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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1만 시간의 법칙 #4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by은서율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최고는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의 수다이고, 그 다음으로 효과가 좋은 것은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서 야근과 야근 속에 시들어가는 친구와의 약속은 번번이 무산되기 마련. 오늘도 갑작스레 결정된 친구의 야근 덕분에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면서 두 사람 모두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던 그 시절을 그리운 마음으로 떠올려 보았다. 오늘의 1시간은 자유롭고 즐거운 식도락 여행기로 보내보자.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Fumi Yoshinaga /서울문화사

BL 만화가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의 즐거운 일상들로 가득 차 있는 맛집 순례 만화 에세이, 그게 바로 이 책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일본의 맛집을 소재로 한 이 책은 만화가인 Y나가(요시나가, 이하 Y나가)의 일상,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 그리고 숨겨진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요리 만화처럼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만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독한 미식가」처럼 구석구석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맛집을 소개하는 가이드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매일매일 원고를 그리고 마감을 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Y나가가 자신만의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그녀의 진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우와 맛있겠다 하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역시 필력이 좋은 작가라서 전달력이 남다른 것일까.

평범한 일상 속에 빛나는 식도락가의 이야기

어떻게 그렇게 맛집을 많이 알아? 라는 친구의 질문에, Y나가는 “난 일할 때와 잘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먹는 것만 생각하고 사니까, 내 인생을 바친 대가로 먹을 것도 나한테 조금은 보답해주어도 좋다고 생각해” 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게 바로 Y나가의 매력이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 “여럿이 가면 다양한 요리를 전부 먹을 수 있으니 좋지” 라면서 음식 선택권을 독점하지만 이것 또한 맛있게 먹기 위한 것. 먹는 것 앞에서는 평소의 허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진지해지는 이 반전이 이야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Fumi Yoshinaga /서울문화사

게다가 그녀의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살 만한 것들뿐이다. 맛집을 취재하겠다고 갔으면서 먹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자료용 사진을 찍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 먹고 난 후의 처참한 잔해만 찍는다든가, 이런 저런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안 먹던 식재료인데 먹어보니 의외로 괜찮았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맞아 맞아 나도 저런 적이 있었어”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Y나가와 어울리는 친구 중 평범한 사람은 없다. ‘나이를 먹고도 둘 다 솔로라면 결혼하자’ 라는 말을 하고 있으나 서로를 알면 알 수록 점점 더 결혼하고 싶지 않는 상대인 어시스턴트 후배 S하라, Y나가가 엄청 좋아하는 통통한 몸매의 소유자이며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라면 아주머니들이 북적이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들어가서 혼자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강심장을 지닌 F야마, 대식가답게 거대한 몸매를 자랑해서 별명이 미국차(연비가 나쁘다는 의미)로 불리는 친구 O다 등등.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자랑하는 친구들 덕분에 그녀의 식도락 라이프는 평범하게 맛있는 것을 먹는 이야기의 수준을 넘어 웬만한 개그만화 못지 않는 재미를 준다. 그런 이유로 처음 이 만화를 볼 때는 Y나가가 가장 특이한 인물이 아닐까 싶은데, 책에 빠져들수록 Y나가야 말로 평범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Fumi Yoshinaga /서울문화사

그녀의 무서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도 그녀의 친구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 이 책을 읽다 보면 나 역시 Y나가와 함께 그녀가 소개하는 맛집에서 음식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먹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그녀가 소개하는 곳이 가보고 싶어진다. 왠지 꼭 먹어봐야 할 것 같달까. 


1권이 나온 지 꽤 되었으니 그 동안 새로 알게 된 맛집으로 2권을 내주면 참 좋겠는데, 그 사이에 수많은 먹거리 소재의 만화들이 나왔고 요즘은 이렇게 개인적인 맛집을 소개하기보다는 검증된 맛집을 소개하거나 아니면 직접 해먹을 수 있는 요리법을 소개한 만화들로 유행 코드가 바뀌었으니 아쉽지만 2권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동안 소개되었던 어떤 책과도 다른, 그녀와 함께 맛집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책만의 매력을 따라올 작품은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책장을 덮고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해봐야겠다. 이번에는 둘만의 즐거운 식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