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 뚝딱 비운다! 기분 좋게 매운맛 살린 덮밥

[푸드]by 중앙일보

당뇨 판정을 받은 후 이를 극복하고자, 자신을 위한 밥상 차리기에 나선 푸드 콘텐트 디렉터 김혜준씨. 식재료 고르기부터 조리법, 식사법까지 자신의 경험을 아낌없이 공개한 〈건강식도 맛있어야 즐겁다〉. 그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합니다. 첫 회는 가지두부덮밥입니다.


① 가지두부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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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반장으로 매운맛을 살린 가지두부덮밥. 사진 김혜준


지난했던 당뇨 식단에 변화가 찾아왔다. 당뇨 수치가 정상화되면서 3개월간 해온 인슐린 투약을 끊었고, 식단에도 조금은 여유를 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본적인 저염, 저당 그리고 저탄의 룰을 깰 수는 없지만, 심적인 안도감이 찾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아예 먹지 않았던 김치찌개나 솥밥을 먹기도 하고 약간의 과일 디저트를 먹기도 한다. 면 요리도 아주 가끔 도전한다. 하지만 소량이라도, 현미를 이용한 면이라도, 확실히 면 요리를 먹으면 혈당 스파이크가 일어나는 폭이 크기 때문에 웬만하면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다 정말 먹고 싶을 땐 3/4 그릇을 먹고 바로 걷기 운동을 하러 뛰쳐나갔다.


이렇게 식단을 꾸리는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깨닫게 됐다. 바로 식재료의 색감에 무척 신경 쓴다는 것이다. 오방색까지는 아니더라도 초록, 빨강, 흰색, 보라 등의 색조합을 최대한 다양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주 해 먹는 요리가 식물성 오일을 이용해 채소와 해산물을 볶아 먹는 메뉴다. 이때 간은 미량의 소금이나 후추, 간장을 더한다.


종종 다른 레시피를 고민하는데, 이때 활용하는 게 중식의 대표적인 소스인 콩을 이용한 두반장과 노추 간장이다. 두반장은 콩과 누에콩을 섞어 발효한 것에 소금과 고추, 향신료 등을 섞어 만든 장이다. 보통 마파두부에 많이 사용하는데, 매콤한 맛과 향을 입히기에 이만한 게 없다. 노추 간장은 중국 간장의 한 종류로 우리나라 간장 제조법과는 약간 다르게 콩에 밀을 더해 만든다. 그래서 밀전분의 달큰한 맛이 도드라진다. 오래 묵혀 만들었다는 의미로 노추 간장이라고도 부른다. 진득한 점도와 진한 색이 특징이라, 동파육과 같은 찜 요리에 진한 색을 입힐 때 유용하다. 비교적 짠맛이 덜해서 가끔 볶음 요리에 애용하곤 한다.


사실 이 두 가지 소스와 장을 이용하기로 한 것은 재료와의 자연스러운 매칭 때문이다. 올 하반기부터 소량이지만 홍성의 농장에서 채소박스를 신청해 일상에서 사용하기 좋은 채소들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 첫 스타트로 다양한 컬러와 크기의 물가지와 호박류들을 받게 되었다. 집에서 가지를 먹는 여느 방법으로는 길게 4조각으로 찢어 살짝 찐 후에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 마늘에 무치는 조리법을 사용하곤 했다. 이번에는 제주의 마른두부(*물기가 적은 단단한 두부로 만약 마른두부가 없다면 일반 두부를 구워서 사용해도 괜찮다)의 탄탄함을 잘 이용하여 마파두부 소스의 맛을 튀기지 않고 구운 가지와 함께 볶아내 밥 위에 얹어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 여기에 다진 돼지고기 대신 추석 연휴 선물세트에 들어있는 소시지로 대체했다. 이탈리안 소시지 특유의 매콤한 맛이 있는 데다, 자연스레 염도까지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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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두부덮밥의 재료는 먹기 좋게 썰어 준비한다. 사진 김혜준

먼저 대파의 흰 부분을 총총 썰어 포도씨 오일을 넉넉히 부어 파 기름을 냈다. 두반장과 소시지의 매운맛이 있어 따로 고추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파프리카의 빨간색과 노란색, 내가 중식의 킥이라 생각하는 셀러리의 초록색, 가지의 하얀색과 보라색, 두부의 약간 노르스름한 색 등이 팬에서 자연스레 섞이는 순간에 약간의 희열감을 느꼈다.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일까. 여기에 색을 낼 정도의 두반장 약간과 노추 간장 조금 흘려 놓고 센 불에 후루룩 볶아내고 나면 흰 쌀밥 위에 올려지는 모양새가 마치 흰 스케치북에 진한 색의 물감을 붓에 묻혀 과감하게 올리는 것 같았다.


마무리로 늘 참기름 약간 또는 참깨를 올린다. 아, 새파란 고수잎 한 다발을 올려도 좋았을 텐데. 다음번에는 향채를 올려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보다 짜지 않고 향으로 매운 뉘앙스를 입은 이 가지두부덮밥은 식재료 칼질만 미리 해두면 팬 하나로 휘뚜루마뚜루 재미나게 볶아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하고도 유용한 메뉴이다. 우리나라의 간장, 된장, 고추장 외에도 중식의 장이나 태국의 피쉬소스들이 내는 맛을 조금씩 즐기기 시작하면 맛의 카테고리가 훨씬 넓어진다.


Today`s Recie 김혜준의 가지두부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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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두부덮밥 재료, 홍성의 '채소생활'에서 받은 채소박스의 채소와 소시지를 활용했다. 사진 김혜준

재료(2인분) : 가지 1개, 파프리카 1/2개(색깔별로 섞어 사용 가능), 마른 두부 1/4모, 대파 하얀 부분 1대, 셀러리 1대, 이탈리안 소시지(매콤한) 1개, 두반장 1/2작은술, 노추간장 1/2작은술, 포도씨유 약간, 후추, 참기름 또는 참깨 약간


만드는 법


① 대파와 파프리카는 곱게 총총 썰어둔다.


② 가지는 길게 반을 갈라 한입 크기로 지그재그 썬다. 셀러리는 사선으로 어슷하게 썬다.


③ 마른 두부와 이탈리안 소시지는 가열 후 줄어들 가지 크기 정도로 자른다.


④ 팬에 포도씨유를 넉넉히 두르고 썰어놓은 대파 흰 부분을 넣고 향을 낸다.


⑤ 여기에 두부를 튀기듯 굽고 한켠으로 몰아둔 뒤, 파프리카와 셀러리를 볶는다.


⑥ 소시지와 가지를 넣고 두반장과 노추 간장을 더해 다 함께 센 불에 볶는다.


⑦ 윤기가 흐르게 졸아들면 불을 끄고 미리 담아 둔 밥 위에 올려 완성한다.


⑧ 위에 참기름 또는 참깨를 더한다.


김혜준 cooking@joongang.co.kr

2023.10.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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