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 패션왕이 된 신발 덕후

창업 아이템을 고민할 때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트렌드에 맞는 산업을 한다며 어디선가 주워들은 모빌리티나 메타버스에 관한 칼럼을 읽고, 경쟁사가 따라할 수 없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에 관한 논문을 읽는다. 물론 트렌디한 산업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테크 기업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라면 단순한 아이디어로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당분간은 인간 생활의 3대 기본 요소인 의식주에서 사업 기회를 발견한 유니콘을 소개할 계획이다. 오늘 주제는 신발과 사랑에 빠진 청년이 만들어낸 스타트업, '무신사' 이야기다.

 

| [History] 무진장 신발 사진 많은 곳.

 

출처: 무신사

 

한 분야에 미친 듯이 빠진 사람을 '덕후'라고 부른다. 한때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한정되어 비웃거나 비꼬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됐지만, 요새는 전문가 이상으로 지식과 열정을 가진 준전문가를 칭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세상에 옷 잘 입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고, 패션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기 때문에 각자 본인한테 맞는 스타일로 '패션 덕후'가 될 수 있다. 특히 신발은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이 화룡점정으로 활용하는 아이템이다. 소수의 '패피(패션 피플)'들이 서로의 스타일을 뽐내면서 '무진장 신발 사진을 많이 올리는'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그 커뮤니티가 이제는 패션의 대세를 이끄는 '무신사'라는 유니콘이 되었다.

무신사를 창업한 조만호 대표(현 무신사 의장)는 학생 시절부터 옷을 좋아했다. 특히 교복밖에 입지 못하는 고등학생이 멋을 부릴 수 있는 아이템은 신발 뿐이었고,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하나 둘 쌓이다 보니 '무'지하게 '신'발 '사'진이 많아졌고, 2003년 '무신사닷컴'을 설립했다. 사람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어 2009년 '무신사스토어'라는 여러 신생 브랜드의 옷을 판매하는 온라인 의류 편집샵이 탄생했다. 무신사스토어는 2011년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유치하고, 2013년 100억 원의 거래액, 2015년 1000억 원의 거래액을 달성했다. 이렇게 점점 무신사는 패션의 성지가 되었다.

2017년 소위 '무탠다드'라고 불리는 '무신사 스탠다드'라는 자체 브랜드를 런칭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가성비 좋은 패션 기초 아이템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무신사는 오프라인 세상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 오픈한 공유오피스 '무신사 스튜디오'와 2019년에 오픈한 복합문화공간 '무신사 테라스'에서는 무신사만의 심플한 컨셉을 체험할 수 있다. 차근차근 성장한 무신사는 2021년 증시 열풍에 상장 루머가 제기됐으나, 별안간 '짝퉁 논란'에 휘말리며 조만호 대표까지 사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무신사가 내실을 다지고 재정비를 마친면 증시 분위기가 좋아지는 시점에 IPO에 재도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Business] 경기장을 만들어주고, 선수로 참여하다.

 

출처: 무신사

 

무신사는 전형적인 마켓플레이스 플랫폼이자 의류 전문 버티컬 플랫폼이다. 즉, 의류 브랜드가 무신사에 입점해서 물건을 팔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구조이다. 2021년 무신사 스토어의 수수료율은 14.5%로 2018년 17%에서 점차 인하되는 추세다. 여전히 네이버, 쿠팡, G마켓 등 오픈마켓보다 4%p 정도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무신사 측은 비즈니스 모델과 실질 수수료율을 근거로 반박한다. 예를 들어 오픈마켓의 주요 수입원은 수수료가 아닌 광고료이므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오픈마켓에서 단순 나열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보다 버티컬 플랫폼의 큐레이션 서비스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것이 업체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이 무신사 측의 설명이다.

모든 플랫폼 비즈니스의 숙명이지만 플랫폼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무신사보다 옷을 저렴하게 팔거나, 무신사에 없는 브랜드가 있으면 고객들이 이탈할 것이고 입점한 브랜드들도 고객을 따라 무신사 플랫폼을 이탈할 것이다. 따라서 무신사는 플랫폼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무료배송, 쿠폰 등 실질적인 금전적 혜택을 강화하는 한편 멤버십 등급제를 운영하여 지속적인 구매를 유도한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 매거진, 디자이너 독점 계약, 패션 커뮤니티, 제품 랭킹 등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플랫폼에 오래 체류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심어두고 있다.

무신사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무신사 스탠다드'다. 직매입 형태로 상품을 파는 것은 마진이 작지만, PB제품을 자체 플랫폼에서 판매하면 원가우위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무신사 전체 매출에서 무신사 스탠다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2021년 기준으로는 무려 19%를 차지했다. 워낙 수익성이 높다 보니 파격적인 PB제품 프로모션을 통해 고객을 플랫폼에 가둘 수도 있다. 여름철 '쿨탠다드', 겨울철 '핫탠다드'라는 기능성 의류를 100원에 끼워파는 이벤트는 그야말로 미끼를 던져 고기를 잡는 전략이다. 즉, 무신사는 경기장을 만들어주고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선수로 참여했다. 모든 룰은 무신사가 정한다.

 

| [Performance] 뿌리가 튼튼하면 열매도 달다.

 

출처: 무신사

 

패션 플랫폼 중 최초로 총거래액(GMV) 1조 원 시대를 연 무신사는 2019년 세계 최대 벤처캐피탈 세콰이어캐피탈로부터 19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개성 넘치는 배우 유아인을 브랜드 뮤즈로 발탁한 무신사는 '다 무신사랑 해'라는 카피로 전국민에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2021년 2년 만에 총거래액 2조 원을 돌파한 무신사는 IMM인베스트먼트와 세콰이어캐피탈로부터 1300억 원의 후속 투자를 유치하고 카테고리 확장, 물류시스템 구축, 해외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투자 유치 당시 2조5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무신사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2년 3조8000억 원까지 몸값이 치솟은 상태다.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는 엄청난 적자를 감내하며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했지만 무신사는 다르다. 2012년 법인 설립 이후 흑자를 거듭했고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우상향했다. 특히 2018년 매출액 1081억 원, 영업이익 269억 원에서 2019년 매출액 2197억 원, 영업이익 493억 원으로 1년 동안 100% 성장하는 괴력을 보여줬다. 이후 공격적인 마케팅비 지출로 영업이익 개선 속도는 다소 감소했지만 매출액은 2020년 3319억 원, 21년 4667억 원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적자 폭탄이 매출 성장과 고객 경험으로 정당화되는 스타트업 세계에서 무신사는 거대한 외형 뿐만 아니라 튼튼한 내실 또한 갖춘 몇 안 되는 희귀한 케이스이다.

 

| [Competition] 놓을 건 과감하게, 잡을 건 확실하게.

 

출처: 무신사

 

무신사는 남성 스트리트 패션 중심 플랫폼이었는데 여성 회원이 늘자 2016년 '우신사'라는 여성 패션 전용 플랫폼을 출시했다. 비록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무신사가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 확장을 알린 시발점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패션에 관심이 많고 지출도 크기 때문에 탐나는 시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에이블리, 지그재그, 브랜디 세 업체가 삼분하고 있는 여성 패션 시장에 무신사가 비집고 들어감 틈은 매우 좁다. 무신사는 뒤늦게 스타일쉐어와 29CM를 인수하며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공략은 쉽지 않았다. 패션은 어떤 업계보다도 미세하게 세분화되어있으므로 공략하기 어려운 시장은 과감하게 놓는 결단도 필요하다.

한편 무신사가 확실하게 잡으려는 고객은 MZ세대다. 개성을 추구하는 MZ세대는 남들이 갖지 못하는 것,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을 원한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부터 스니커즈 리셀과 명품 오픈런이 화제가 되고 있다. 2020년 무신사는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한정판 의류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을 런칭했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크림'과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출혈 경쟁을 펼치던 중 솔드아웃이 검수 지연과 가품 논란에 풍파를 맞으며 크림의 독주 체제로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이 외에도 무신사는 한정판 스니커즈 외에도 럭셔리굿즈, 골프웨어 등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하며 기존 시장 한계를 신규 시장 개척으로 극복하고 있다.

 

출처: 무신사

 

패션 덕후와 경영학 교수 중 누가 패션 사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까? 만약 둘 중 한 명이 CEO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패션 덕후를 선택할 것이다. 대표가 아이템을 사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도 있는 사업과 대표가 아이템을 사랑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패션이다. 패션 감각은 가르칠 수 없는 타고난 능력이며 패션(fashion)에 대한 열정(passion) 없이는 사업을 지속할 수도 없다. 옷을 사랑하지 않는 대표의 옷가게에서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신사가 패션업계 공룡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출발점에는 신발을 사랑했던 청년 조만호와 무진장 신발 사진을 많이 올렸던 커뮤니티 회원들이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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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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