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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처돌인터뷰

‘VIP’ 이정림 PD가 답했다 “불륜 미화 드라마 아닙니다”

by쿠키뉴스

‘VIP’ PD가 답했다 “불륜 미화 드라마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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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상위 1% 고객을 관리하는 전담팀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오피스 멜로를 표방하며 어른들의 성장기를 보여주겠다던 드라마는 시작부터 불륜 상대 찾기라는 강수를 뒀다. 시청자와 함께 불륜 상대를 추리하는 자극적인 드라마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처한 상황을 섬세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다뤘다. 하지만 불륜 상대가 밝혀진 후 둘만의 세상을 너무 애틋하게 그린 것이 아니냐는 시청자의 원성도 있었다. 지난 24일 최종회가 방송된 이후로 결말을 두고 '현실적이다'라는 평과 '답답하다'는 평이 엇갈렸다. SBS 월화극 'VIP'의 이야기다.


지난 23일 서울 목동서로 SBS 사옥에서 만난 'VIP'의 연출자 이정림 PD는 '불륜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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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6%대(닐슨코리아 제공)로 시작한 드라마의 시청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이 정도의 인기를 예상했나?


이정림 PD :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과 시청률 두 자릿수만 넘으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눴는데, 서서히 시청률이 상승해 모두 기뻐했죠.


Q2. 불륜, 사내 정치 등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를 첫 메인 연출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정림 PD : 'VIP' 대본을 처음 접하고 4부까지 읽었는데, 금세 나정선(장나라)에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인 점에 끌렸어요. '내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상상하면서 단숨에 대본을 읽었죠.(웃음) 흔히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하면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 반듯하고 완벽한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에 몰입했던 것 같아요. 그 외 다른 여성 캐릭터에도 공감할 수 있었고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내가 이해하며 연출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Q3. 극 초반에 문자 발신자와 불륜 상대를 찾는 부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이 부분이 지루하다는 평과 흥미롭다는 평으로 나뉘기도 했다. 시청자가 함께 추리하게끔 의도한 연출인지 궁금하다.


이정림 PD : 맞아요. 그런데 시청자가 그렇게 답답해하실 줄 몰랐어요.(웃음) 촬영하면서는 누군가를 의심하게끔 했다가 다시 풀어나가는 작업이 즐거웠거든요. 배우들이 확실한 선도 악도 아닌 것을 표현하는 것을 보는 묘미도 있었고요. 차해원 작가님이 후반부 대본을 쓰실 때,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야기를 천천히 쌓아가자는 말을 자주 나눴어요. 온유리(표예진)가 박성준(이상윤)의 불륜 상대임을 알리는 것을 조금 앞당길 수도 있었는데 급하게 가지 않았죠. 그래야 시청자가 나정선의 감정에 빠져서 드라마를 볼 수 있고, 사실이 밝혀졌을 때 정선과 같은 배신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Q4.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연출했나?


이정림 PD : 일단 대본에 충실한 것이 연출의 첫 번째 목표였어요. 대본이 정말 좋았거든요. 또 다른 목표는 시청자가 정선에게 몰입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시청자가 정선과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며 드라마를 보게끔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면에선 장나라 씨와 많은 대화를 나눴죠. 초반에는 시청자와 함께 추리하는 것을 노려서 대본보다 조금 더 의심스럽게 촬영하기도 했어요. 송미나(곽선영)를 의심해야 하는 부분에선 미나에게 분량을 몰아주고, 배우에게도 그렇게 디렉팅을 하는 식이었죠. 이현아(이청아)도 마찬가지고요. 처음엔 누가 불륜 상대인지 의심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뒀죠.


Q5. 시청자의 추리나 반응을 살펴보기도 했나?


이정림 PD : 정말 많은 추측이 있어서 놀랐어요. 마상우(신재하)를 용의 선상에 두는 분들이 많아서 신기하기도 했고요.(웃음) 불륜 상대가 밝혀졌을 때 그것을 믿지 않은 시청자가 많은 것도 흥미로웠어요. 8부 엔딩에서 불륜 상대가 온유리임을 보여줬는데, 앞에서 혼란스럽게 한 것이 있어서 그런지 잘 믿지 않으시더라고요. '이 모든 것이 나정선의 상상이다'라는 추리도 봤고요.


Q6.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현아, 미나 등 여성 인물이 회사 내에서 처한 상황이나 어려움 등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각각의 인물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궁금하다.


이정림 PD : 15,16부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려 했어요. 진호와 동거를 시작하는 현아를 통해서는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 아니어도 된다는, 비혼에 관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연애 후에도 결혼뿐만 아니라 여러 선택지가 있고, 이것을 능동적으로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워킹맘으로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는 미나를 통해서는 육아와 가사는 온 가족이 함께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라는 것을 그려보고자 했어요.


Q7. 차진호(정준원)와 이병훈(이재원) 등 남성 인물들은 초반과 비교해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정림 PD : 진호나 병훈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라는 설정이었어요. 병훈도 조금 철이 없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배우자를 사랑하는 남편이기 때문에 그들의 서사가 그렇게 흘러갈 수 있었고요. 진호도 마찬가지죠. 메인 서사가 너무 어렵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은 모두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Q8. 불륜 관계인 온유리와 박성준의 비중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들의 관계에 궁극적으로 담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이정림 PD : 불륜은 나쁜 것이다. 저를 비롯해 작가, 배우들은 일단 이 전제를 두고 출발했어요. 한편으로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흐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외도나 불륜을 끊임없이 합리화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분량이 많고 상세히 설명하다 보니 '불륜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그런 의도는 없었어요. 시청자가 유리를 보면서 분노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두 사람이 온유리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부는 장면 같은 것을 촬영하면서는 시청자가 분노할 것을 예상하기도 했죠. 그들만의 사랑에 빠진 상황을 보여주려 했지, 그 상황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Q9. 박성준과 온유리가 각각 부모의 외도로 인해 출생했다는 설정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정림 PD : 극에서 그 부분이 성준의 가장 큰 비밀이에요. 정선은 남편인 성준의 가장 큰 비밀을 몰랐죠. 이 점이 최후에 정선이 성준을 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어요. 남편의 비밀을 내가 가장 늦게 알았을 때 배신감과 미움을 넘어서 내가 진짜 그 사람을 모르고 살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래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복수가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나길 바랐던 것 같아요. 나정선은 복수를 하더라도 성준의 등에 칼을 꽂거나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놓아주는 것이 본인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었으면 했어요. 그중에 가장 어른인 거죠.


Q10. 배도일(장혁진) 이사 관련 에피소드 일부 장면이 자극적으로 묘사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정림 PD : 사실 미리 본 분들이 이렇게까지 묘사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현아가 가해 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시청자가 정말 분노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현아가 그 뒤에 했던 행동과 결과는 판타지에요. 대기업에서 임원을 상대로 성폭력을 폭로하고, 그 사람이 결국 회사에서 해고되는 것은 현실적으론 어려운 일이죠. 현아의 용기 있는 행동과 결단에 정당성이 생기길 바랐어요.


Q11. 장나라가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황후의 품격'을 함께하며 장나라의 이런 부분을 봤나.


이정림 PD : 저도 이전까지는 장나라 씨가 밝고 쾌활한 역할을 잘 소화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황후의 품격' 중반부부터 장나라 씨가 연기한 써니가 복수를 시작하며, 흑화하는 과정이 그려져요. 그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단순히 쏘아붙이는 분노가 아니라 진짜 복수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웃을 수 있는 인물을 보여줬죠. 장나라 씨는 정말 성실하고 대본 분석을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런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역할도 모두 다 잘하실 거예요.


Q12. 장나라와 'VIP'를 작업하며 감탄한 순간이 있다면.


이정림 PD : 'VIP' 3부를 정말 좋아해요. 정선이의 감정과 상상으로 몰아가는 내용이죠. 그 상상이 틀린 것을 알고 나서 좌절하면서 허무함을 느끼고…. 이 모든 감정이 한 회차에 나오는데 그걸 너무나 잘 표현했어요.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려냈어요. 대사도 별로 없는데 장나라 씨가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해서 감탄했어요.


Q13. 이상윤에게는 어떤 디렉팅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정림 PD : 연기 디렉팅보다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이상윤 씨가 연기한 성준은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정선이 감정을 표현하는 쪽이라면 성준은 삭히고 받아주는 편이죠. 이상윤 씨도 감정이 많이 드러나지 않게끔 연기했고요. 이상윤 씨가 잘해줬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더 분노하셨던 것 같기도 해요.


Q14. 마상우가 나정선에게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


이정림 PD : 상우가 정선에게 가진 감정은 동경과 존경에서 비롯된 사랑이에요. 그래서 정선이 아파할 때 함께 마음이 아팠고, 유리가 밉고, 성준이 원망스러운 거죠. 마지막에 정선은 상우를 부하 직원으로 대하지만, 상우는 정선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본인의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요.


Q15. 마지막 회를 본 시청자가 어떤 것을 느꼈으면 하나.


이정림 PD : 일단 미나와 현아가 처한 상황을 보고 공감하셨던 분들이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깨닫는 바도 있었으면 하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바람피우지 말라'는 메시지예요. 진심입니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