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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여유, 호주에서 깨달았어요"

byJOB화점

한국에서 호주 대학 출신 아티스트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청년 아티스트 천윤화 씨는 멜번RMIT(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에서 미술(Fine Arts) 학사 과정을 마치고 2년간 호주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한국에서 개인전 등 다양한 전시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도 목소리를 냈고, 최근 전주 아트 갤러리에서 협업 작가들과 <BIBIM:비빔> 전시를 했다. 체험형 편집숍 ‘패브리크(FABRIK)’ 오픈기념 ‘월 니팅(Wall Knitting)’ 작품을 설치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때의 경험이 작업세계의 기초가 됐어요. 현재는 물리적 공간을 떠나 보이지 않는 현미경 속 작은 세계나 우주의 공간 등을 평면회화, 설치, 종이 드로잉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원어민(호주인) 교사로부터 호주와 멜번의 미술교육에 대해 듣게 된 것이 호주 유학(2006년)으로 연결됐다. 예술 과목 위주로 VCE(Victorian Certificate of Education: 빅토리아주 대입과정)를 준비하며 대학에 입학했다. 그에게도 낯선 땅에서 시작한 유학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언어가 유창하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답답함이 컸어요. 한국에서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신나게 놀았는데 호주에서는 말을 못 하니 ‘그냥 가만히 있자’ 하던 때가 많았죠. 그런데 결국 시간이 흐르면 언어도 늘기 마련이고 사람의 본 성격은 바뀌는 게 아닌지라 어느새 활기찬 옛날의 나로 돌아와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외롭고 힘들었던 적응 기간에 천 씨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일기쓰기’ 였다. 인터넷도 잘 안 되던 때라 가만히 앉아 한두 시간 동안 일기를 썼다. 중간중간 귀여운 스티커도 붙여 가며 답답한 마음을 글로 적다 보면 마음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고. 

'예술이 존중받는 도시' 멜번에서 매일 영감 받아 

멜번은 길거리 예술로도 유명한 도시다. 그래피티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골목 호시어 레인(Hosier Lane)에서부터 광활한 대자연의 감동이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까지, 어디에서든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다.


“가장 많이 방문했던 장소는 멜번의 NGV(National Gallery of Victoria) 미술관과 랜 포터 센터였어요. 특히 NGV는 연간 회원권을 끊고 집처럼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출출하면 멤버 라운지에 가서 할머니들 사이에서 쿠키를 먹고, 상설 전시는 외울 만큼 자주 봤어요. 특별 전시는 원하는 만큼 보고 또 봤고요. 


칼튼(Carlton) 지역에 살 때는 멜번 박물관에 자주 다녔습니다. 공룡 뼈도 보고, 호주 역사관도 자주 방문했습니다. 멜번의 옛 가옥을 재현해 놓은 전시가 그때는 참 재미있었어요. 미술관에서 느껴지는 차분함과 박물관에서 아이들의 흥미로운 표정이 기분 전환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Unrealistic Reality (2018,80x117, 판넬아크릴 50호)

하루 30분이라도 오롯이 나를 챙기는 여유, 호주에서 배우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돌보며 일하는 ‘워라밸’을 지향하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호주에서 살면서 얻게 된 것이 바로 ‘여유’ 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여유를 많이 잃어버렸지만, 나 자신을 돌아 보는 여유, 바쁜 시간 속에서 휴식을 찾으려는 여유를 호주에서 얻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그가 호주에서 살며 만난 호주인들은 하루 24시간 중 단 30분이라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온전히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 쓰고 있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커피는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커피를 마실 거야’ 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챙기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고. 한국에서 늘 바쁘게 치여 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2년 동안 멜번에서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도 한국과 호주의 다른 점을 느꼈다. 천 작가는 “멜번에서는 개념이나 표현하는 형태가 중심인 반면 한국은 ‘기술’이 먼저 보일 때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천윤화 작가의 작업실

한국과 호주에서 각각 예술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기술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제 작업도 호주에서 공부했을 때는 그 속에 어떤 생각을 집어 넣느냐를 생각했다면 요즘엔 어떻게 그 생각을 기술적으로 더 완벽하게 구현하느냐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술가로 살기, 쉽지 않지만… 천 작가의 대표작은 회화 작품들이지만, 작가 본인은 ‘월 니팅 (Wall Knitting)’에도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회화 작품은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표현한 것이라면, 월 니팅 작품은 벽에 실을 엮어서 회화를 다시금 공간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월 니팅(Wall Knitting)

삶에 힘이 되는 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점과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가장 힘든 점인데, 다행히 요즘에는 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정부 지원금 등 제도도 많이 개선되고 있어요. 예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내가 무언가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예술 활동을 할수록 넓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것들이 제 원동력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같은 두려움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이 여정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해요.


가끔은 가지 않은 길, 지나쳐온 길, 지나간 길이 생각나기도 하죠. 아쉽고 후회스럽고, 내가 잘 했던 일은 보이지 않고 못 한 일만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한 숨 자고 일어나서 다시 하면 됩니다. 매일매일은 똑같을 지 몰라도, 매 해가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해요. 우리는 아직 청춘이니까요.”


한호일보 김형주 기자 julie@hanhodaily.com

JOB화점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