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다, 그 시절의 액션 – 장클로드 반담과 "킥복서"
장클로드 반담의 '킥복서'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닙니다. 그 시절 무술이 하나의 문화였던 시기, 함께 아파하고 함께 수련했던 감정의 영화. 반담 액션의 진심이 그리운 당신에게 바칩니다.
-무술, 하나의 ‘문화’였던 시절, 우리는 왜 반담을 사랑했나-진짜 아프겠다가 아니라, '같이 아프다.' 반담 액션의 체감성
지금 다시 봐도, 장클로드 반담의 영화 <킥복서: 어벤져>는 재미있다. 물론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감정 이입과 몰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불끈불끈’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된다.
영화 <킥복서: 어벤져>는 1989년 9월 9일 개봉된 마크 디설, 데이비스 워스 감독의 작품으로, 이미 35년이 넘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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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클로드 반담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가 액션 배우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출연진으로 장클로드 반담 주연, 데니스 알렉시오, 진국신, 미셀 퀴시 등이 출연했으며, 네티즌 평점 8.59점, 런닝타음은 96분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액션 영화 중 한 편이다.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형의 복수를 위해 무에타이를 배우고, 훈련 끝에 최종 보스를 쓰러뜨린다. 하지만 이 단순한 서사는 오히려 액션 영화만의 원초적인 매력을 일깨운다. ‘불끈불끈’하게 만드는 감성. 요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 이 영화에는 그런 원초적인 감성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이미 빠져든다” <킥복서> 인트로에 담긴 감성
<킥복서>의 인트로는 잘 찍었다. 화려한 액션도, 복잡한 대사도 없지만, 보는 사람을 단숨에 영화 속, 그 세계 안으로 끌어들일 만큼 잘 만들었다.
태국에 막 도착한 커트와 에릭 형제가 이국적인 거리 풍경을 바라보고, 트럭과 리키쇼, 시장을 지나며 처음으로 현지의 공기를 마시는 순간. 그 순간 관객들도 함께 방콕에 도착한 것처럼 느껴진다.
![]() <킥복서>의 인트로 커트(반담)와 에릭 형제 |
마치 태국 관광을 하는 듯, 간접 체험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배경음악 “Feeling So Good Today”의 절묘한 조화가 그 장면을 더 빛나게 만든다.
CG도 없고, 이미 35년이나 지난 영화의 인트로 장면으로, 촬영 기법 단순하고, 음악도, 구도도 복고적이지만 묘하게 세련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시절 우리가 처음 외국 영화를 통해 보던 ‘낯선 세계를 느꼈던 감성’, 그때 느꼈던 이국의 낭만과 설렘이 되살아난다.
이건 단지 잘 만든 오프닝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에게는 ‘기억의 문’을 여는 인트로다.
복수가 시작되기 전부터 '감성으로 빨아들인다.'
영화 <킥복서>는 권선징악의 정말 뻔한 스토리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중간중간 담겨 있는 감성적인 요소들로 인해, 영화에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반담이 형의 복수를 위해 무에타이를 배우고 태국 오지에서 훈련을 시작할 때 처음 등장하는 ‘매’ 한 마리. 말도 안 되는 연출 같지만, 이상하게도 그 ‘매’에서 동양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 매와 조우하는 장면 |
고전적이지만 신화에 나올 듯한 ‘매’에게 선택받은 주인공, ‘자연의 힘을 받아들여 강해지는 주인공’이라는 감성. 다소 만화적이고 과장되어 있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함께 수련하게 되고,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영화 속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함께 성장하게 된다.
화려한 CG, 복잡한 세계관, 반전과 복잡한 서사로 무장한 요즘 액션 영화와 비교하면 <킥복서>는 단순하다.
![]() <킥복서> 수련중인 커트(장클로드 반담) |
하지만 관객들은 이런 단순함을 통해,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들어가 버린다.” 주인공과 훈련을 통해 성장해나가고, 결국 복수를 성공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함께 싸운 자의 감성’을 느끼게 된다.
<킥복서>는 현실적이지 않지만, 감정적으로는 진심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계속 회자되고, 리메이크되고, 흥미로운 이유다.
장클로드 반담과 '다리찢기'가 만든 상징
1989년의 <킥복서>는 단순한 복수극의 영화가 아니었다. 장클로드 반담이라는 배우가 어떤 스타일의 액션을 보여주는지를 세계에 알린 영화였으며, 무술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아이콘이었다.
<킥복서>에서 보여준 그의 공중 양발차기와 그의 시그니처 기술인 다리찢기식 옆차기, 일명 ‘하늘 옆차기’, 그것은 단순한 한 장면이 아니었다.
![]() 다리찢기식 옆차기, 일명 ‘하늘 옆차기’ |
그 장면은 세대의 감수성, 그리고 한 시대가 무술을 대했던 방식을 상징하는 문화적 요소였다.
요즘 현 시대의 무술, 격투기는 권투, UFC처럼 ‘링 위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경기’나 호신술, 혹은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분화되었다. 하지만 1970~80년대에는 무술 그 자체가 삶의 태도였고 ‘청춘의 이상’이었다. 폼을 잡고, 도복을 자랑하듯 한쪽 어깨에 보란 듯이 메고 다녔던 당시에는 ‘무술의 정신’이 ‘청춘의 철학’이었다.
이소룡에 열광했고, 성룡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장클로드 반담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이소룡을 따라하는 아이-오디션프로그램 |
그 시절 아이들(필자와 같은 또래들)은 영화 속 액션배우의 발차기를 따라 하며 놀았고, 무술 도장에서 주말을 보냈다. 액션 스타는 우상이었고, 그의 몸짓을 곧 '강함의 미학'으로 받아들였다.
영화를 통해서 ‘사람을 때리는 법보다, 참는 법’을 먼저 배웠고, ‘고수가 된다는 건, 크나큰 고통과 자신과의 싸움, 즉 자기 수양을 거쳐 바른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무술의 기본 가르침을 배웠다.
"'하늘 옆차기’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췄고, 그 회축 발차기는 예술처럼 보인다.”
<킥복서> 이후, 장클로드 반담의 하늘 옆차기와 양발차기는 전 세계 도장과 시범단, 태권도 군무로 퍼졌다. 사진 속에, 포스터 속에, 태권도 시범 영상 속에 그의 흔적이 남았다.
반담의 액션은 “멋있는 게 아니라, ‘멋지다!’” 그의 액션에는 선과 리듬의 미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반담의 양발차기 |
일명 ‘양발차기(다리찢기식 양발 옆차기)’는 공중에 점프 후, 순간적으로 다리를 찢듯이 양발을 힘차기 뻗는 발차기로, 찰나의 정지 후 착지하는 발차기 기술이다.
그것은 원래 있던 기술이었지만, 장클로드 반담이 그것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영화가 무술을 새롭게 조명했고, 사람들은 다시 그 무술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술의 효율성보다 기술이 주는 이미지의 힘을 통해 시각적 완성도를 높였고, 그는 조각 같은 근육질 몸매와 유연함을 통해 새로운 무술 퍼포먼스를 만들었고, 그의 액션 몸짓에서 비춰지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들이 ‘무술의 미학’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 공중 회축 발차기 장면 |
그의 공중 회축 발차기는 특히 압권이다. 공격하는 앞발만이 아니라 뒷다리까지 다리찢기를 하듯 펼쳐진 상태에서 회전한다. 그래서 단순한 발차기 동작이 아닌 예술처럼 보인다.
그것은 관객을 움직였고, 실전과는 다르게 ‘미학이 있는 멋진 발차기’로 기억되고 있다.
무술, 하나의 ‘문화’였던 시절, 우리는 왜 반담을 사랑했나
오늘날 무술 영화와 다른, 우리가 그 시절 무술 영화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시절 감성’에는 진심처럼 박혀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액션 영화는 더 화려하고 더 빠르다. 볼거리도 훨씬 많지만, <킥복서> 같은 영화에는 말도 안 되는 감성이 진심처럼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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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 뻔한 구조, 만화 같은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 영화와 함께 수련했고, 함께 복수했고, 함께 승리했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도장 벽에는 그 발차기 사진이 걸려 있고, 어떤 소년은 반담처럼 다리를 찢어보려 애쓴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직도, 그 ‘말도 안 되는 감성’이 그리워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형이 다쳤고, 동생이 무에타이를 배워 복수한다. 너무나 단순한 이야기지만, 이 단순함이 오히려 관객의 감정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현대 액션 영화들이 많은 걸 설명하려고 애쓸 때, <킥복서>는 오히려 설명을 덜어내고, 관객이 직접 ‘느끼게’ 만든다.
과도한 설정도, 복잡한 배경도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스스로 감정을 쌓고, 반담의 주먹과 발차기에 감정을 실어버린다.
진짜 아프겠다가 아니라, '같이 아프다.' 반담 액션의 체감성
요즘 액션은 빠르고 화려하다. “맞으면 아프겠다”는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반담의 액션은 결이 다르다. “진짜 아프겠다”가 아니라, “같이 아프다”는 느낌이 든다. 즉, 관찰자가 아니라 체감자가 된다.
![]() <킥복서> 결투장면 |
영화에서 보여주는 펀치 한 방 한 방이 무겁고, 감정이 담겨 있다. 발차기 하나에도 샌드백을 차듯 묵직한 충격이 담겨 있다.
이건 ‘속도’가 아니라 ‘무게감’으로 관객을 흔드는 방식이다. 견자단과 비교했을 때도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
견자단의 액션은 스피디하고, 정확한 타격을 하며, 상대를 여러 번 가격하며 리얼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반담은 단 한 방으로 상대를 무너뜨릴 것 같은, 진심을 담은 가격을 보여준다.
![]() 파워를 선보이는 액션. |
리듬이 아닌 혼신을 다하는 파워를, 중량과 연속이 아닌 집중을 선보이는 액션. 그것이 반담이 보여준 액션이었다.
이러한 반담의 액션은 야자나무를 부러뜨리는 발차기 수련 장면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특히 이 장면은 영화가 추구하는 액션의 진심과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반담이 발차기 수련을 하던 중, 발이 아프다며 스승에게 “내 발을 부러뜨리려고 하십니까?”라며 포기하려 하자, 스승은 형에 대한 복수심을 꺼내며 그의 감정을 흔든다.
![]() 야자나무를 부러뜨리는 발차기 수련 장면 |
이내 복수심과 분노에 휩싸인 반담은 고통을 잊은 듯 야자나무를 수십 번 걷어차며, 마침내 통나무가 부서지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건 단순한 훈련 장면이 아니었다. 통증의 의식이고, 몸과 마음이 바뀌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장면을 본 관객은 "와, 진짜 아프겠다"가 아니라, 자기 발을 움켜쥘 정도로 고통을 함께 느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보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버린다.
UFC도 없던 시절, 우리는 <킥복서>에 열광했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형을 불구로 만든 통포(악당)와의 1:1 대결 신에서는 마치 UFC를 보는 것처럼 리얼함이 묻어난다.
UFC가 없던 1989년 시대에, 마치 UFC를 보고 있는 것처럼, 라운드, 전략, 타격, 긴장감, 심판, 관중의 반응까지 한 편의 경기처럼 잘 녹아 있다.
![]() 통포(악당)와의 1:1 대결 신 |
반담은 그 싸움을 단순한 영화 장면이 아니라, 진짜 경기를 설계하듯 진지하게 연기한다. 그래서 지금 봐도, 진짜 경기장을 보는 듯한 현실감과 긴장감이 살아 있다.
단순함의 미덕,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킥복서>는 복잡하지 않다.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진부함을 가볍게, 솔직하게, 진심으로 밀고 나간다.
그리고 그 덕분에, 관객은 복잡한 감정 없이도 자연스럽게 집중하고 빠져든다.
만약 이 영화가 지금처럼 복잡한 배경과 반전, 메시지, 설정을 넣었다면, 이 순수한 몰입감은 오히려 사라졌을 것이다.
![]() 영화 <킥복서> |
<킥복서>는 지금 보면 단순하고 유치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엔 진짜 아픔, 진짜 싸움, 진짜 감정이 있다.
그건 액션 영화이면서도,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하는 드문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장클로드 반담의 발차기는 ‘폼’이 아니라 ‘진심’이었고, 그 액션의 무게는 지금도 가슴에 남는다.
<킥복서>는 멋있는 게 아니라, 멋진 영화다. 그게 <킥복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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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