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 너머 숨겨진, 하늘 길 열던 선녀의 옷자락

[여행]by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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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산자락을 찢으며 솟구쳐 오른 듯한 베틀바위의 위용. 오를 때는 인식하기 어렵지만 절벽 맞은편 전망대에 서면 비로소 베틀바위의 거대한 규모를 실감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베틀바위 정상이다.

강원 동해에 거창한 이름의 경승지가 있다. 무릉계곡(명승 37호)과 두타산(1353m)이다.

이상향을 뜻하는 단어들을 각각의 지명에 차용했다.

무릉계곡과 두타산 사이엔 베틀바위가 있다. 두타산의 정수라고 해도 좋을 웅장한 바위봉우리다.

길이 험해 극소수의 전문 산악인들만 찾았던 베틀바위지만 이젠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간다.

새로 난 ‘베틀바위 산성길’ 덕이다. 그 길을 따라 늦겨울이 머물던 두타산 베틀바위를 다녀왔다.


‘무릉’(武陵)은 신선들이 노닌다는, 이상향을 뜻하는 도가의 용어다. 무릉계곡이란 이름에 ‘지상에 구현된 이상향’이란 뜻이 담긴 셈이다. 무릉계곡을 감싸고 있는 건 두타산이다. ‘두타’(頭陀)는 불교 용어다. 번뇌를 버리고 수행 정진할 수 있는 정결한 땅을 뜻한다. 두 믿음 사이에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 베틀바위가 있다. ‘베틀’ 역시 가벼이 볼 단어는 아니다. 예부터 혼례를 앞두고 보낸 함 속 물목 중에 명주실이 포함된 것에서 보듯, 토속 신앙 곳곳에 등장하는 실의 ‘지위’를 생각해 보면 실로 옷감을 짓는 베틀 역시 친숙하면서도 무게감을 갖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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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바위 산성길’ 곳곳에서 힘차게 둥치를 뻗고 있는 금강소나무.

여행지 이름 하나 설명하는 데 웬 장광설이 이리도 낭자한가. 이유는 하나다. 이 구간이 그동안 많은 이들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에 속해 있었다는 걸 설명하고 싶어서다. 무릉계곡도, 두타산도 못 가는 곳은 아니다. 외려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다. 한데 딱 한 곳, 베틀바위 구간만은 갈 수 없었다. 장비를 갖춘 극소수의 암벽 등반가들만 찾았다. ‘베틀바위 산성길’이 정비된 이후엔 달라졌다. 수많은 ‘등린이’들이 이 등산로를 따라 베틀바위를 오른다. 수직의 베틀바위를 곧장 오르는 건 여전히 불가능에 가깝지만, 베틀바위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베틀바위 정수리까지는 우회해서 갈 수 있게 됐다.

산성길 정비 후 베틀바위 코앞에서 누리는 전망대

베틀바위는 두타산 초입에 창검처럼 뾰족 솟은 바위 봉우리를 일컫는다. 이름은 베틀을 닮아 지어졌다고도 하고, 하늘에 오르기 위해 삼베 세 필을 짜야 했던 선녀의 전설에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어쨌든 선조들이 쭉쭉 뻗은 바위 봉우리에서 베틀의 이미지를 보았던 건 분명해 보인다.


베틀바위 들머리는 무릉계곡 초입에 있다. 매표소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면 등산 안내판이 나온다. ‘베틀바위 산성길’은 안내판 너머에 있다. 안내판 오른쪽은 삼화사와 무릉계곡 방향이다. 베틀바위를 포함해 두타산을 완주하려는 이들이 흔히 산행의 날머리로 삼는 곳이다.


들머리부터 베틀바위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그리 된비알은 아니어도 허벅지가 팍팍해질 만큼 가파르다. 대신 산자락 주변 풍경은 빼어나다. 집채만 한 바위와 중대폭포, 무릉계곡 일대에 펼쳐진 수직 암벽들이 번갈아 눈을 즐겁게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숲 곳곳에서 만나는 금강소나무다. 바위투성이의 척박하고 비탈진 공간에서 하늘을 향해 굵고 붉은 둥치를 힘차게 뻗었다. 솜씨 좋은 조경 장인이 공들여 안배한 풍경을 보는 듯하다.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이들이 그랬듯, 나중에 걷게 될 이들 역시 자연스레 이를 느끼게 되지 싶다.


베틀바위 바로 아래엔 회양목 군락지가 있다. 안내판은 “비바람이 치는 황량한 토양 아래 10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라고 적고 있다. 보잘것없는 관목이긴 해도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꽃받침이 없는 ‘안갖춘꽃’인 데다 모양새도 볼품이 없어 늘 사람들의 시선 밖에 머무는 꽃이다. 한데 향기는 짙다. 안내판에 따르면 “사람에게 기운을 돋우고 마음의 상처, 관절의 통증을 없애” 준단다. 아쉽게도 이번 여정에선 회양목 꽃과 만나는 행운은 없었다. 혹시 4월 어느 따뜻한 날에 베틀바위를 찾아 회양목 꽃향기를 맡게 되거들랑,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고 여기시길.


전망대 바로 아래는 계단이다. 베틀바위 탐방을 가능하게 해 준 고마운 계단이지만 뜻밖에 탐방객들은 불만이 많다. 계단 사이의 단차가 너무 커서다. 보통의 계단보다 두 배 정도 높아 오르려면 곱절 이상의 힘을 쏟아야 한다. 무릎이 불편한 이들에겐 그야말로 공포다. 온라인 공간에서 “(다리가 긴) 러시아 사람들을 데리고 공사했나”라는 비아냥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전망대다. 베틀바위의 위용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유되는 베틀바위 사진들의 거의 대다수가 이 자리에서 촬영된 것이다.

금강소나무 어울려 ‘자체발광’… 김시습 글귀 남은 무릉계곡

베틀바위의 자태는 그야말로 빼어나다. 장비의 장팔사모,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닮은 뾰족한 바위들이 들쑥날쑥 이어져 있다. 하나처럼 보이기도 하고, 베틀 위의 실처럼 한 올 한 올 서로 다른 바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오래전 어느 날 지각이 융기했고,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풍화와 차별 침식을 거쳐 저 형태를 갖게 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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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반석 위에 쓰인 암각서. 문외한이 보더라도 명필의 솜씨란 걸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전망대의 자태도 훌륭하다. 베틀바위에 가려져 있을 뿐,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자체발광’의 경승이란 걸 알게 된다. 긴긴 풍화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 모난 곳 없이 깎인 크고 순한 바위들이 다양한 형태의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있다. 잘 정돈된 분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전망대에서 ‘계단’을 하나 더 오르면 베틀바위 정상부다. 난데없이 바위 하나가 솟아 있다. 이른바 미륵바위다. 보는 각도에 따라 선비, 부엉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바위다. 미륵바위에서 절벽 끝쪽으로 다가서면 둥근 암릉이 나온다. 멀리 짙푸른 동해까지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 전망대다.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발걸음을 돌리면 된다. 좀더 등산을 즐기겠다면 두타산성을 거쳐 옥류동으로 내려서거나, 박달계곡과 용추폭포까지 돌아본 뒤 하산할 수도 있다. 들머리에서 베틀바위전망대까지는 1.5㎞다. 편도 1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사진 촬영은 오전보다 오후 시간대를 권한다. 오전엔 역광이거나 일부 봉우리에만 볕이 드는 등 노출 차이가 심하다. 바위 봉우리 촬영엔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외려 낫다.


베틀바위 들머리의 무릉계곡에도 볼거리가 많다. 계곡 초입의 무릉반석이 인상적이다. 수백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을 만큼 넓다. 바위 위엔 여러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국충정의 결사체에 가입한 선비들의 이름도 있고, 매월당 김시습의 글씨도 있다. 무엇보다 도드라진 건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이라 쓰인 암각서다. `신선이 놀던 별유천지/물과 돌이 어울려 잉태한 자연/번뇌 사라진 정토’ 정도로 해석되는 어휘다. 글씨체가 꼭 솔기 없이 하늘대는 신선, 선녀의 옷자락을 보는 듯하다. 무릉반석 위는 삼화사다. 본전에 모셔진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1292호), 삼층석탑(보물 1277호) 등 볼거리가 있다.


글 사진 동해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21.03.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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