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오름사랑 분투기①] '스물아홉 막내딸' 치매 아버지 간병에 뛰어들다

[라이프]by 더팩트

10년째 치매 아버지 간병 박채아 씨

곁에 계신 것 만으로도 감사한 하루

"어린시절 받았던 사랑 돌려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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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부모 곁을 딸들이 지킨다. 국내 등록된 가족요양보호사 10명 중 4명은 딸. 배우자와 아들, 며느리 비중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개인의 안락함을 뒤로 하고 내리사랑을 오름사랑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무거운 짐은 온전히 그들만의 몫. <더팩트>는 어버이날과 가정의달을 맞아 부모 간병을 전담하는 딸들의 삶을 3회에 걸쳐 들여다봤다. 이제 사회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다. 첫번째 순서는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10년째 돌보는 막내딸 박채아 씨의 이야기다.<편집자주>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슬프고도 가혹한 '아홉수'였다. 내 나이 스물아홉.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마주했다.


처음엔 열쇠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요즘 건망증이 심해졌나 보다'라며 무심히 넘겼지만, 점차 아버지 연락은 늘어났다.


"내가 집에 물을 틀어놓고 온 것 같아."


"창문을 열고 그냥 나온 것 같다. 집에 가서 확인 좀 해볼래?"


그때까지도 이상한 걸 몰랐다. 명절 연휴,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언니는 "너희 아버지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아무래도 치매 같은데 병원에 모시고 가봐"라고 말했다. '설마, 아니겠지' 스스로를 달랬지만, 아버지는 초기치매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아버지랑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겠다고 했는데 그런 걸 다 미루고 일에 전념했거든요. 허무했어요. 돈 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었어요. 세상에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스러웠어요."


어머니는 오래 전 아버지와 헤어졌다. 언니들은 형편상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스물아홉 막내딸은 아버지를 품에 안았다.


박채아(39) 씨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10년째 보살핀다. 어느덧 아버지는 치매 중기를 지나고 있다. 일상의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없는 상태다. 빨래, 밥하기, 청소, 설거지, 아버지 씻기기에 회사 업무까지. 채아 씨는 가끔 몸이 두 개였으면 싶다.


그래도 묵묵히 아버지의 손발이 된다. 채아 씨는 "어린 시절 받았던 사랑을 이제 돌려드린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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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치매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고 한다. 몸보다 더 힘든 건 아버지가 때때로 나를 기억 못할 때다. 자신이 결혼했었다는 사실도 잊으면서, 당연하게 딸들의 존재까지 흐려졌다. 증상이 심해지기 전 아버지가 썼던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딸들아, 미안하다. 내 정신이 왜 이럴까.'


'내가 나이 들어서 애들에게 짐이 돼선 안 되는데.'


때때로 옭아매는 죄책감도 채아 씨를 힘들게 한다. 2~3년 전 너무 힘들어서 아버지를 잠시 요양원에 모셨던 일은 응어리로 남았다. 채아 씨는 "급격하게 몸이 안 좋아져서 다시 집으로 모셔 왔다. 약물을 과다 복용시키거나 협의 없이 약을 바꾸는 등 마찰이 있었다"며 "내가 직접 케어했다면 더욱 건강했을 텐데, 치매가 더 늦게 진행됐을 텐데 후회가 많이 든다"고 언급했다.


만만치 않은 간병 비용도 부담이다. 돈을 벌면서 간병까지 해야 하니 개인 시간이 없다. 채아 씨는 "솔직히 많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말했다.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고, 휴식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10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결혼 적령기도 놓쳤다.


"연애는 꿈도 못 꿔요. 시간적 부담이 있어요. 만약 결혼한다면 아버지를 돌보는 게 소홀해질까 봐 그런 부담감도 크죠."


1년 전, 채아 씨는 '아빠와 나'라는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일상부터 치매 환자 간병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한다. 간병 초기 때때로 생기는 돌발상황에 힘들어했던 기억 때문이다. 10년이 되다 보니 이제 채아 씨는 치매 환자 관리를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이다. 채아 씨는 "영상을 만들어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정보를 나눠주고, 소통해야겠다 싶어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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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채아 씨의 가슴은 더욱 아린다. 홀로 세 딸을 키우던 아버지는 생업에 지칠 법도 하지만 주말마다 딸들과 소풍을 갔다. 30년 전 아버지 손을 꼭 잡고 갔던 여의도 벚꽃축제 기억이 생생하다. 벚꽃이 질 땐, 그 시절 젊었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어버이날. 채아 씨에겐 큰 의미는 없다. 아버지가 기억을 못 하신다. 그래도 "내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하루가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제 인생을 만들어 주신 분이잖아요.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아요. 올해 어버이날엔 아버지와 마주 보고, 집에서 식사하려고요. 내 힘이 닿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모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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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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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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