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진정성 있는 삶에 대한 열망

[컬처]by 웹진 <문화 다>

하병훈 연출의 <고백부부>(2017)

시간여행, 그 아찔한 매혹

만약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순간적으로 당장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려다가도 문득 망설여진다. 지금 보다 미숙하고 가난한 20대라...그 재미없는 수업을 다시 들어야 되고, 군대도 다시 가야 되고, 취업문을 다시 뚫어야 하고. 아무리 지금이 힘들고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작정 과거로 돌아간다고 나아지는 게 있을까.

 

그럼 질문을 바꿔서,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망설임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해야 되는 것들도 있지만, 적어도 경제적 풍요만큼은 누릴 수 있으니까. 주식을 미리 사둘 수도, 로또 번호를 외워갈 수도, 하다못해 스포츠 토토를 하면 더 이상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친구와의 우정, 애인과의 사랑 같은 것들을 다시 해야 한다. 나를 모르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미래의, 혹은 과거의 추억만 회상할 수 있다. 과거로 간 나는 미래를 잃는 것인지도 모른다.

 

KBS드라마 <고백부부>는 이런 상상력을 십분 활용한다. 30대의 권태기 부부가 20살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원작 웹툰의 그것과 같지만, 이 작품이 원작과 교집합을 이루는 것은 딱 거기까지다. 원작이 시간여행과 그로 인한 기억의 상실, 시간여행자의 정체, 정신분열 같은 판타지적 설정 자체에 집중한 작품이라면 <고백부부>는 시간여행을 모티프로 하여 삶의 본질을 캐묻는다는 차이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원작은 용두사미라 할 수 있고 <고백부부>는 제법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이다.

상투적인, 혹은 감동적인

올해 38살의 남편 최반도.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그의 하루는 계약을 따기 위해 윗사람과 병원 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시간으로 가득 차있다. 동갑내기 부인 마진주. 전업주부인 그녀의 하루는 아들 서진이의 육아로 채워진다. 저녁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만 피곤한 몸은 잠으로 직행한다. 그러는 사이 서로에 대한 불만은 쌓이고 쌓여 마침내 이혼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 잠에서 깨어나 보니 20살로 돌아가 버렸다.

 

<고백부부>의 매력 중 하나는 1999년을 충실히 재연했다는 점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복고의 파워는 이미 검증되었고, 이 작품은 그보다 최근이라 할 수 있는 1999년을 시대 배경으로 삼았다. 30대 중후반부터 40대 초반의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기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의 나이도 38이 아니던가.

후회 없는 진정성 있는 삶에 대한 열

그렇지만 이 작품은 복고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간 최반도와 마진주는 한껏 젊음을 만끽한다. 세월에 찌들고 상처받지 않은 친구들 사이에서 새롭게 사랑을 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그뿐인가. 후회로 보낸 장모님과 어머니를 재회하게 되면서 그 전에 하지 못했던 효도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이 왠지 허전하다. 미래에서 과거로 오면서 사랑하는 아들 서진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래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혹은 최반도와 마진주가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상 서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젊어져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돼서 기뻤던 것도 잠시다. 두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상황은 <고백부부>에서 무척 반복적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결국 이 작품이 가족 간의 사랑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그리기 때문이다. 최반도가 바쁜 회사 생활 때문에 방기한 것도 가족이었고, 마진주가 아들만 챙기느라 놓친 것도 남편이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부부로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부부는 가족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수단이 목적이 되면서 정말로 중요한 가족은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진주 어머니의 에피소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살로 돌아가 즐겁게 지내다가 문득 아들을 떠올리면서 최반도와 마진주가 우는 상황들은 주말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보았던 매우 진부하고 상투적인 상황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때 느껴지는 정서적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최반보와 마진주처럼 정말로 소중한 것을 잊고 살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

모든 인간은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다. 그 반대도 없고 예외도 없다. 지나간 과거는 그 누구도 되돌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간여행은 인류의 오랜 판타지인 것이다.

 

그래서 과거는 많은 순간들이 후회로 채워져 있다. 그때 그랬다면...그때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 조금은 달랐을 텐데...물론 그때의 나는 그것이 잘못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늘 과거를 후회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할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행동이 최선이었다는 판단 역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할 수 있다.

후회 없는 진정성 있는 삶에 대한 열

미래에서 온 최반도는 친구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있다. 소위 흑역사. 평생 원망하게 될 여자친구,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TV 출연 등등. 미래를 알고 있는 최반도는 친구들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그의 만류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최반도는 대부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기해버린다. 왜 과거를 바꾸지 않을까?

 

물론 <고백부부>가 <시그널> 같은 성격의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주제적인 측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성 있는 삶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최반도의 눈에 비친 안재우는 한보름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고독재는 너무나도 튀고 싶어 한다. 비록 그 결과가 안 좋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들의 마음에 진정성이 있기에 말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늘 옳은 선택만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지금은 최선이라고 한 선택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반대로 최악의 선택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이처럼 미래를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 최반도와 마진주가 시간여행을 하면서부터 이미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설령 두 사람 사이에서 다시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 아이는 예전의 서진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뻔하다. 거듭 강조하듯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후회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으나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보살펴야 한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타인을 위한답시고 나의 인생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나의 꿈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 진정성 있는 삶의 태도가 <고백부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PS-현실의 부부들에 부쳐

부부들에게 흔히 던져지는 질문.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또 결혼하겠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두 가지. YES(너무 사랑하니까) or NO(지겨우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싶으니까). 그러면서 많은 부부들이 이런 말을 한다. ‘가족끼리는 스킨십을 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아니라 정 때문에 산다’, ‘부부가 아니라 동지다’.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미혼자 입장에서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진담이든 농담이든 왜 굳이 자신의 상황을 비하하는 것일까. 후회하지 않는 진정성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작은 언사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오히려 자신의 삶에서 결혼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나 같은 미혼자들에게는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하는 이런 말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박상완(드라마 칼럼니스트)

2017.11.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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