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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여름이 도망간다는 소문

연희문학창작촌
8월 연희목요낭독극장

by디아티스트매거진

연희문학창작촌 8월 연희목요낭독극장

연희문학창작촌 입구

긴 폭염이었다. 긴 폭염에 지쳐있을 때 어디선가 여름이 도망간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여름이 도망간다는 소문이라니, 도대체 어떤 얘기일까 궁금해 그 소문이 시작되었다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연희동의 대로를 따라 걷다가 어느 길목에 들어서면 마치 9와 3/4 승강장을 통과한 것처럼 마법같은 곳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희문학창작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곳은 문인이 거주하며 글을 쓰는 곳이기도 하고 글 냄새를 맡고 싶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8월 13일의 목요일, 연희문학창작촌 야외 무대 ‘열림’에서는 연희목요낭독극장이 열렸다. <여름이 도망간다는 소문>을 들려주려 네 명의 시인들과 한 분의 여행 기자, 그리고 서울튜티앙상블이 모였다.

연희문학창작촌 8월 연희목요낭독극장

연희목요낭독극장. 좌측부터 박준, 김소연, 신해욱, 이우성 시인

프로그램은 고의석(기타), 김유리(바이올린), 김상호(첼로), 권병호(멀티악기) 씨가 함께 한 아름다운 연주로 막을 열었다. 영화 여인의 향기 OST로 알려진 곡 포르 우나 카베자(Por Una Cabeza)의 선율이 아직 채 마르지 않았을 때 박준, 김소연, 신해욱 시인이 무대 위로 차례로 나와 시 낭송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낭송과 함께 이우성 시인의 사회로 시와 여름에 대한 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박준 시인은 <처서>, 김소연 시인은 <그래서>, 신해욱 시인은 <말복만찬>이라는 시를 각각 낭송했고, 시인들은 왜 이 시들을 골랐으며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준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루로 나와 앉은 당신과 나는/희고 붉고 검고 하던 그 옷들의 색을/눈에 넣으며 여름의 끝을 보냈다”(박준, <처서> 중)라는 구절을 썼다고 한 것처럼, 이 날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은 무대 안팎에서 펼쳐지는 색을 눈에 넣으며 여름의 끝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튜티앙상블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양일모 테너도 나와 <넬라 판타지아>(엔니오 모리꼬네 작곡) 등의 멋진 곡들을 들려주었다. 고의석 기타리스트는 연희문학창작촌의 저녁에 어울릴 만한 곡을 가져왔다며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 가의 몰락>을 모티프로 작곡된 곡 <어셔 왈츠>(코시킨 작곡)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우성 시인의 말처럼 그 선율이 눈 앞에 보일 듯했던, 여름 저녁을 가득 채우는 음악이었다. 모기들이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 사이를 쏘다녔지만, 그 순간 속에서 모기 정도야 아주 작은 성가심에 불과했다.

 

다음 순서에는 류진 여행기자가 함께 자리하여 시인들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렇다 할 여름 휴가를 가지 못했으면 어떠리,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온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면 말이다. 여행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시를 짓는 이들의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그녀는 자신에게 익숙한 삶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올 수 있는 것이 여행의 큰 매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소연 시인이 낭독한 글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의 제목처럼 여행은 낯선 곳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낯선 나를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희문학창작촌 8월 연희목요낭독극장

연희목요낭독극장. 좌측부터 권병호, 김유리, 고의석 연주자

이 한 여름 저녁의 짧은 여행은 다시 서울튜티앙상블의 멋진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차이코프스키의 <야상곡> 제4번, 시크릿 가든의 <유 레이즈 미 업>, 몬티의 <짜르다쉬> 그리고 앵콜곡까지 연주가 이어졌다. 어느새 해는 넘어간 지 오래. 연희동은 음악 소리로 가득 차고 있는데, 어둑한 밤하늘은 수시로 번쩍였다. 마른 번개였다. 어쩐지 이 작은 공연장을 위해 밤하늘마저 무대 장치가 되어 준 것만 같았다.

 

문학 냄새를 맡고 싶을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신기한 곳에 다녀오고 싶을 때, 연희동으로 산책 나가기를 추천한다. 연희목요낭독극장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연희문학창작촌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디아티스트매거진=김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