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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中어선, 인도네시아 선원 셋 水葬 “어찌할 방법 없다”

by서울신문

서울신문

중국의 참치 원양 어선 롱싱 629호 선원들이 조업 중 숨진 인도네시아인 선원의 시신을 담은 관을 바다에 수장하고 있다.환경운동연합 동영상 캡처

한국 시민단체들이 언론에 공개한 중국 원양어선의 인도네시아인 선원 착취·시신 수장(水葬) 사건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뒤늦게 격앙된 반응을 낳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7일 보도했다.


이 나라 매체들은 환경운동연합과 공익법센터 어필이 공개한 사건 전말을 앞다퉈 보도했다. CNN 인도네시아는 ‘한국 언론, 중국 어선 인도네시아 선원 노동 착취 보도’, 콤파스TV는 ‘잔인하다! 중국 어선서 착취당하는 인도네시아 선원’, 비바뉴스는 ‘비극적! 인도네시아 선원 시신을 바다에 버린 중국 어선’ 등의 제목으로 소식을 전했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정부의 즉각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누리꾼들은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트위터에 관련 뉴스를 댓글로 올리고 “코로나 사태도 중요하지만,중국 원양어선의 우리 근로자가 착취를 당했다. 이들이 여전히 부산에 있다고 하니 빨리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인도네시아 외교부는 베이징 주재 대사관을 통해 이번 사건의 해명을 중국 당국에 요구했다.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외교부는 다른 선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국제 해사 관행에 따른 조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며 “추가 해명을 요구하기 위해 중국 대사를 초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번 사건에 진지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 물을 수 있겠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이들 배에 오른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해서 13개월 동안 한번도 뭍을 밟아보지도 않고 바다 위에서 조업을 하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내려줬기 때문에 우리도 도의적 책임이 없지 않다.


환경운동연합은 전날에야 보도자료를 배포해 어필 소속 김종철 변호사가 지난달 19일 부산항에 입항한 중국 다롄 오션피싱 소속 어선 롱싱 629호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선원 27명 가운데 일부와 인터뷰를 해 “매일 18시간 이상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받았다. 1년간 일하고도 우리 돈 약 15만원의 임금을 받는 등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중국 선원들로부터 폭행도 당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인 선원 세프리(24)가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지난해 12월 21일 숨진 뒤 바다에 수장됐다. 남태평양 사모아 부근이었는데 45일 전부터 몸이 붓고 호흡 곤란과 심장 통증이 느껴진다며 병원에 데려다줄 것을 요구했지만 선장은 거절했고 결국 숨졌다. 롱싱 629호에서 롱싱 802호로 옮겨 탄 알파타(19)도 세프리와 거의 같은 고통을 호소하다 결국 엿새 뒤 숨을 거뒀다. 아리(24)도 티엔우 8호로 이동한 뒤 두 선원과 같은 증상으로 17일 간 고통받다 세상을 등졌다.


이들의 시신은 모두 사망한 날 사체에 닻을 달아 바다에 수장시켰다며 충격적인 동영상을 공개했다. 같은 선사의 배를 타고 부산에 하선한 펜디(21)도 코로나19 격리 중이던 지난달 26일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다음날 숨졌다. 부산의료원에서 사후 검사를 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모두 네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손수호 변호사는 바다에 시신을 수장하는 행위가 끔찍하고 잔인하긴 하지만 국제법적으로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고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손 변호사는 시신을 냉동 보관하거나 가까운 뭍이나 섬으로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수장 자체를 문제삼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익법센터 어필이 확보한 선원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외지에서 마주하는 리스크와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사망은 모두 본인이 책임지며, 본인이 사망했을 경우 선박에 가까운 지역에서 사체를 화장해 인도네시아 본국으로 보내지는 것에 동의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또 “선원이 해야 할 일과 관계없이 선장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조항도 있다. 무조건적 복종을 계약한 선원들은 선원들의 구타와 상어 조업 등 불법어업에 가담해야 했다. 중국 선원들은 생수를 마시고 인도네시아인들은 바닷물을 걸러 마시게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런데 선원과 중계업체 간 계약서는 홍콩, 대만에서 사용하는 번체자가 사용돼 있고, 선원과 선주 간 체결되는 계약서엔 중국 본토에서 사용하는 간체자가 사용대 선원이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계약을 강요하고 있었다. 또 중국어로 작성된 계약 내용과 인도네시아어로 작성된 계약 내용 일부가 다른 것도 확인됐다.


롱싱 629호에 탑승하고 있던 선원들은 매일 18시간 이상 강도 높게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이들은 “바다에 있는 1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육지를 밟아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또 참치 잡이를 허가받고 상어를 낚아 샥스핀 요리에 쓰일 꼬리만 자르고 다시 바다에 나머지를 던져버리는 잔인한 불법 조업도 일삼았다고 선원들은 관련 증거로 사진 여러 장을 공개했다.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EJF) 등 시민단체는 한 목소리로 “마지막 사망자를 부검해 억울하게 죽은 4명의 사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부검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해상에서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 사망한 선원이 있으나 모두 수장돼 사인규명이 불가능하다”며 “정부는 피해자들이 한국에 있을 때 보편관할권 원칙(형법 제296조 2항)을 적용해 수사하고, 억울하게 사망한 선원들을 위해 인터폴 국제수사 공조를 요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손 변호사는 이미 중국 어선은 자국으로 떠나버렸고 인도네시아 선원들도 코로나19 격리 기간이 다 돼 이날 출국할 예정이라며 이 사건이 흐지부지되고 말 것 같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