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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오직 하나뿐인 그대

'레이먼드 카버' 예술

byKT&G 상상마당 웹진

레이먼드 카버가 새롭게 읽히는 나이가 되었다. 사람도 술처럼 익을까.

'레이먼드 카버' 예술

예술 작품을 논할 때 작품 그 자체의 완결성만을 보아야 한다는 입장과, 작가의 성장과정이나 사생활, 시대적 배경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 각각 있는 모양이다. 어느 쪽이 더 선호되고 세련된 방식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저 미련 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작품도 있고, 앞날개로 되돌아가 작가의 못생긴 구레나룻까지 꼼꼼하게 뜯어보는 작품도 있다. 때로는 작품보다 작가의 삶에 먼저 이끌리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가 내게는 그런 경우다. 그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작가들의 열렬한 찬사에 귀가 솔깃했고,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심지어 짧기까지 한 삶의 궤적에 매료됐다. 그 궤적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줄타기’였고, 그건 당시 나 자신의 문제와도 닿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의 삶을 거칠게 전개하면 이렇다. 그는 열 아홉에 결혼했고, 곧바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오랫동안 찢어지게 가난했다. 글 쓰는 삶과 가정생활 사이의 줄타기. 그는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싶어했고 작가로서 성공하기를 갈망했지만 네 식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화장실 청소, 모텔 관리 등 온갖 잡일을 해야만 했다. 아내 메리엔은 웨이트리스 일을 하거나 책을 팔러 다녔다. 언제나 임시변통으로 살았고, 영양상태는 엉망이었다. 메리엔의 표현을 빌면 ‘연골이 부서지도록 일하던’ 나날이었다. 레이가 체호프의 뒤를 잇는 ‘단편소설의 대가’가 된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대한 경제적인 글쓰기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야간 근무를 마친 후 빨래가 돌아가는 코인 세탁기 위에서, 삐걱거리는 식탁 위에서 커다란 몸을 웅크리고 글을 썼다.

'레이먼드 카버' 예술

그 자신이 속해있던, 하층계급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주인공들은 걱정에 사로잡혀 있거나 지리멸렬하게 싸우고 있거나 실업이나 이혼의 위기에 처해있고, 그렇지 않으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있다. 그들의 어떤 하루가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느릿느릿, 사실적이고 간결한 문장으로 전개된다. 복잡한 삶의 단면을 가장 단순한 스타일로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곧 미국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갈구하던 부와 성공을 쉽게 거머쥐는 듯 했지만…


술. 술이 문제였다. 글쓰기와 생업을 병행하며 오랫동안 초조하고 우울했던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알코올중독자가 그렇듯 자신이 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걸 결코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는 지나치게 많이 마셨다. 수년에 걸쳐 두 번이나 파산했고, 메리엔과 극심한 불화를 겪었다. 하루 종일 취해 있는 상태로 아내와 싸움을 반복하는 소설 속 장면은 바로 자신과 메리엔의 모습이었다. 좋은 가장이 되고 싶은 자아와 모든 걸 버리고 ‘지중해 빌라’에서 온종일 글만 쓰고 싶은 자아가 싸웠다. 책임감 있는 인간이 되고 싶은 자아와 그냥 술꾼으로 끝까지 망가져버리고 싶은 자아가 멱살을 잡았다. 무질서하고 파멸적인 나날이었다. 열여섯 살 난 딸이 그들 부부를 유치장에서 두 번이나 꺼내야 했다. 그 무렵 무수히 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술과 함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벌써 수 차례 발작해 의학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므로 그도 곧 죽을 것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술을 끊는 데 성공했다. 계속해서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성공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알코올중독 증세를 압도했다! 그는 절망적이었던 그 시기의 자신을 ‘나쁜 레이’라고 부르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고, 당시의 이야기들을 작품에 그려냈다. <대성당>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과 같은 걸작들이 ‘나쁜 레이’ 이후에 쓰여졌다. 서늘하고 예리한 느낌의 초기작들에 비해 금주 이후 발표한 작품들은 보다 따뜻하고 감동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작가 자신이 지독한 풍파를 겪으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마흔 아홉에 폐암으로 죽을 때까지, 예술과 인생에서 그 나름의 질서를 찾았다.

'레이먼드 카버' 예술

내가 처음 레이먼드 카버에게 매료된 건 아마도 이러한 작품 바깥의 모습, 작가의 ‘절박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게으른 작가지망생에게 레이먼드 카버의 삶은 자극제로 충분했다. ‘그는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하고 쪽잠을 자면서도 어떻게든 글을 쓸 시간을 마련했어!’ ‘그는 살아 돌아오기 힘든 그 지독한 알코올중독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만큼 글쓰기를 사랑했어!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시간이 흘렀다. 게으른 작가지망생은 여전히 게으른데다 결정적으로 재능이 없음을 여실히 깨달았으므로 문학의 주변부에서 그저 성실한 독자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난 후 편안하게 앉아 그의 작품을 다시 읽자 완전히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젊은 시절의 레이처럼, 초조함에 마음이 들끓던 20대 초반의 나는 레이먼드 카버 소설이 주는 묵직한 맛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는 언제나 있었지만, 어쩌면 그건 작가지망생의 허세였는지도 모른다. 그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인생의 작가’, ‘오직 하나뿐인 그대’로 꼽게 된 건 30대가 되어서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무척 설렌다. 40대, 즉 레이가 작품을 썼을 때의 나이가 되면 어떨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가와 작품은 별개로 보아야 하는가, 함께 읽어야 하는가? 레이먼드 카버를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작가를 먼저 알든 작품을 먼저 읽든, 작가와 작품을 따로 놓고 보든 나란히 보든 간에, 당신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만약 지금이 아니라면 훗날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글. 미깡 (웹툰 작가, <술꾼도시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