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를 잊을 수 없는 이유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

Movie Savoury Gourmet : 영화 향신료 맛집 #2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아무렇게나 쉽게 막 던지는 건 우리나라 어른들의 ________에서 비롯 된 것일게다. 다음의 보기에서 ________에 들어갈 답을 골라보라.

 

가. 주입식 참교육을 하려는 의도

나. 내 아이 / 내 친척 꼬맹이라면 반드시 뭔가 될 성 부른 나무일꺼라는 헛된 기대

다. 앞으로 험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으니 미리 단단히 준비해놓는 것이 좋을 거다라는 선험자의 경고.

라. 알게 될 거다. 지금 생각이 언젠가는 달라질 거란걸, 이라는 뉘앙스의 철학문제.

마. 강한 암시를 주면 무의식이 목표를 성취할 거라는 시크릿적 신념.

 

그러고보니 이상하다. 나는 ‘과학자’ 이거나 ‘대통령’ 이 될 거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대답하면 어른들은 돈을 주곤 했다. 내 인생의 정답을 맞춘 상금이라도 되었던 걸까?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는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한 명은 미래의 앵커맨. 또 한 명은 미래의 기자. 한 명은 미래의 피디. 시작부터 이 답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겠다는 듯, 이 꼬맹이들의 행동에는 남다른 부분이 있다. 이런 수준의 영재가 아니라면 공부따윈 시키지 맛.

 

제인 크레이그는 뉴스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이다. 큰 건 하나 할 때마다 번 아웃 증후군에 시달릴 정도로 자신을 일 속으로 몰아붙이는 말 그대로 열혈근성의 소유자. 반면, 자연인으로서 로맨틱하고 소녀같은 귀여운 면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제인의 동료 기자 애런 알트먼. 제인의 근성이 실제 뉴스클립에서 빛을 발하는 건 실은 그 뒤에 애런이라는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위트 넘치고 스마트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꽤 괜찮은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하지. 알고보면 명문대 출신의 실력파. 

여기에 또 한 명. 앵커 탐 그루닉이 있다. 배경도 그럭저럭, 내세울 만한 프로필도 없지만, 생긴 건 꽤 그럴 듯하고 목소리도 멋진 남자다. 어울리지 않게 행동은 바보같아서 그게 호감을 산다. 원래 멋진 놈이 멋진 척하면 좀 보기 싫잖아. 연예인도 허당처럼 보이는게 인기잖아, 요즘은.

 

영화는 방송국이라는 세계를 가볍게 묘사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수 많은 파트가 있어서 각자가 자기의 영역 안에서 맡은 일을 해낸다. 그것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실수없이 방송에 뉴스를 내보낼 수 있다. 평가는 그 뒤의 몫이란 걸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그 영화를 잊을 수 없는 이유 영화

여의도에 방송국이 있던 시절, 퀵서비스들은 부지런히 녹화테입을 전달하곤 했다. 상암동으로 대부분 시설이 옮긴 지금,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나지 않을까.

제인이 필요로 하는 그 순간이면 어김없이 도움을 주는 애런. 제인이 프로듀싱한 뉴스는 깊은 임팩트를 준다고 평가하는 상사들. 그들에게 제인은 애런이 기여했음 알린다. 애런은 사실 기자보다는 앵커에 뜻이 있다. 그런 그가 제인 곁에 머무르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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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손석희가 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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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웃음을 번역기로 돌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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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웃는 거지 아마 ?

제인은 사실 첫눈에 탐에게 반했다. 처음 만난 날 그를 자기 호텔방으로 불러들였었는데, 그는 밀당하듯 가버렸다. 그게 그렇게 아쉬웠는데, 얼마 뒤 경력직으로 입사한 탐이 찾아온다. 거기까진 참 좋았는데, 어찌나 자신만만하게 들이대는지 밥맛이다. 잘 생긴 놈이 자뻑처럼 굴면 재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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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멍에회손 뉴스 있잖아요. 나이스 잡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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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 멍...에…회…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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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정말 뾰뵤뵹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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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뵤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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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뵤뵹? 쑝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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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어휘력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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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력에 단단히 빠진게 분명해. 쑝쑝!

뺀질대던 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뉴스 속보 상황에서 메인앵커가 휴가를 떠나고 없자 갑자기 앵커맨이란 중책을 맡게 된 것. 총책임을 맡은 제인은 당연히 애런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스는 속보임에도 임팩트있게 방송을 탄다. 그 중에서도 간판인 앵커맨 탐. 의외로 능숙해보인다. 탐이 읊은 멘트는 사실 애런이 제인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것도 집에서 뉴스를 보다가 전화로. 알잖아. 직장에서 빛을 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거.

이 세상 모든 회사, 학교, 병원, 군대, 또는 수영장 계모임 등 거기에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그 안에 잘나가는 사람, 못나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잘 나가는 사람을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알고있나? 못나가는 사람조차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걸. 일단 취직이 안되잖아.

 

학창 시절, 우리 반에서 공부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녀석이 있었다. 영어사전 한 권을 씹어먹었다던 그녀석. 유일한 약점이 체력이라 체육시간마다 숨을 헐떡거리며 뒤처지곤 했던 그 녀석은 지금 뭘 하면서 살고 있을까?

이제 와 그를 찾을 수는 없기에,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워본다. 나는 조금은 그를 부러워했기에, 대략 나의 어린 시절과 반대로만 갔다면 그의 인생에 근접한 삶이 될 거란 가정을 해본다. 그런 무리수 있는 가정 아래, 나는 나의 과거를 돌아보기로 한다... 부끄럽지만. 

 

무려 ’과학자’ 와 무려 ’대통령’이 장래 희망이었던 나. 그는 대략 십 년 쯤 뒤에는 이상한 길에 빠져서 학교를 땡땡이치고 극장에서 도시락을 까먹곤 했는데, 본 영화를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다 보면 언제 어떤 대사가 나오는 지도 다 알게 되어, 문장의 뜻도 모르면서 영어문장을 중얼거리는 신기를 가질 지경이었다. 팝송 듣다 보면 뜻은 모르는데 발음은 저절로 외워지는 거랑 비슷하다. 안외워지면 한글로 연습장에 발음을 쓰곤 했징.


그런 경험으로 추측해 볼 때, 이런 결과가 도출한다. 녀석은 내가 풀지 못하고 좌절했던 수학문제를 내가 반복해서 본 영화의 횟수만큼이나 반복해서 푼다. 그리고 외운다. 뜻도 모르면서. 그러다 보면 웬만한 문제는 다 외워서 풀게 된다. 수학을 외우니 영어도 외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암기과목은 원래 외우는 과목이기때문에 그냥 외울 것이고, 그러다보니 모든 과목을 다 외우게 되어 남들이 우러러보는 대학의 꽃중의 꽃과 같은 전공과목에 모두가 우러러보는 성적으로 합격한다... 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인생이다. 심지어 인물도 빠지지 않아, 이 녀석은. 나와 반대니까. 분명 소개팅 나가면 잘 됐을 거야. 와, 나 지금 부러워하는 거야?

 

능력을 인정받은 탐은 연속해서 크게 한 방을 터트린다. 데이트 폭력 date rape 의 피해자 여성을 인터뷰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탐. 차가운 뉴스 진행자의 임무보다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공감하는 그의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그의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탐에게 정이 떨어졌던 제인조차도.

 

자연스럽게도 애런은 탐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와, 지금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실은 애런은 제인을 사랑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영화를 잊을 수 없는 이유 영화

제인의 눈빛이 쑝쑝하다. 사내연애란 달달한 것.

그 영화를 잊을 수 없는 이유 영화

사실은 뒤에 들어갈 말은 각자 알아서 생각할 것. 애런에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나. 너도 이 맘 안다면 우린 초면이라도 웃을 수 있어.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토록 앉고 싶었던 앵커맨의 자리. 애런에게도 기회가 온다. 그가 쓴 원고는 예술이다 .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시그널만 들어오면 탐 따위는 우습게 만들어버리리라. 놀던 가락이 있지. 오래전 싸이의 가요톱텐 1위 소감이다.

그 놈의 땀 때문이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같은 반 ‘그 녀석’ 과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우리 둘 사이엔 서로를 이어주는 관계라고 할 만한 끈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그가 졸업한 뒤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훗날 동창들로부터 우연히 그 녀석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엄청난 암기력을 가진 그 녀석에게도 ’모두가 우러러 보는 학교’에 ‘꽃 중의 꽃과 같은 전공’으로 입학하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나보다. 우리 같으면 아주 만족할 대학에 들어가더니, 거기서도 다시 공부해서 기어코 그 대학, 그 전공학과에 들어갔다. 거기에만 3년이 걸렸다. 나였다면 여기서 공부는 그만. 

그 녀석은 달랐다. 그 뒤의 코스로 알려지는 사법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그 녀석은 이십 대의 대부분을 공부만 하며 보냈다. 그리고 몇 년 뒤, 고시에 실패하고 군대에 갔다는 소식. 결국 제대하고 공기업에 취직했다는 소식.

 

그 소식을 접했던 당시 나는 내 커리어에서 자신만만했던 길을 가고 있던지라, 그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었다. 오히려 내가 그런 모범답안 같은 코스를 추구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항상 순탄한 길만 걸을 순 없지. 그게 인생이야. 인생은 공평해.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서 다행이야. 공부만 하면서 청춘을 허비하진 않았으니까. 이렇게 쉽게 단정 지어버리듯 생각한 것이다.

 

정리해고의 광풍이 불었다. 어설프게 제인에게 사랑을 고백한 애런은 승진제의를 받지만 거절하고 퇴직한다. 기자로 남기 싫은 탓이다. 멋진 녀석. 탐은 해외로 발령받았다. 제인은 승진했지만 정든 동료들이 회사를 떠난 여파로 업무에 바로 복귀할 수 없다. 이젠 제인의 마음을 차지한 탐이 낭만적인 제안을 한다. 함께 섬으로 휴가를 가자. 내일 가는 거야. 다 가진 놈 같으니. 와, 나 지금 부러워하는거야? 

그 인터뷰 때 카메라는 한 대였어.

질투라도 하는 것일까, 애런이 제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꼭 그렇게 들렸다. 나는 왜 애런의 입장에 공감할 수 밖에 없나. 질투라고 쳐도 애런은 좋은 친구였지. 애런의 말대로 제인은 탐을 유명하게 만든 바로 그 인터뷰의 촬영 원본 테입을 돌려본다. 

애런이 옳았다. 탐이 뉴스에서 흘린 눈물은 진짜가 편집에 의한 트릭이었음이 드러난다. 자연인으로서 탐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제인이지만 언론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행동. 무엇이 진짜 탐인가? 제인은 밤새 잠 못이룬다. 다음날 공항에서 탐을 만난 제인. 탐의 가면을 똑바로 보게 된다.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로부터 7년 뒤.영화의 끝은 맨 처음, 자신만만했던 어린 시절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변한 셋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더라도 다들 행복해보인다. 탐은 예정된 코스였던 런던 특파원 마치고 잘나가는 앵커가 되어있다. 애런에겐 사랑스런 아들이 생겼다. 여전히 변치 않는 모습이다. 제인은 여전히 일에 빠진 삶을 살고 있다. 다행이도 그녀를 이해해주는 맘 씨 넓은 남친이 있다.

모처럼 만나 담소를 나누는 셋의 모습을 비추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세 사람은 화면 속에서 점점 작아지며 멀어진다. 인생은 모두에게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잘 나가건 기회를 잡지 못했건 때론 여전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건.

 

다시 현실.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공기업에 들어갔다는 ‘그 녀석’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1남 1녀다. 첫째는 공부를 곧잘한다. 둘째는 아이돌이 꿈이라 지금부터 발레를 배우고 있다. 팔다리를 죽죽 늘려야 연습생 오디션에서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초등학교를 마치자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다. 앞으로 자기처럼 영어사전을 씹어먹을 일은 없을 거다.

아내가 첫 째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같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녀석’은 기러기 부부가 되었다. 둘째는 유명 기획사의 연습생이 되어 합숙 생활을 하고 있다. 본의아니게 싱글라이프를 살고 있는 ‘그 녀석’.  그나마 다행이다. 주말엔 딸을 만나 아이스크림도 먹고 사진도 찍어서 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가족이 컴퓨터 앞에 앉아 화상채팅을 하면 ‘그 녀석’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기 위해, 탐처럼 자신을 속여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을 던져본다.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오른다는 건 실로 어렵고, 꾸준히 그 자리를 유지한다는 건 더욱 어렵다. 실제로 탐과 같은 사람을 종종 보았고, 나도 그렇게 할 기회를 가졌었지만 난 이상하게도 애런처럼 행동했다. 땀이 많아서그래, 나는.

탐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내 삶을 살진 않겠지. 혹은 그랬다면, 그 뒤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다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선을 넘으면 그리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나인 삶을 살아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는 유쾌하고 사랑스럽고 똑똑하며 씁쓸하다. 안보셨던 분들은 시간되실 때 꼭 한 번 보시길 권한다. 

 

제인 : 홀리 헌터

탐 : 윌리엄 허트

애런 : 앨버트 브룩스

각본 / 감독 : 제임스 L. 브룩스

 

P.S

‘그 녀석’에게.

미안해. 공기업에 들어간 이후의 너의 삶은 나의 추측이었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추측해서 미안해. 그런데, 실은 좀 부럽기도 하고...

아무래도 공기업이니까... 게다가 딸이 아이돌이잖아...

201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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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RÉ 슈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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