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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서른 넘어서 호주 워홀, 딸기 따며 그림 그립니다"

byJOB화점

[한호일보XJOB화점/도전하는 사람들] 호주 워홀 일상 연재하는 박하정 씨


호주 워킹홀리데이 계획 중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워홀러’ 박하정 씨. 퀸즐랜드 주 카불쳐(Caboolture) 딸기 농장에서 일하는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닉네임 ‘박하’로 활동하며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주거생활, 농장 노동자의 삶, 언어의 장벽 등 호주에서 사는 한국인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법한 사례들을 귀여운 캐릭터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박 작가의 인스타툰은 구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낮에는 딸기 따고 밤에는 만화를 그린다고 하면 낭만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카불쳐는 워킹홀리데이 중인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기로 악명 높은 지역이다. 6월부터 딸기 철이 시작되고 9월인 지금은 일이 가장 몰릴 때다. 주5일 동안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토록 고강도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사진=박하정(박하) 씨 인스타그램 (@pakaaa_ra)

“카불처에서 딸기를 따다가 너무 힘들어 울면서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한국인 워홀러들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농장 육체노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중에서도 딸기는 픽킹(수확)이 꽤 까다로운 작물에 속합니다.”

서른 넘어 호주 워홀, 버릴 게 없었기에 오히려 쉽게 결심 

하루 종일 육체 노동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을 것 같은데, 박 씨가 피곤을 이겨내고 그림 작업을 계속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자신의 청춘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박하정(박하) 씨 인스타그램 (@pakaaa_ra)

“어느 작가분께서 ‘작가님 만화 열심히 봤더니 이제 바로 워홀 다녀와도 될 것 같아요. ‘라는 댓글을 남겨 주신 게 기억나요. 인스타툰을 지속적으로 연재하는 이유는 앞으로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처음 호주에 올 때 블로거, 유튜버 분들이 올려주는 정보가 큰 도움이 됐거든요. 그리고 호주에서 보내는 나의 청춘을 기록한다는 이유도 있어요.”

호주에 오기 전 박 씨는 한 분야에 정착하지 못하고 디자이너, 공예, 책 콘텐츠 기획 등 여러 일에 도전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결정하지 못 해 고민이 많았다고.


경력이 쌓이기도 전에 분야를 옮겨 일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안정적 생활을 꾸려가는 친구들을 보며 막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는 “탈출구가 필요했고, 도망치듯 호주로 떠나 온 느낌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런 생각들을 그림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만약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생활하고 있었다면 30세가 넘어서 호주로 오는 결정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적었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호주행을 더 수월하게 결심할 수 있었어요.”

그림·디자인 전공했지만 여전히 어렵다…그래도 즐거워

박 씨는 애니메이션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2D, 3D 애니메이션과 영상을 배우고 서울여대에서 콘텐츠 디자인을 전공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과 친한 삶을 살며 해당 분야에서 일도 했지만 여전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숙제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게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이 전공이 되니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누가 뭐라든, 잘 그려지든 안 그려지든 개의치 않아요. 전시회를 할 것도 아니니까 부담을 내려놓고 나만의 공간에 나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림도 늘 것 같아요(웃음).”

온라인에 만화를 연재한 뒤로 박하정 씨는 스스로가 생산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 속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사진,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림으로도 만들어내는 과정이 생활에 활력을 준 것. 인스타그램에 올린 만화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묻자 박 씨는 ‘나는 농장에 맞을까 공장에 맞을까?’ 편을 꼽았다.

사진=박하정(박하) 씨 인스타그램 (@pakaaa_ra)

사진=박하정(박하) 씨 인스타그램 (@pakaaa_ra)

“코로나가 끝나고 호주로 오게 될 워홀러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고기 공장에서 일주일 만에 도망쳐 나왔어요. 하지만 농장은 2년 가까이 일하고 있어요. 의외로 농장 일이 잘 맞고 업무 성적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재미있기도 하고, 하루를 끝내고 돌아오면 뿌듯함도 느낍니다. ‘호주 워홀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 게 좋다’ 같은 정답이란 없지만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호주에 온 뒤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안 하게 됐어요”

새로운 도전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나이 강박'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 진학, 취업, 결혼 등 연령대에 따라 '성취'해야 할 과업들이 시간표처럼 죽 늘어서 있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남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기 마련이다.


서른 넘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박 씨는 호주 생활을 하며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사진=박하정(박하) 씨 인스타그램 (@pakaaa_ra)

“호주에 온 뒤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이 있어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라든가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나이가 아닌데…’ 같은 생각들에서 자유로워지니 미래 생각, 공부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습니다."

그의 미래 계획은 어떨까. 일단 단기 목표는 딸기 시즌이 끝난 뒤 블루베리를 따기 위해 지역을 옮기는 것이다. 장기 계획은 ‘농업 공부’와 ‘영주권 획득’이다. 원래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고, 농장 일을 경험하며 농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하정 씨의 최근 관심사는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와 소박하고 단순한 삶 ‘미니멀 라이프’다. 일을 통해 비전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웃음을 선물하는 ‘박하 작가’의 연재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한호일보 김형주 기자 julie@hanhodaily.com

JOB화점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