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을 만나러 가다

[컬처]by 웹진 <문화 다>

2015년 7월 17일.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날씨는 화창하다. 조금 무더운 여름의 열기마저도 느껴지는 날이다.


가슴이 다소 두근거린다. 당신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가슴이 이상하게 설레인다. 이것은 마치 대학교에 입학해 첫 미팅할 때의 느꼈던 감정과 유사하다. 이번에도 심우일 영화평론가와 함께 당신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다른 일행은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9시 45분경. 예상보다 조금 일찍 운전대의 핸들을 잡고 출발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이다.


안성유토피아 추모관이라고 해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안성 부근까지 내려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막상 빠져나와 얼마 가다 보니, 네비게이션은 영동고속도로를 타라고 한다. 영동 고속도로에 접어든지 얼마 안 되어 고속도로를 나와 일반 도로로 들어갔다. 오늘의 목적지에 왔을 무렵, 네이비게이션의 mp3에서 신해철의 노래인 <슬픈 표정 짓지 말아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 길을 걸어 왔네

조금은 야위어진 그대의 얼굴모습 

빗길 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신해철의 '슬픈 표정 짓지 말아요' 중에서

이렇게 타이밍을 맞춰 신해철의 음악이 나오다니! 내 mp3 파일에는 다양한 음악 파일이 있다. 그런데 도착 시간에 맞춰 신해철의 음악이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뭔가 운명같은 것을 느낀다. 마치 신해철이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는 말처럼 느껴진다.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도착했다. 바로 추모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같은 편집동인 김혜연 씨가 남편과 함께 온다고 하여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일행이 도착해서, 우리들은 유토피아 추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왕 신해철을 만나러 가다

유토피아 추모관 엘리시움 앞에 가면 신해철의 사진과 함께 신해철이 <Goodbye Mr.Trouble>의 글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것이 신해철을 추모해 누가 만든 추모시인 줄 알았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고서야 이것이 신해철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해 만든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해철은 2012년에 이 노래를 발표했는데, 불과 2년 후에 그가 사망하면서 자신을 추모하게 되는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나’는 신해철이고, ‘그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만, 이 노래 가사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로, ‘그대’는 ‘신해철’로 번역되어 읽혀진다. 노무현을 추모해 만든 노래가 자신을 추도하는 노래가 되는 삶의 아이러니.

누군갈 사랑하는 일도

몹시도 미워하는 일도 모두

힘든 거라면 어차피 고된 거라면

사랑함이 옳지 않겠냐만

나는 그대가 밉고 또 밉고 미워서

고맙다는 말 대신 미안타는 말 대신

그대가 남겨둔 화분에 눈물을 뿌린다


신해철의 'Goodbye Mr.Trouble' 중에서

신해철은 1988년 ‘무한궤도’라는 그룹을 통해 MBC 대학가요제에 대상을 타면서 우리 곁으로 오기 시작했다. 무한궤도는 1집을 발표하고 바로 해체되었지만, 신해철은 솔로 가수로 변신해 발라드 가수로 최고의 인기 아이돌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다른 아이돌 스타와 성장 과정이 비슷했다. 그런데 신해철은 아이돌 스타에 안주하지 않고 1992년에 넥스트 그룹을 결성해 록커로 변신한다. 그는 1993년 2차 대마초 사건으로 교도소에서 10개월 동안 복역했지만 그것은 그의 삶에 있어 또 다른 성장의 계기가 된다.


교도소에서 출감한 이후 신해철은 억압적, 획일적, 폭력적 지배질서에 저항하는 음악계의 테러리스트가 된다. 1990년대에 신해철은 실험적인 록음악을 통해 비러브송의 세계를 보여주었고, 철학적 사유가 담긴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시대를 풍미한다. 신해철은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노력하는 천재였다. 작사 작곡에 노래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인 신해철은 반항하는 록음악을 통해 기존의 지배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꿈꿔왔다. 독설음악과 독설가의 모습은 그의 반항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해철은 1997년 넥스트 해체 이후에도 지배질서에 타협하지 않고 비판적인 독설을 쏟아내면서 불온한 질주를 보여줬다. 신해철은 2000년대에도 실험적인 자신의 음악을 계속 해왔지만, 대중들과의 소통은 음악보다 <고스트 스테이션> 방송과 <MBC 100분 토론> 등의 방송 활동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마왕’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이 마왕이 작년 2014년 10월 27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사건’이었다. 그래서 충격은 더욱 컸다.

마왕 신해철을 만나러 가다

신해철의 무덤 앞에 가면 작은 테이블이 있고, 그 앞에 팬들이 갖다 놓은 물건들이 놓여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이들을 그린 그림이다. 신해철은 2002년에 윤원희 씨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이 그림은 바로 신해철의 아들과 딸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옆에는 신해철의 아이들이 적은 글이 놓여 있다. 맞춤법도 틀린 문장이지만 이 문장들은 왜 이리 가슴을 후벼파는 것일까.

아빠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죠?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잔아요. 아빠는 크리스마스 선물 안주셔도 돼요 ㅋㅋㅋ ♡보고 싶어요♡ 영원히♡ 아빠 즐거게 크리스마스 보내새요

테이블에 놓여 있는 『마왕 신해철』이라는 책을 열어보면 아내 윤원희 씨가 내지 종이에 적은 글이 있다.

Dearest 여보....

여보가 틈틈이 써놓으셨던 글이 책으로 나왔어요.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은 먼 훗날 더 들려주세요...

2014.12.24. 원희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 죽는다. 이별은 삶에 있어 필수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다. 신해철은 그러한 이별 과정에 필요한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더욱 슬픈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어느 팬이 갖다 놓았는지 마왕을 그린 그림도 몇 점 있다. 그림 옆에는 노란색 종이에 신해철에게 보내는 글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 서두의 문장은 “우리가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알려준 아주 멋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한 남자와 준비된 이별을 하려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것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는 신해철. 나는 신해철이 살아 있을 때 그가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의 중요성을 그렇게 소중하게 접수하지 못했다. 그가 떠나니 그가 노래했던, 말했던 모든 것들의 의미가 새삼 새로우면서도 가슴 떨리게 다가온다. 있을 때 잘해! 나는 이 평범한 말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바보였다.


신해철의 무덤 앞 왼쪽에도 팬들이 보낸 흔적들이 놓인 작은 테이블이 있다. 이 테이블에 있는 노란색 쪽지에 적혀진 말.

마왕님~♡. 항상 저희 가슴 속에 생생하게 살아 계실 것을 믿을게요~ 정말 사랑합니다.

카드에도 신해철에게 보내는 편지 글이 눈에 띈다.

오늘 밤에 잠들기 전 고스 한편씩 듣고 자요. 그럴 때면 오빠가 여전히 옆에 계신 것 같아요. 사랑합니다. 2015.1.5.

그는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기억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신해철은 분명 저승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괜시리 질투(?)가 난다. 그의 인생은 비록 짧았지만 후회없는 삶을 멋지게 살았다.

마왕 신해철을 만나러 가다

신해철의 납골당 무덤은 다른 유명인의 무덤과 비교해 보면 크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는 일반인들과 똑같은 크기의 납골당에 잠들어 있다. 이것은 남들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게 있으려고 한 고인의 뜻과 고인의 유지를 이으려는 유족의 뜻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의 무덤은 일반인과 똑같은 크기였지만 웬지 광채가 나면서 더 커보였다.


신해철은 독설신공의 최고수였다. 그는 음악 분야에서 독설신공을 키워 그 위력을 만방에 보였다. 나는 문학 분야에서 독설신공을 키우며 그 위력을 키우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제도권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탓인지 독설신공의 위력이 신해철의 반 정도에 불과했다. 신해철은 나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독설신공에서 있어서 그는 나의 선배였다. 그는 나의 영웅이다.


신해철(1968.5.6.~2014.10.27.) 1주기가 곧 다가온다. 신해철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가 기획되고 있다. 나는 신해철 관련 책을 준비하면서 그를 떠나 보낸 슬픔을 극복하고, 그가 꿈꾼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본다.


나와 일행은 고인이 된 신해철을 추모하는 묵념을 했다. 우리의 이 묵념이 일회성이 아니라 신해철이 꿈꾼 세상을 향한 불쏘시개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신해철 관련된 자료를 보고, 무덤을 찾고, 글을 쓰면서 새삼 느낀다. 그는 마왕도 아니었고, 교주도 아니었고, 다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인간이었다. 나는 그 인간을 무지 많이 사랑한다.


해철아! 고맙다. 니가 있어 내 삶은 엄청 행복했다.


최강민(문화평론가)

2015.08.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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