앞으로 나아가기

퇴사 후 운영 중인 공방에서 작업하는 모습. 황은지 씨 제공

-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퇴사자로서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퇴사자로서의 삶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서 흥미진진하지만 절벽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기도 해요. 이게 진짜 인생인가 싶어 눈물 훔치는 밤이 많았는데, 이 또한 적응이 되니 제 삶이 되었습니다.”


- 다시 회사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을까요?


“퇴사 선배인 언니가 회사로 돌아갈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자영업자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해줬는데요. 제 길을 가기 위해 매번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붙잡으며 살고 있습니다.”


- 회사라는 울타리를 떠나 여러가지 일을 하는 지금이 버겁지는 않나요.


“버거움도 당연히 있어요. 며칠 전 퇴사 상담을 해온 친구에게 냉혹한 현실에 대해서 얘기해주기도 했죠. 안정적인 월수입도 없고, 내일, 다음주, 다음달의 계획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회사가 아닌 저 자신의 선택이기에 책임감이 커진다는 거에요. 그래서 해낼 수 있더라고요.”


은지 씨는 올해 더욱 많은 일을 할 계획이다.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하고 클래스도 진행이나 핸드 메이드 페어 참여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언니와 함께 공방 브랜드를 키우는 게 최우선이라고. 직장인이던 때와 퇴사한 후의 자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은지 씨는 “타인을 위해 살던 나에서 나를 위해 사는 나로서의 여정”이라고 답했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삶이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종종 제 삶이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방에서 기르는 식물들의 새싹을 보면 설레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마저 좋아요.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