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디에서 만날까?

약속장소의 숨겨진 이야기

시간의 흐름 속, 약속장소

“노을이 나무에 걸쳐질 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만나자.”

인도의 라다크족이 ‘약속 시각과 약속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흥미로운 문장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약속을 만들어 내는 대화 방식은 그들에게 아주 익숙하다. 이에 비해 현대인의 약속을 위한 대화는 편리함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상대방을 어떤 목적으로 만나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이전보다 다양한 여건 및 선택지를 고려해야 하고, 그로 인해 약속을 만드는 과정에서 목적 달성을 위하여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편리한 장소를 탐색하게 된 것이다. 일련의 변화는 바삐 흘러가는 시간과 빨리빨리 문화가 지배하는 현대 한국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약속장소는 단순한 만남 그 이상으로 시대의 문화, 관습, 사회적 분위기를 내포한다.

 

그로 인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약속장소도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90년대 초만 해도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청년 대부분이 공감하는 대표적인 약속장소로는 종로서적과 홍익문고 등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90년대 말이 되자 그들의 약속을 위한 랜드마크는 강남 타워레코드로 바뀌었다. 불과 10년 만에 대중의 소비성향과 도시 개발 양상에 의해 선호되는 약속장소가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서울 시민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대표적인 약속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최근 들어 흥미롭게도 약속장소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이는 과거와는 달리 많은 사람이 약속장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과연 수십 년 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던 공간과 오늘날의 약속장소는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른 것일까?

우리 어디에서 만날까?

1982년 7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자.

“관철동 코아빌딩 앞에서 친구나 애인을 기다리기 위해 서성대는 젊은이들. 관철동 일대는 이제 젊음과 낭만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장발을 한 젊은이들의 모습과, 잘 정비된 도로, 4층 내외 건물이 담긴 사진 한 장, 그리고 두 줄도 안 되는 글에는 서울이란 도시의 변화상과 당시의 생활상이 압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약속장소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에게 관철동 코아빌딩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서울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60년대 서울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행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는 과정에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대규모 공공사업 및 도심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고층 오피스 빌딩이 다수 들어서면서, 종로 일대는 외형적으로 현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1974년에는 청량리와 서울역을 잇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고, 부도심에서 중심부로의 접근은 더욱 쉬워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심에 위치한 관철동에는 레스토랑, 파이힐, 코아빌딩을 비롯한 다양한 유흥업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품은 오락-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 적합한 지역으로 탈바꿈한 이곳은 속칭 ‘젊음의 거리’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2~30대가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던 관철동은 대학가의 정취와 닮았다는 의미에서 ‘종로대학’이라 불렸다. 그리고 종로대학을 중심으로 하여 이뤄졌던 유흥과 소비는 청년세대가 선호하는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도시 공간에서 발생하는 외형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변화는 새로운 문화 양식과 풍속의 정착을 유도하며, 이는 약속 장소로 주목받는 도심의 형성 또는 랜드마크의 건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어디에서 만날까?
우리 어디에서 만날까?

'쉘부르 다방'이 들려주는 약속장소의 변화

연령대에 따라, 혹은 개인적 성향에 따라 각별하게 여기는 약속장소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겠지만, 대표적인 장소로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약속장소였던 YMCA, 책을 보며 친구를 만날 수 있었던 종로서적, 80년대 이후로는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문고, 민주화 운동의 성지 명동성당 등이 있다. 90년대 초에는 강남 상권이 서울 유행의 최첨단이라 여겨지게 되면서 뉴욕제과와 제일생명이 새로운 약속장소로 급부상하였고, 90년대 후반에는 이전 시대보다 발전한 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어 약속을 정하는 반경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 이제 사람들은 특정 랜드마크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하면서도 세부적인 약속장소를 설정한다.

 

약속장소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요인은 도시의 급격한 변화와 소비문화의 변화 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7080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통기타 음악의 메카였던 종로2가 <쉘부르 다방>은 당시 약속장소의 변화상뿐만 아니라 오늘날 약속장소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원인까지도 분석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70년대 도시화,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 도심 상권을 중심으로 성업했던 다방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1987년에는 9,177개소에 이른다. 이는 다방이란 업종 내 경쟁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색다른 영업방식을 취한 다방이 새로이 생겨났다. 도심 상권에 집중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 다방의 규모는 확장되었고, 서구 문화에 사로잡힌 젊은 세대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음악다방’이란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 출현하게 되었다. 젊은 세대를 위한 새로운 유희공간으로 주목받은 음악다방은, 지식인을 위한 공론장의 역할에 충실했던 이전 세대 다방의 모습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다방은 음악 다방과 음악 없는 다방으로 나뉘어진다. 한때 명동, 소공동을 중심으로 다방으로 성공한 L씨계에서는 테이블 1백개 이상의 대형 다방을 차려 젊은이들이 원하는 유행 음악을 외국에서 재빨리 입수해 틀어주기도 했다. L씨쪽의 얘기로는 음악다방을 경영하기 위해 미국의 유행음악잡지를 정기구독, 최신 디스크를 항공우편으로 사오기도 했다나.”

–명동 1970년 다방 (경향신문 1971. 08. 05 기사 인용)

DJ가 선곡한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느덧 당시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DJ다방만이 음악다방의 전부는 아니었다. <쉘부르 다방>은 ‘전문 음악다방’으로 분류되었는데 디제잉뿐만 아니라 통기타 가수들의 공연이 펼쳐지던 공간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다방 중에서도 유독 쉘부르 다방이 오늘날 60대 노년층의 기억 속에서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약속장소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쉘부르 다방에서는 주로 모던 포크를 틀어주곤 했는데, 60년대 미국 청년들의 저항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는 모던 포크 음악은 유신 치하에 놓여 있던 한국 청년들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대부분이 상업적으로 변질된 다방 문화 속에서도 청춘은 <쉘부르 다방>을 찾았고, 이는 당시 청춘들에게 있어 쾌락과 유흥보다는 낭만과 혁명이 중요한 화두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우리 어디에서 만날까?

하지만 다방의 시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물게 된다. 1970년대 중반 이후로 불어온 강남 개발 광풍은 대형 상업시설과 쇼핑센터를 탄생시켰고, 이는 새로운 소비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커피믹스와 커피자판기로 인해 다방 문화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대다수 다방이 생존을 위한 퇴폐적인 서비스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울러 정치적 민주화와 올림픽 유치를 기점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구 유흥문화의 도입으로 인해 카페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특유의 최신 문화라 여겨진 카페 공간에 비해 다방은 젊은 청년들의 소비 심리를 부추기기에는 세련됨이 부족했다. 강남 젊은이들의 관심사에서 다방은 자연스럽게 멀어져갔고, 약속장소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강남의 다방은 화려한 유흥업소들과는 대조적으로 어떻게 보면 초라할 정도다. 대개는 아파트주변상가의 복덕방사이에 하나 둘씩 끼여 있는데다 실내장식도 볼품이 없고 시설도 지저분하다. 물론 뉴코아 쇼핑센터처럼 대형상가에는 깨끗하고 화려한 다방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반 다방은 대부분이 뜨내기 손님을 맞는 시골 다방 풍경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만남의 형태도 달라졌다. 아직도 각종 모임, 사교, 대화, 상담, 휴식의 장소로 널리 이용되는 곳이 다방이다. 그러나 강남의 어느 다방을 약속장소로 정하면 왠지 쑥스러운감 부터 든다.”

–강남 1980년대 다방 (1982.11.16 경향신문 인용)

라다크의 시선으로 약속장소를 말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의 쉼터이자 대표적인 약속장소였던 다방은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던 강남에서는 쑥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다방 커피의 가격은 그 후 생긴 카페보다 저렴했지만, 기사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소비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다방의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기사 속에 등장하는 어느 다방은 1989년에 카페로 이름을 바꾸고 오백원 하던 커피값을 천원으로 인상하였다)

 

다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쑥스러운 감이 드는 이유는 오늘날 소비문화가 타자 지향적이고 공간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쑥스러움이 도시경관에도 반영되었는지 카페는 대로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다방은 이면도로에 물러나 있다. 최근 들어 다방이 지닌 ‘저렴한 가격’이란 이미지를 빌려 가성비 좋은 커피를 제공하는 업소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그 옛날 카페가 지니고 있던 새로운 문화, 고민하는 사람, 설레는 기다림 중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다.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약속장소를 살펴보며 우리는 도시의 변화뿐만 아니라, 산업구조의 변화, 소비문화의 변화까지 읽어낼 수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라다크족의 시선으로 현대사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약속장소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너와 내가 물리적으로 만나는 1차원적 공간이 아닌, 마음과 마음, 생각과 생각이 만나는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도시가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참고 문헌

“신세대 음악있는곳서 약속”, 『한겨레신문』, 1997. 09. 19: 27.

“관철동, 세종문화회관 뒷길 등 도심에 자생하는 젊음의 광장들”, 『경향신문』, 1982. 12. 02: 11.

“강남 새 풍속도”, 『경향신문』, 1982. 11. 16: 07.

“서울 새 풍속도”, 『경향신문』, 1971. 08. 05: 07.

“1902년 호텔 다방서 커피 첫선” 『동아일보』, 1994. 04. 11: 29.

“관철동 코아빌딩앞에서 친구, 애인등을 기다리며 서성대는 젊은이들” 『경향신문』, 1982. 07. 20: 07.

이경한,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푸른길, 2012

에디터 진혜란

2018.11.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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