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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시인 서윤후와의 인터뷰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2016)

by웹진 <문화 다>

일시 : 2016년 6월 7일

참석자 : 김지윤(인터뷰어, 문학평론가), 서윤후(시인)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거울을 보면서 세월의 흔적이 묻은 얼굴을 낯설게 쳐다보게 될 때가. 존경하는 한 노교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몸이 늙어버린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네. 슬픈 것은 아직 늙지 않은 마음인 것이지. 

 

삶은 한 살씩 늘어가는 나이와 함께 점점 더 세상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지고, 성숙해질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이 슬퍼질 때는 이런 순간일 것이다. 자기 속에 아직 남아있는 소년, 혹은 소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 어릴 적 ‘내’가 사실은 아직도 외롭게 마음 한 구석에 살고 있는 것을 깨달을 때. 그럼에도 그것을 숨기고, 눈과 귀를 닫은 채 외면해야 한다면. 

 

서윤후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내게 느꼈던 서늘함과 묵직한 울림은 그럴 때마다 내가 느꼈던 슬픔을 정면으로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 속에는 ‘소년’에 대한 애정과 함께 거리감. 단절감이 동시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쓸쓸하면서도 달콤하다. 스무 살에 등단한 그는 이른 나이에 문단에 나와 어떤 시간들을 보낸 것일까. 어쩌면 너무 일찍 ‘소년’과 이별해야 했을지 모를, ‘프로문인’으로의 데뷔는 그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2016년 2월, 서윤후 시인이 2009년 등단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민음사)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인데도 이례적으로 중쇄까지 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등단 이후로 늘 지켜보던 시인이며, 많은 개인적인 궁금증과 비평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어서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 내심 반가웠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20

김지윤 : 안녕하세요. 저는 그동안 서윤후 시인의 시를 매우 흥미롭게 읽었어요. 서윤후 시인께서 다른 인터뷰에서 “왜 시를 쓰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전에 등단을 해버렸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읽은 적이 있어요. 등단하고 첫 시집 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셨는데, 그 시간의 여백 동안 어떤 것들을 채워 넣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시기에 무엇을 느끼고 어떤 고민을 하고 혹시 정체기가 있었다면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런 것들을 여쭤보고 싶네요. 

 

(+ 시를 계속 쓰는데 일찍 등단한 것은 도움이 되었나요. 아니면 부담이 되었나요.)

 

서윤후 : 지금 돌이켜보면 등단이라는 건 제게 또 다른 출발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의미 부여를 했기 때문에 힘들고 외로웠던 것 같아요. 같은 해에 등단한 젊은 시인들이 일찌감치 주목을 받고 시집을 내고 있었는데, 이로 인한 조바심 같은 것들이 제일 힘들었어요. 주변 선배 시인들이 조급해하지 말고, 멀리 보라는 말을 자주해주셨는데 사실 큰 위로가 되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말을 제가 제 스스로에게는 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군대였어요. 군대 이야기는 참 재미없고 지루하지만, 저와 시를 두고서는 군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군대에서 제가 많이 바뀌었고 저를 돌아보았기 때문이에요. 처음으로 아침에 시를 써보았고, 아무 생각 없이 시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군대가 주는 절실함을 더했더니 사회와 떨어져 있다는 기분이 좋게 작용한 셈이죠. 행정병으로 있으면서 많은 청탁을 받기도 한 때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제게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걸 속삭였어요. 그때 나를 돌아보면서, 돌아볼 것이 별로 없는 짧은 시간 안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 억지로 뭔가를 찾아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시로 승부를 본다는 것 자체가 참 우습고 패기가 가득한 말이죠. 자연스럽게 나를 알아가면서, 제게서 소년을 처음 보았어요. 사실, 김행숙, 박상수, 서효인 시인이 시에서 썼던 소년들에게서 저를 발견한 일은 저 혼자서 빚을 지는 일과도 같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조금 더 가깝게 소년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단어나 문장을 세공하면 시가 되던 때가 있었는데 군대에서 돌아와 저는 그래도 저만의 시를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이상한 희망을 가졌던 것 같고요.

 

왜 시를 쓰는지에 대한 대답은 아직 잘 못 할 것 같아요. 돈이 안 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서 좋아요. 그런데 좋아함만으로는 언제든 그만둘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좋아하는 힘으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길 바라며 헤매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누군가의 작품에서 대신 답을 얻을 수도 있고, 끝끝내 찾지 못 할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이, 제가 살아오거나 앞으로 살아갈 날들과 맞물려 간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좋아요.

 

김지윤 : 다른 인터뷰에서 “시가 상징과 암시 뒤에 자신을 숨기는 느낌에 매료되었다”고 하셨던 것을 읽었는데요. 시의 언어가 드러냄보다 숨김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시와 자아와의 관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가장 자기의 내면과 가까운 것이기도 하고, 가장 자신을 은폐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 시란 참 묘한 것 같은데요. 서윤후 시인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좀 모호하고 어려운 질문이라 죄송하지만 그렇다면 시와 ‘나’와의 거리, 시와 현실간의 거리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서윤후 :  첫 시집을 준비할 땐 온전히 ‘나’를 포괄하는 시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와 같은,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초대한 셈이에요. 나의 지나감을 불러오고, 나의 다가옴에 맞서는 자세로 시를 썼던 것 같아요. 시가 꼭 그래야만 한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건 아직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천천히 조금씩 시가 문제의식에 균열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궁리할 것들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비로소 ‘나’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어요.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20

첫 시집 원고를 정리할 땐 등단 직후에 썼던 시들이 먼저 버려지게 되더라고요. 책을 낸 후에 쓰는 시들에선 나도 모르게 나의 일상들이 튀어나오고, 조금 더 나와 가까워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을 경계하고 있어요. 거리감 없이 나의 일상이든, 내가 보는 사회든 시에 속하게 되는 순간부터 폼을 잡게 되거든요. 결국 보기 좋게 세공될 것이고, 가다듬은 목소리는 많은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테니까,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나와 현실을 인정하면서 거리감을 조성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명쾌한 시를 쓰려고 노력하지 않는 편이에요. 시가 나를 숨긴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엔 시가 나를 ‘풍긴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도드라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선에 시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시가 나를 ‘풍긴다’니. 너무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시는 체취와 같은 것일까. 명쾌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암시적으로 나를 나타내주는. 상대에 따라서 그 체취에 대해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시는 해석의 지평에 놓여있으며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친숙하게 개별적인 의식 속으로 스며드는 그런 것이라고. 오로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냄새처럼, 나만이 쓸 수 있는 언어로 쓰인 시는 나 자신을 담아내며 “도드라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선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   

 

김지윤 :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에 대한 질문을 좀 할게요. 아무래도 이 시집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된 바가 ‘소년성’이라는 것일 텐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스무 살에 쓴 시와, 그동안 많은 일을 겪고 사회도 경험한 후의 지금의 시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시집을 오랜만에 내다보면 꽤 긴 기간 동안 쓴 시를 다 묶다보니 한 시기와 다른 시기 간의 어떤 생각이나 정서의 낙차같은 것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시게계의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시나요? 혹시 스무살, 20대 초반에 쓴 작품들을 보면서 어떤 심리적 거리를 느끼는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이제 (마음과는 무관하게) 실제로는 점점 더 소년에서 멀어지고 있을 텐데요.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그리고 ‘소년성’의 미학에 대해서 시인 자신이 갖고 계시는 생각도 궁금하구요. (+혹시 그동안의 비평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그런 얘기를 해주셔도 좋습니다)

 

서윤후 :  정말 많은 작품을 써보고 난 뒤, 실핏줄 같은 맥락을 찾은 것이 바로 ‘소년’이었어요. 소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소년’을 지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그동안의 소년들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게 진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의심과 믿음으로 시작을 했어요. 어리숙한 어른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태연하게 소년의 목소리를 냈을 때 더 정확하고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스무 살부터 책을 낸 스물일곱 살까지 매일이 달랐어요. 왜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다를까, 이런 궁금증들로부터 다시 출발한 시들도 있어요. ‘낙차’가 생긴다는 말에 정말 공감해요. 그래서 데뷔하고 난 뒤에 쓴 대부분의 시들은 시집에 실리지 못 했고, 시집 원고를 넘기기 직전에 쓴 시들은 실렸어요. 아무래도 지금의 ‘나’는 스무 살 근처에서 썼던 ‘나’의 편을 들어주기 어려웠는지도 몰라요.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20

제 첫 시집이 ‘소년성’을 ‘동생’으로 호명하는 일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동생이 가진 의미들을 곱씹어볼 때, 저는 언제나 형으로 살았기 때문에 어려웠어요. 그러나 문단에선 언제나 동생이었고, 동생의 입장에서 형, 누나와 같은 선배들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들도 있었고요. 이십 대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미숙한 동생들 같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저는 ‘소년성’이 가장 위험한 것 같았어요. 건드리면 터질 것 같고, 주변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그래서 변하기 쉬운 아주 예민한 상태이지만, 공격적이지 않고 자꾸 숨으려드는 경향을 지금의 이십 대와 만나게 해준 것 같아요. 실제로 함께 이십 대를 지나는 사람들과 소년을 나누고 싶었어요. 영원하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아차리지만 후회하기에는 아직 이른 애매모호함, 정확하지 않아 생기는 불안함과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달까요. 이 소년이 첫 시집에서는 ‘이상한 희망’이 이끄는 쪽으로 갔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지는 이제 그 다음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어요. 

 

김지윤 :  블로그, 트위터 등 SNS를 많이 활용하고 계신데요. 아무래도 90년대 생이시니 어려서부터 인터넷을 접했던 세대로서 어떤 시대적 감수성 같은 것이 있으실 텐데 ‘디지털’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디지털 시대에 어쩌면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르라고도 할 수 있을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시를 쓰는 서윤후와 SNS 공간의 서윤후 사이의 간극을 느끼시나요?

 

서윤후 :   저는 SNS를 참 열심히 하는 편인데, 이 모든 이유는 ‘기록’ 때문인 것 같아요. 순간적인 감정, 기분, 그날의 분위기, 사람, 대화 등을 기록하기 위해서 다양한 채널을 활용한다고 해야 할까요. 남들이 보는 것이니, 여과를 거치긴 하지만 결국 먼 훗날 제가 보기 위해서 작성하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날로그’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자판을 두드리는 것보다 연필을 사각거리는 일이 더 좋고, 화면을 터치해서 넘기는 일보다, 책장을 부비며 넘기는 일이 더 좋다는 것.

 

그런데 요즘 캘리그래피가 유행이잖아요. 종이에 글씨를 쓰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게 된 이유는 바로 SNS 때문인 것 같아요. 실제로 저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쓰고, 매일 IT기사를 봐요. 신제품에 관심이 많고, 집에는 멀티탭이 넘쳐날 정도로 꽂아야 할 코드들도 많아요. 그렇게 편리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딱 목마름 정도인 것 같아요.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디지털화가 되었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저라는 사람을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하며 뭐든 쓰고 있어요. 개개인이 다 하나의 콘텐츠라서, 공유되고 분리되고 구분되면서 크고 작은 운동성을 지니게 된다는 점, 그런 점에서 ‘정보의 홍수’라는 말을 가져오고 싶어요. 이왕이면 저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아날로그’는 끝끝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겠죠. 아날로그를 잊지 않은 사람만이 디지털도 더 섬세하게 다룰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제 SNS는 실제로 최신 정보를 공유하거나, 시의성을 갖는 내용을 잘 다루지는 않아요. 아날로그 성분의 저를 보기 좋은 디지털로 덜어놓는다고 하면 맞을까요? 좀 어렵지만, 그런 작업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소위 ‘데이터이즘(Data-ism, 데이터주의)’ 의 시대에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개인의 기록을 지워지지 않는 데이터로 변환시킴으로써 인간을 예속시키는 ‘빅데이터’의 시대는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흡수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시대에도 자기만의 콘텐츠로 개별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는 디지털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데이터로 만들면서, 그러나 ‘분석되지 않는 데이터’가 되려는 모양이다. 데이터로 분해되지 않는 자아를 데이터의 심장부에서 실험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웹에서 남기는 ‘개인의 일상의 기록’은 그의 ‘명쾌하지 않은’ 시 속에서 해체된다. 그렇게 ‘데이터화’의 손아귀에서 탈주하는 “SNS를 하는 시인”이란, 흥미롭지 않은가.)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20

김지윤 :  아무래도 시집에 대해 궁금해 하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에 대해 시인께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그리고 시집에 실린 시들을 쓰면서 계속 따라다녔던 문제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서윤후 :  ‘이상한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과 ‘소년성이라는 가능성’과 ‘무기력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정리가 된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첫 시집의 세계와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시는 왜 다 절망적일까. 저는 그런 포즈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 저런 서평에서 제 첫 시집의 인상을 ‘착함’으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아서 좀 아쉬웠어요. 실제로 저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예요. 하지만 이 ‘착함’을 제가 말한 ‘이상한 희망’을 짚으려는 ‘자세’ 정도로 봐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꽃이나 화창한 날씨, 화기애애한 분위기 같은 것들이 없이도 일어나는 희망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오히려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그 애매모호한 시간 속에서 태어나는 희망들,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가까운 생활 속에서 그것들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이 착함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시가 예쁘다거나 착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유리의 반짝임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잘게 부서진 유리의 반짝임 같은 걸로 배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리의 반짝임으로 배반하고 싶다니. 정말 매력적인 말이다! ) 

 

김지윤 :  다음 시집 계획은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지 궁금하네요.

 

서윤후 :  책을 내고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와 격려를 받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시는 책을 내고 싶지 않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부담이 되었어요. 첫 시집을 내면 나는 남들과 다르게 기쁘고 재밌게 지내야지 싶었는데 참 어렵더라고요. 여러 대담과 인터뷰에서 다음 시집에 대한 계획을 말할 때, 이 소년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봐달라고 했어요. 아마 착하고 예민하고 소극적이었던 소년이었으니, 다음엔 거칠고 사납게 뒤바뀌어야 드라마가 될 것 같죠? 그런 예측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나를 채워 보살폈던 시간이 첫 시집이라면 그 다음은 나를 버리고 비우면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첫 시집과 함께 많은 산문들을 여기저기에 발표했어요. 곧 여행 산문집도 나오게 되는데, 산문만큼은 처음과 나중의 구분 없이 꾸준한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계속 가까워지는 말소리를 내고 싶어요.

 

김지윤 :  자연인으로서, 취미나 좋아하는 것들 등 평소 생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들은 무엇인지, 현재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는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여행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서윤후 :  평소에는 언제나 나의 생활이 나의 것으로 온전히 채워지길 원하는 편이에요. 남들도 쉽게 가질 수 있는 것 말고, 나만의 견출지를 붙일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찾는 편인데, 그 중 하나가 여행이었어요. 여행은 계획과 능력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해요. 남들처럼 식도락 여행이 되거나 쇼핑을 하는 여행과는 거리가 좀 멀지만, 항상 낯선 곳에 있는 저를 좋아해요. 제가 조금 더 보인다고 해야 할까. 저를 잘 알게 되어 좋은 점은, 어릴 땐 몰랐지만 지금의 저는 어떤 일에 절망하거나 실망하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가끔 무뎌져서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이미 나를 알고 있다는 방어 기제가 작용하는 것 같아요. 결국 덜 아프고 덜 다치고 싶어 나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과도 같겠군요. 여행은 그런 준비를 끝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공격과 수비를 일삼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 여행을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지윤 :  시집의 독자들이나 시집을 읽고 싶은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윤후 :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만나 함께 펼쳐진 시간이 있었다면 정말 기쁘고요, 앞으로 그럴 일이 있다면 기대가 될 거예요. 제 친동생에게 시집에 들어갈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 날이 문득 떠올라요. 그때 저는 제가 형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어요. 동생이 서울에 놀러왔다가 전주 집으로 내려갈 때, 터미널로 배웅했을 때도 떠올라요. 마치 동생을 터미널 한복판에 두고 온 것 같은 그런 기분, 첫 시집을 내고나선 꼭 그런 기분이 들어요. 아니겠지만 슬프고, 그럴 일 없겠지만 걱정되는 와중에도 한 권으로 채워진 저의 미약함이 지금은 든든해요. 독자 분들도 그 힘을 함께 나누셨으면 좋겠어요. 시집을 읽으며 저를 어디론가 자주 데려가주시고, 시를 쓰며 저 또한 어디론가 자주 초대할게요. 고맙습니다.

 

김지윤 :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중에도 시인 자신이 드러내고 있는 바와 같이, 그의 시는 변화하는 중이고, 변화할 것이다. 실제로 서윤후 시인의 최근작들을 읽으면 그 결이 조금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그의 두 번째 시집에서 ‘일어나게 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의 첫 번째 시집이 보여주었던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이상한 희망”이 어떻게 모습을 달리하게 될지 기다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