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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동심원 조경설계사무소 실장 이남진

by아는동네

철길에 담긴 기억을 재현하다

#경의선: 연남동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길

동심원 조경설계사무소 실장 이남진

현재의 연남동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누가 뭐래도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경의선숲길공원이다. 공원은 폐선된 경의선 철도 용지에 만들었다.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군사용 목적으로 탄생해 백 년 가까이 달린 경의선은 우리네 근현대사를 같이 겪어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중 연남동 구간은 용산역과 가좌역에서 일터에 나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서강역과 당인리발전소 사이로 석탄을 실어 나르던 구간으로 하루에도 수없이 기차가 오갔다.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모습의 연남동을 만들어온 기찻길. 기차는 더 이상 달리지 않지만, 그 자리에 들어선 나무가 우거진 공원은 이제 연남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연남동의 어제와 오늘을 잇고 내일도 함께할 경의선 철길의 자취를 더듬더듬 훑으며 동네 이야기를 톺아본다(전철화되어 신촌-가좌를 오가는 경의중앙선은 연남동과 연희동을 가르며 여전히 화물과 여객을 나른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경의선과는 다름을 미리 밝혀둔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추억

동심원 조경설계사무소 실장 이남진

2002년 여름의 경의선 풍경. 기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의 철길은 학생들의 등하굣길이었다. ⓒ 박소은, 이남진

일제의 군병력과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던 경의선은 광복 후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6·25로 잠시 운행이 중단됐던 때를 제외하면, 기차는 석탄을 비롯한 각종 화물과 사람을 싣고서 늘 달렸다. 연남동 구간의 경우 서강역 인근 연탄 공장과 당인리발전소 사이를 오가는 기차가 하루에 16번을 왕복했다. 잘게 부스러져 흩날리는 석탄 가루와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음이 지배하는 기찻길 주변은 사람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발붙일 데 없는 이들이 모여 살았다.

“사람 살 데가 못 되지, 시끄러워서. 철길 옆에 판잣집 같은 게 쭉 있었어. 한마디로 못사는 사람들 사는 집이 동교동 로터리까지 이어졌지. 나는 거기서 서울우유 동교·서교동 대리점을 운영했는데, 그땐 병 우유 시절이야. 새벽 4시가 되면 판매원들이 우유 배달을 해야 하는데 유리병 소리가 시끄러우니까 기차 소음에 가려지도록 철길 옆에다 가게를 냈지” _우한구, 연남동 36년 거주

얼기설기 만든 오막살이가 길게 따르던 기찻길은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현재의 가좌역으로부터 코오롱아파트를 질러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지나는 길에 해당했던 철로는 동네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심지어 경의선 철로의 고도가 주택가 대지보다 높아서, 차와 사람들은 철길 하부에 세워진 굴다리를 통해야만 왕래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동네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던 한편, 철길은 짓궂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아버지들의 애환이 담긴 소주잔이 맞부딪히는 장소이기도, 누나와 형의 등하굣길이기도 했다. 경의선을 바라보는 연남동 사람들의 시각이야 제각각 다양하지만,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좋으나 싫으나 당시 경의선이라는 존재가 그들 일상에 늘 바투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제가 정말 좋아한 장소가 굴다리였어요. 사거리에 굴다리가 하나 있고 다른 굴다리는 기사 식당 근처에 있었는데 저는 사거리 굴다리를 항상 지나다녔어요. 거기서 바로 내려가면 경성고잖아요. 혼자 앉아서 조용히 생각할 때도 있었고, 참 좋아했죠” _이상진, 연남동 30년 거주

 

“학창시절에 기차가 지금의 동교동 삼거리 린나이 건물 앞쪽으로 지나갔는데, 길기도 엄청 길고 속도는 또 얼마나 느린지, 등굣길에 만나면 십 분 넘게 서 있어야 했어요. 기차 지나가는 동안 막 학교 지각할 것 같아서 애가 타고, 하하” _황지은, 연남동 거주

 

“작업 초기에 주민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소음이나 먼지 때문에 당연히 경의선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동네 사람들 추억이 다 철길과 연결돼 있더라고요. 철길 따라 산책하고, 등교하고, 놀기도 하는 일상적 공간이었던 거죠” _이남진, 경의선숲길공원 조성 담당

철도가 떠난 자리를 채운 숲길

동심원 조경설계사무소 실장 이남진

2017년 여름의 경의선숲길공원. 사라진 철길 자리를 나무와 사람이 메웠다. ⓒ 박소은, 이남진

그러나 철길이 도심을 가로지름으로써 초래하는 불편과 기찻길 주변지의 슬럼화는 점점 심각한 도시 문제로 제기됐다. 이에 2005년부터 경의선 철도의 지하화 사업이 추진됐다. 지상부의 철길은 완전히 철거되고, 폐선된 부지의 공원화가 결정됐다. 버려진 철길을 도심 속 녹지로 재탄생시키는 ‘경의선숲길’ 프로젝트의 막이 오른 것이다. 효창역에서 가좌역까지 6.3km 길이에 달하는 경의선숲길공원은 1단계 구간인 마포구 대흥동 공사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연남동 구간(길이 1,310m, 면적 28,500㎡)은 2단계에 해당하며, 2015년 6월 개방되자마자 전 구간 가운데서도 가장 붐비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공원 개방과 공항철도, 홍대 상권의 이전이 교묘히 맞물려 생긴 현상이다. 다른 구간에서는 볼 수 없는 물길이나, 공원 곳곳에 철로의 흔적을 남겨 연속성을 살린 점도 눈에 띈다. 한편 선형 구조인 경의선숲길의 특성상 행정의 힘만으로는 관리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 지속할 수 있는 공원 관리를 목적으로 비영리 민간단체 ‘경의선숲길지기’가 발족하기도 했다. 뜻 있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경의선숲길지기는 공원의 변화 과정을 사진으로 담는 아카이브 작업이나, 공원 개방 이후 논란이 된 쓰레기와 소음 문제 공론화를 위해 예술가 ‘젤리 장’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시민이 주도하는 공원 운영의 선례를 남겼다.

동심원 조경설계사무소 실장 이남진

2012년 3월, 하늘에서 본 경의선 철도 폐선 부지 ⓒ 이남진

Interview

동심원 조경설계사무소 실장 이남진

동심원 조경설계사무소 이남진 실장

2015년 초여름, 경의선숲길공원 연남동 구간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원 설계를 담당한 ‘동심원’의 이남진 실장은 “마약같은 순간이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만감이 서린 얼굴을 한 그의 입에서, 사라진 철길의 정취를 공원 속에 담아낸 열두 달의 이야기가 서서히 풀려나왔다.

 

처음 연남동 구간 공사지를 답사할 당시 어떤 모습이었나?

 

그저 휑하니 잡초만 무성한 공터였다. 철길에 쓰였던 폐자재가 이미 모두 처분된 상태라 기찻길 흔적이 정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서, 어떻게 디자인할지 약간 막막했다. 그래도 대상지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만은 커 보였다.

 

공원 설계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한 요소는 무엇인가?

 

첫 번째 요소는 ‘역사성’이다. 경의선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중요한 철도였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의 수탈 속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들이 겪은 고초도 있다. 연남동 주민들에게는 오랫동안 일상적인 공간이었고. 그런 부분을 남겨두고 싶어서 옛 철길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두 번째로는 ‘유연한 공간’이 되길 바랐다. 공원이라면 주변 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활동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경의선숲길이 선형이고 폭도 넓지 않지만, 그 범위 내에서도 최대한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열린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그래서 가능한 한 ‘비우기’ 전략을 택했다. 시설 대신 사람들이 공원을 채우고, 그 안에서 소통과 네트워크가 생겨나며 여러 이벤트가 벌어지는 모습을 의도한 거다.

 

다른 구간에 없는 실개천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식재는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했는지 듣고 싶다.

 

물길 이야기부터 하자면, 연남동은 참 행운이다. 철도 지하화를 하면 주변 지하수가 지하화된 터널 쪽으로 유입된다. 철도가 지나는 길에 물이 차면 안 되니 지상으로 다 뽑아 올리는데, 연남동은 그 물의 양이 하루에 5,000톤이다. 실개천은 그 물을 이용해 만들었고, 식재는 생태적 고민보다 기찻길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그래서 세로로 쭉 뻗어 올라가는 나무라든가 바람 불면 하늘거리는 풀이나 억새 종류를 심었다. 기찻길에 남은 ‘기억의 재현’이라고 보면 된다.

 

작업 과정에서 동네 주민과 교류도 많이 했던데, 주민들 반응은 어땠나?

 

주택가 쪽 주민은 확실히 동네에 대한 애착도 크고, 서로 교류하려는 마음이 크다. 주변 가게 업주 중에도 “내가 청소 도구 사둘 테니 언제든 가져다 쓰고, 내 점포 앞은 내가 치우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주민설명회를 꾸준히 참여한 사람들은 공원 조성 이후 자신들이 가이드 역할을 하더라. “여기가 원래 기찻길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재현해놓은 거야” 등등 설명을 하신다(웃음). 공원에 대한 애정 어린 모습이 보기 좋다.

 

공원 개방 후 상업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갑작스레 변하는 동네를 못 이긴 주민들은 마음의 담을 쌓기도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너무 급속한 진행이 우려는 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이니 함부로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나마 당분간 임대료를 동결하겠다는 의식 있는 건물주가 몇몇 있다. 공원 덕에 집값이 올랐다며 공원 관리를 돕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연남동을 휩쓸던 열기도 최근에는 약간 진정세를 보이는 양상이라 아주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참고 자료

이창훈(2001), 경의선 철도의 정치 외교사적 의미,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안계동 외(2015), 경의선숲길을 그리다, 월간 환경과 조경 329호

글 : 이혜림/정다솜 에디터, 편집 : 이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