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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전쟁의 미학 그리고 밥 딜런Bob Dylan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가는 길

by디아티스트매거진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주여,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옵소서)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임응식, '나목', 부산, 1953, 출처:구글이미지

임응식의 <나목>은 전쟁을 겪은 소년을 찍은 사진작품이다. 그는 사진 영역을 예술로 이끈 한국 현대 사진사의 선구자로 추앙받는다. 그의 작품을 보면 전쟁으로 인한 스산한 민족의 아픔을 사진 한 컷에 응축시켰다. 그래서 그를 두고 '영상시인'이라고 부른다.

 

전쟁을 미(美)로 기술하는 것이 타당할까? 미학에서는 미의 체험을 두 가지로 나눈다. 첫 째는 아름다움(Beauty)이고 두 번째는 숭고함(Sublime)이다. 형태와 비율, 색감 등이 알맞고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 곧 ‘쾌’를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첫 번째의 미적체험에 해당된다. 반변에 광활한 우주, 대양, 자연재해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충격, 공포, 압도감은 ‘숭고미’에 해당된다.

 

전쟁은 현대문명의 파괴력, 폭력성, 기계화, 속도화, 충격·공포를 '아름다움'으로 간주 할 때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낸 현상이다. 미술평론가 진중권의 저서 『레퀴엠』(2003, 휴머니스트)에 따르면  ‘전쟁의 미학’은 전쟁의 잔혹성 그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간주하는 파시스트 미학 혹은 전쟁이라는 현상을 미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태도로 설명될 수 있다.

 

다음은 '전쟁의 미학'을 잘 표현하고 있는 -발터 벤야민이 어느 유명한 논문에서 인용한- 미래파 예술가 마리네티(Marinetti)의 선언문이다.

“전쟁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전쟁은 방독면,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확성기, 화염방사기와 소형 탱크 등을 빌려 버림받은 기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굳건히 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전쟁은 꿈꾸어오던 인간 육체의 금속화 과정의 시대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전쟁은 꽃 피는 추원을 불꽃 튀는 기관총의 열대식물로써 다채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전쟁은 총탄의 포화와 대표의 폭음, 사격 뒤에 오는 휴식, 향기와 썩는 내가 나는 냄새 등을 합하여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전쟁은 대형 탱크, 기하학 무늬의 비행 편대, 불타는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나선형의 연기와 같은 새로운 건축 구조와 그 밖의 다른 건축 구조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미래파 시인들과 예술가들이여, 전쟁의 미학이 갖는 이러한 근본원리를 기억하라. 그리하여 새로운 시, 새로운 조형예술을 위한 그대들의 투쟁이 이들 전쟁 미학의 근본원리에 의해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를!”

 

-진중권, 『레퀴엠』, 2003, 휴머니스트, pp52-53

지금부터 20세기 중반, 우리화가들은 어떤 고민을 했고 한국적 서정을 담고자 했는지 알아보자.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이쾌대,'군상',1946, 출처:구글이미지

이쾌대,<군상>,1946은 좌절을 딛고 해방의 길로 들어선 민중을 표현. 시대정신을 담아낸다. 근육질의 군상들은 마치 19세기 낭만주의 들라크루아 또는 르네상스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이수억, '폐허된 서울', 출처:구글이미지

이수억, <폐허된 서울>은 건물 잔해 더미와 까마귀로 해방 후 한국의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김환기 '피난열차', 부산,1951, 출처:구글이미지

김환기 <피난열차>, 부산,1951 붉은 땅과 파란 하늘, 콩나물 시루처럼 피난민들을 실은 기차. 해방과 전쟁이라는 시대상을 그린 작품이다. 일제 말 추상미술에 경도된 화가가 한국의 현실을 회화의 소재로 삼았다.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대향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그림편지, 1954년, 종이에 유채, 출처:구글이미지

수 많은 가족을 생이별하게 만든 한반도의 비극 6.25전쟁, 이중섭 또한 이 전쟁의 피해자였다. 이중섭은 전쟁 중 미군함을 타고 부산-제주-통영 으로 피난을 다녔고, 그가 끔찍히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도피시켰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헤어진 후 끼니조차 챙기기 힘들었지만 그는 평생 붓을 꺾지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를 지탱해준 것은 '가족'이었고, 그의 그림의 주제 또한 '그리운 가족'이었다.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이중섬, '길 떠나는 가족', 1954, 출처:구글이미지

이중섭은 위 편지 삽화와 동일한 소재로 같은 시기 1954년 <길 떠나는 가족> 유화작품을 선보였다.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이중섭, '세 사람', 1942-1945, 출처:구글이미지

이중섭은 1940년대 후반, 연필소묘로 아이들의 생활상을 많이 그렸다. 일제 말기의 무기력한 아이들의 모습이 표현되었다. 이중섭은 연필 소묘를 통해 시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은박지에 그린 아이들은 이중섭의 가정사와도 연관되있는데, 첫째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감정이 담긴 것이다. 살아있는 두 명의 아들과 죽은 아들을 포함하여 세 명의 아이들이 그림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이중섭,'흰소',1954, 출처:구글이미지

이중섭의 감성, 시대적상황이 조선의 소 < 흰소>,1954에 집약되어 있다. 모필의 굵은 선, 검/흰선, 약간의 붉은 색, 바탕의 회색조: 힘들었던 시대감정이 불쑥 튀어나온듯한 걸작이다.

20세기 중반 한국미술의 서정: 피난

밥 딜런Bob Dylan, 미국 1941년 5월 24일생, 출처:구글이미지

미국의 유명 가수 밥 딜런Bob Dylan의 많은 명곡중에는 전쟁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노래가 있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은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노래이다. 전쟁터로 향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얼마나 많은 죽음이 더 있어야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게 될까?”, “보고도 못 본 척하기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여러번 고개를 돌려야 하나?”....... “친구여, 대답은 오직 바람만이 할 수 있다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

Yes,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Yes, how many years can a mountain exist

Before it's washed to the sea ?

Yes,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

Yes,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Pretending he just doesn't see ?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Yes,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Before he can see the sky ?

Yes,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

Yes,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상)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주여,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옵소서) 

누구의 영광을 위하여  기꺼히 목숨을 바치는가?

오늘도 정의라는 이름에 평화라는 이름에 종교라는 이름에 젊은이들의 무고한 목숨이 스러져간다.....

 

양효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