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 : 워킹맘의 마음을 다 아니까

모두가 빈곤한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서는 '식사하셨나요?'가 곧 인삿말이었지만, 지금은 여러가지 메뉴 중에서 골라먹는 풍요로운 시대가 됐다. 마찬가지로 주부의 임무도 식구들이 굶지 않도록 식량을 확보하는 것에서 어떻게 하면 식구들에게 더 좋은 음식을 먹일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으로 변했다. 즉, 의식주라는 인간의 3대 필수 요소 중 음식은 필요(need)의 영역에서 욕구(want)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기업가는 이렇게 수요가 탄탄하면서도 차별화 요소가 존재하는 시장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의 마음으로 시작해 올해 가장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 '컬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 [History] 새벽배송의 시대를 열다.

 

출처: 컬리

 

많은 여성이 주부였던 시절, 어머니들의 주간업무에는 장보기가 있었다. 아침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에 보내고 점심에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저녁에는 식구들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밥상을 차렸다. 외벌이로 생활을 유지하는 게 힘들어지자 맞벌이 부부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어머니들의 주부 업무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사실상 투잡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로 인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증가했지만, 누군가는 어머니의 역할을 계속 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에 싱싱한 식재료를 받아 정성이 담긴 집밥을 차리자는 마인드가 '컬리'라는 유니콘의 시작이었다.

전형적인 워킹맘인 김슬아 대표는 골드만삭스, 맥킨지앤컴퍼니, 테마섹홀딩스, 베인앤컴퍼니 등 글로벌 투자은행과 컨설팅펌에서 일했다. 김슬아 대표는 맞벌이 생활 중 직접 장을 보지 않고도 좋은 음식을 편하게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2014년 '더파머스'라는 회사를 설립해 2015년 '마켓컬리'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초창기에는 신선식품을 다음날 새벽까지 배송한다는 '샛별배송'이 낯설었지만, 강남 워킹맘 사이에서 맛있고 건강한 식재료를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그리고 2019년 컬리가 추구하는 고객 페르소나와 찰떡궁합이라는 배우 전지현을 광고모델로 발탁하며 사업은 대박이 터졌다.

2021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이 주인공이었다면 2022년 스타트업, 벤처캐피탈, 증권사, 투자자가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는 유니콘이 바로 컬리다. 작년과 달리 증시 분위기가 완전히 식으면서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등 IPO 대어들이 줄줄이 상장을 철회하자 시장은 컬리에게 마지막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 컬리는 얼어붙은 시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연내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JP모건을 상장주관사로 선정한 컬리는 올해 3월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거품 논란은 꺼지지 않았고, 한국거래소도 수익성과 안정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 보완을 요구하면서 컬리의 상장은 지연되고 있다.

 

| [Business]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음식을 먹이자.

 

출처: 컬리

 

컬리의 비즈니스모델은 매우 심플하다. 무신사와 마찬가지로 컬리는 식품 전문 버티컬 플랫폼인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무신사는 오픈마켓 형태로 판매자와 구매자를 이어주고 거래가 발생할 때 수수료를 취하는 반면, 컬리는 식품을 업체로부터 직구매해서 고객에게 재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진을 취한다. 식품 특성상 맛 이전에 안전과 위생이 가장 중요하므로 김슬아 대표가 직접 상품위원회를 매주 주관하며 상품의 퀄리티를 평가하고 보증한다. 컬리는 제품을 싸게 팔지 않는다. 컬리는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 컬리가 타겟으로 하는 고객은 좋은 제품에 프리미엄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것만으로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컬리가 가진 경쟁력의 핵심은 유통, 즉 상품을 수급하고 재고를 관리하고 물류를 처리하는 것이다. 김슬아 대표는 창업하기 전부터 원하는 상품의 공급처를 농업진흥청 사이트에서 확인하여 직접 구해오는 적극성을 발휘했다. 또한 하루만 지나도 신선도가 떨어지는 식품의 특성을 고려하여 주문 예측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공급처에 실시간으로 주문을 넣어 재고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게다가 식품을 신선한 상태로 배송하기 위해 콜드체인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품목마다 적합한 온도에서 보관하기 위해 서로 다른 박스에 나눠 포장하는 방침을 마련했다.

컬리는 상장을 앞두고 사업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첫번째는 품목 확장이다. 식품은 수요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컬리는 생활용품, 뷰티제품, 유아용품, 가전제품, 반려동물제품 등으로 카테고리를 넓히고 있다.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컬리가 타겟으로 하는 워킹맘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면 일부는 납득이 간다. 두번째는 지역 확장이다. 컬리는 현재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대전, 대구, 부산 등으로 서비스 권역을 넓히고 있다. 전국 확장이라는 김슬아 대표의 비전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강남 워킹맘을 떠올리며 시작한 샛별배송이 전국 어머니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 [Performance] 대표님, 정말로 방법이 있습니까?

 

출처: 컬리

 

컬리가 새벽배송으로 이커머스 혁명을 일으킨 기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만큼 컬리는 빠른 기간 동안 어마무시하게 덩치가 커졌는데 숫자로 보면 확실히 와닿을 것이다. 2018년 '컬리'로 사명을 변경할 당시 회원 수는 100만여 명, 매출액은 약 1500억 원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회원 수 1000만여 명, 매출액 약 1조5000억 원으로 10배 가까운 성장을 거두었다. 하지만 컬리에 대한 회의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누적되는 적자 때문이다. 흑자 전환은 커녕 적자 지속만 계속되며 누적 영업손실이 약 50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금리가 올라가는 국면에서는 고성장하는 스타트업이 주장하는 '계획된 적자'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컬리는 팬데믹으로 인한 뜻밖의 언택트 수혜와 저금리 환경에서 막대한 유동성 덕분에 꾸준히 투자를 받았다.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4700억 원의 Pre-IPO 투자를 유치하며 4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컬리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다. 먼저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이 5.75%로 너무 낮은데 이는 상장 이후 경영권 리스크, 기존 투자자의 엑시트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엔데믹에 따른 언택트 수혜 종료와 고금리 환경에서 자금조달 부담은 컬리의 앞날을 어둡게 보게 만드는 주요 요소다. 김슬아 대표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녀가 투자은행와 컨설팅펌에서 근무했던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시장 환경이라는 것이다.

 

| [Competition] 새벽배송은 이제 디폴트다!

 

출처: 컬리

 

해결해야 할 과제는 첩첩산중인데 경쟁자 리스크마저 커지고 있다. 컬리의 직접적인 경쟁사는 SSG닷컴, 오아시스마켓이다. 신선식품의 퀄리티만 따지면 컬리가 우위에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놓고 보면 컬리가 가장 뒤쳐져 있다. SSG닷컴의 뒤에는 신세계그룹이라는 거대한 유통 공룡이 버티고 있고, 오아시스마켓을 운영하는 지어소프트는 독자적인 유통망을 통해 흑자를 내고 있다. 게다가 이제 새벽배송은 더 이상 혁명이 아니다. 쿠팡의 로켓배송과 컬리의 샛별배송은 이커머스에 속도전을 붙였지만 제때 가속을 멈추지 못한 나머지 이제는 한 시간 안에 배송이라는 게임의 룰이 작동하는 '퀵커머스'의 시대로 넘어가버렸다.

새벽배송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잠재적인 경쟁사도 등장했다. 첫번째는 GS리테일이다. 전국의 편의점과 슈퍼마켓 인프라를 갖고 있는 GS리테일은 요기요, 쿠캣을 인수합병하고 메쉬코리아, 팀프레시에 지분투자를 하면서 컬리의 사업 영역과 점점 맞닿고 있다. 두번째는 CJ대한통운이다. CJ대한통운은 전국 택배 사업 1인자로 지금은 컬리의 상품을 배송하는 협력사이지만 CJ대한통운이 NAVER와 손을 잡고 있고, NAVER는 이마트와 손을 잡고 있음에 눈길이 간다. 억지스러운 상상일 수는 있지만 삼성의 피를 공유하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해진 NAVER GIO가 컬리의 막강한 적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

 

출처: 컬리

 

새벽배송이라는 트렌드를 창시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시킨 컬리의 인프라 시스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가 하면 새벽배송 비즈니스의 진입장벽이 낮아 컬리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컬리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일종의 반항심에 기인한다. 김슬아 대표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규모가 너무 작으면 너무 작아서 안 된다면서 규모가 너무 커지면 더 이상은 크기 힘들다고 하고, 식품만 팔면 확장성이 없다면서 비식품까지 팔면 본질을 잃었다고 한다. 안 되는 이유만 찾는 비관적인 사람들에게 컬리가 기업가정신으로는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기를 내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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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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