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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화양연화의 도시,
홍콩의 국수 맛집

by클룩 KLOOK

화양연화의 도시, 홍콩의 국수 맛집

잔치에 국수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국수 가락처럼 오랫동안 함께 행복하길 바란다.’는 염원 때문이다. 특히 결혼이나 생일엔 면발(소면)의 얇고 길쭉한 모양처럼 장수하길 바란다는 뜻이 더 강조된다. 국수가 영원을 상징한다니! 난 이 사실에 꽤 의구심을 품었었다. 잘 끊어지지 않는 쫄면이라면 모를까, 조금만 힘을 줘도 끊어져 버리는 소면이 영원함을 뜻 할 줄이야. 가늘고 길게 사는 것보다 짧고 굵게 사는 삶을 선호하는 나로선, 이제부터 수제비를 먹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국수=영원’이라는 공식을 감정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된 건 한 편의 영화 덕분이다.

 

바로 화양연화(감독 왕가위, 2000)다.

 

홍콩의 밤거리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화면의 색감, 투박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구성, 양조위와 장만옥의 애틋한 눈빛, 스치듯 흔들리기는 두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 시켜주는 절제된 대사... 이 모든 게 잘 어우러진 화양연화는 왕가위 감독의 전작인 아비정전(1990), 중경삼림(1994)에 이어 스타일리시한 홍콩영화의 계보를 충실히 잇는다. 1962년 홍콩. 상하이에서 온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두 가구가 새로 이사 오는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홍콩 지역신문사 기자로 일하는 차우(양조위) 부부와 무역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수리첸(장만옥) 부부가 주인공인데, 감독은 수리첸의 남편이나 차우의 부인의 등장 없이 오직 차우와 수리첸만을 조명한다. 쓸쓸함으로 시작해서 쓸쓸함으로 끝나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이사 첫날부터 사소하게 부딪히던 차우와 수리첸은 각자 배우자들의 외도가 본격화됨에 따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다. “당신이 올지 몰랐다”고 하는 차우와 “우린 그들과 달라요”라며 도덕적인 선택을 하는 수리첸은 사랑과 도덕관념 사이에서 늘 갈등하기 때문이다. 결국 끝까지 맞바람(?)을 피우지 못하고 헤어지는 두 사람에게서 역설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게 이 영화의 묘미다. 이 심상은 영화의 제목과 맞닿아있다. 영화의 주제이자 제목인 ‘화양연화’(花樣年華)란 단어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뜻하는 말인데, 사랑을 이룰 수 없던 두 사람에겐 어쩌면 가장 슬픈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이 영화에서 ‘국수=영원’이란 공식을 이해하게 됐냐고? 바로 수리첸(장만옥) 때문이다. 치파오를 입은 아름다운 그녀가 보온통을 들고 국수를 사러 가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왜 하필 국수지? 영원을 의미하는 풍습 때문에?’

‘가장 행복했던 결혼식 날. 그 행복을 떠올리기 위해 그 때 먹었던 국수를 그렇게나 사러 가는 걸까?’

‘식어버린 사랑, 식어버린 국수가 싫어 늘 보온통을 들고 다니는 건가.’

뭐 이렇게 영화의 메타포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보니 자연스레 그 장면이 각인된 것 같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치파오가 잘 어울리는 배우인 장만옥의 역할이 컸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수리첸의 국수를 보며 떠올린 질문은 메타포에 관한 것만 있던 게 아니였다. 보다 본능적인 질문들이 있었다. 저 국수는 대체 어디서 사오는 걸까. 체인점인가 아닌가. 쌀국수인가 곱창국수인가 탄탄면인가. 뭐 이런… 국수 본연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홍콩이란 도시에 한 종류의 국수만 있다면 아주 쉽게 해결될 문제였겠지만, 홍콩엔 너무나 다양한 국수 맛집들이 있다. 왕가위 감독이 아닌 이상 그녀의 국수에 담긴 메타포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일거고… 대신 다양한 면 요리의 천국인 홍콩에 가서 꼭 먹어봐야할 국수 맛집들은 몇 개 열거할 수 있을 것 같다.

소고기국수 하면 바로 이 곳. 양조위도 즐겨찾는 카우키

화양연화의 도시, 홍콩의 국수 맛집

화양연화로 시작된 국숫집 탐방이니, 당연히 카우키가 1번이다. 양조위가 실제로 즐겨 찾는 맛집으로 소문난 쌀국수집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을 비롯해 관광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국수집이므로 오픈 전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물론 합석은 기본이다. 셩완역 A2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데, 영업시간은 낮 12시 30분에 문을 열어 밤 10시 30분까지다. 메뉴판엔 육수와 토핑에 따라 많은 종류의 국수가 있는데, 가장 인기가 좋은 건 4번(소고기국수)과 14번(카레국수)다. 맛집 포스팅에 휘둘리는 선택이 아닐까 걱정할 필욘 없다. 적어도 이곳의 맛은 진짜니까. 카드가 불가하고 현금만 가능하단 단점이 있지만 국숫값이 별로 비싸지 않으니 안심이다.

매콤한 탄탄면은 깔끔하고 시원한 장소에서. 하소비(霞小飛, 샤샤오페이)

화양연화의 도시, 홍콩의 국수 맛집

탄탄면 사진. 출처 : flickr

탄탄면이란 예전에는 천칭처럼 생긴 막대를 지고 다니면서 팔았다고 하는, 매콤한 쓰촨성 국수를 말한다. 작은 대접에 담긴 국수에 파, 순무 절임, 숙주를 곁들여서 먹는데 소스 맛이 특이하다. 고기육수 베이스에 매콤한 고추기름과 땅콩 맛이 섞여 있달까. 그래서 기본 맛이 꽤 매운 국수다.

 

더운 노천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것도 일종의 묘미겠지만, 에어컨이 빵빵한 빌딩에서도 꽤 맛있는 탄탄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침사추이 K11 지하에 있는 샤샤오페이다. K11은 시호텔 바로 옆에 있는 복합쇼핑몰인데, 여기 지하에 바로 샤샤오페이가 있다.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인테리어가 탄탄면이랑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맛은 괜찮다. 다만 호불호가 꽤 갈리는 편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 만약 침사추이가 아닌 코즈웨이베이 근처에서 깔끔한 탄탄면을 찾는다면, 사천요리 전문점인 레드페퍼 레스토랑도 괜찮은 선택이 될 거다.

홍콩에서 제일 유명한 체인점, 남기국수(南記粉麵)

화양연화의 도시, 홍콩의 국수 맛집

1970년대부터 손수레에서 시작된 전통 있는 국수 체인점이 바로 남기국수다. 원하는 토핑과 국물을 부어서 팔다가 큰 인기를 얻은 만큼 현재도 아주 다양하게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주문하는 방식이 복잡하진 않다. 담백한 국물인 차오저우식 쌀국수와 매콤한 국물인 윈난식 쌀국수 중 하나를 고르고 거기에 소고기나 피시볼, 만두, 채소 등 원하는 토핑을 얹어서 추가해 먹으면 된다.

 

홍콩 현지인들에게도 맛집으로 알려진 남기국수는 현재 홍콩섬을 중심으로 센트럴, 코즈웨이베이 총 16개의 매장이 있는데 주룽반도인 몽콕, 홍함 등에도 있다. 지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한데, 남기국수의 오리지널 맛을 느끼고 싶다면 MTR 코즈웨이베이역 F1 출구에서 Yee Wo Street를 따라 걸으면 나오는 코즈웨이베이 점을 방문하길 추천한다. 만약 강한 향신료 맛에 익숙치 않다면,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맛의 센트럴점(G/F, 66-72 Stanley Street, Central 中環士丹利街66-72號地下)이 더 나을 것 같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영업하니 해장으로 먹기에도 딱 좋다.

진짜 로컬 맛집, 운남 쌀국수가 맛있는 운계향(雲桂香)

화양연화의 도시, 홍콩의 국수 맛집

운남 쌀국수 사진. 출처 : flickr

윈난 쌀국수의 진가를 맛보고 싶다면 운계향을 추천한다. 윈난, 계림 등의 홍콩 음식을 다양하게 파는 곳인데, 관광객들보단 현지인들에게 더 사랑받는 숨어 있는 맛집 중 하나다. 몽콕과 코즈웨이베이 등에 체인점이 있는데, 몽콕 점이 더 맛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타 체인점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토핑과 매운맛 조절이 가능하니 입맛에 맞게 선택해 먹자. 중국식 오이무침이나 춘권과 같은 곁요리도 맛이 좋다.

 

재밌는 발견은, 국숫집을 방문하다 보면 관광객과 현지인의 차이가 확연히 난다는 사실이다. 토핑 및 추가 메뉴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대체로 국수 하나만 시키지만, 현지인들은 우리나라의 밑반찬 같은 메뉴를 참 다양하게 시켜 먹고 있는 걸 종종 구경할 수 있다. 그러니 영어메뉴판이 있는 곳이라면 요청을 꼭 해보고, 아니라면 용기를 내 이것저것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깨 뿌린 치킨윙과 탱탱한 면발의 윈난 국수, 탐자이윈난누들(譚仔雲南米線)

화양연화의 도시, 홍콩의 국수 맛집

완차이역 A3 출구로 나가 타이윤 재래시장까지 이어진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치킨윙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장소를 찾을 수 있다. 탱탱한 면발까지 기가 막힌 운남쌀국수 전문점, ‘탐자이윈난누들’이다.

 

토핑의 종류와 맵기 선택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토핑은 하나만 추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개를 한 번에 추가할 수도 있다. 버섯, 미트볼, 피시볼, 오징어 볼, 두부면 등 다양한 토핑이 있다. 맵기는 5단계까지 있는데(조절할 시 $1의 추가 요금이 붙는다) 보통은 3~4 정도를 선택하는 편. 만약 종업원이 “라 음 라?” 하고 물어보면 그게 바로 맵기를 물어보는 질문이다. 맵지 않은 걸 선택하려면 “음 라” 라고 말하면 되고, 맵기를 조절하려면 숫자를 가리키면 될 듯하다.

 

만약 트램을 타고 방문할 계획이라면 O'Brien Road에서 하차하면 된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인데, 타이윤 재래시장은 8시쯤 문을 닫으므로 그 전에 방문해서 밥을 먹은 뒤 시장을 구경하는 걸 추천한다. 이곳의 치킨윙은 맛이 기가 막히니 반드시 추가해서 주문하는 게 좋다.

 

화양연화의 주인공이 주고받는 감정은 그 어떤 영화보다 깊고 농염하긴 하다. 하지만 영화엔 두 사람의 기대할만한 러브신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밤새 한 방에서 함께 머무르게 된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의 조마조마한 감정은 간단히 무시한 채 그저 차우가 쓰고 있는 소설 얘기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국수를 나눠 먹는다. 쓸쓸한 얼굴의 수리첸이 늘 사오기만 하고 먹진 않던 국수. 비로소 그 국수를. 두 사람이 먹던 국수는 어떤 맛이었을까?

필자 김정훈

연애만 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여행 칼럼니스트,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