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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서로에게 스며든 안타까운 빛줄기

'화양연화'가 말하는 이별

by디아티스트매거진

'화양연화'가 말하는 이별

영화 '화양연화' 포스터

시간은 멈추듯 흐르고 그 속의 공기는 짙어진다. 오가는 말 소리 하나 없이 스치는 그들의 옷자락과 피부에서는 서로를 원하는 농밀한 감정을 뿜어낸다. 별 다른 표정들과 행동 없이 주모운(양조위)과 소려진(장만옥)은 그렇게 서로를 원하고 있었다.

 

사실 영화 ‘화양연화’는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옆 집에 사는 두 부부가 짝을 바꿔 옆집의 남편, 아내와 마음을 나누는 내용이 전부이다. 하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불륜이라는 생각은 보이지도 않게 저 멀리 밀어 놓은 채 주모운과 소려진의 품고 있는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들과 흘러가는 야속한 시간들을 안타까워 하게끔 한다. 그들이 서로를 스쳐가는 순간 나오는 영화의 ost ‘Yumejis theme’는 그 순간 그 장면을 보는 모두의 시간을 더더욱 느리고 무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화양연화'가 말하는 이별

주모운(왼쪽)과 소려진(오른쪽)

영화 ‘화양연화’는 확실한 리얼리즘 영화이다. 영화는 이상과 동떨어진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남녀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려진이 주모운에게 책을 빌리고, 서로의 집에 기웃기웃 거리며 회사로 몰래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기도 한다. 단순하게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닌, 이상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두 남녀를 현실에 가둬놓은 상태로 그들의 감정에 대한 한계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 보여졌다. ‘화양연화’에 나오는 장소들은 국한되어있다.

'화양연화'가 말하는 이별

영화'화양연화' 스틸컷

서로의 집 앞, 각자의 회사 그리고 주모운과 소려진이 스치는 좁은 골목. 이 속에서 그들은 스치고 부딪히고 서로를 원하게 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장소와 인물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또한 거의 마주보지도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주모운의 아내 그리고 소려진 남편의 얼굴은 앵글 자체에 들어오지도 않게 연출되었다. 앵글에 담긴 인물들의 수 또한 국한되게 보여줌으로써 주인공 남녀의 감정에 몰두하게끔 한다. 또한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굉장히 느리고 무겁다. 검정색 배경에 빨간 글씨로 되어있는 나레이션으로 처음과 끝을 구성하였고, 장면들이 넘어가는 구간들을 느린 디졸브 효과로 나타냄으로써 관객들이 보여진 장면들에서 느낀 감정을 보다 천천히 짙게 느낄 수 있도록 편집하였고, 이 부분은 ‘화양연화’에 관객들이 몰입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인간의 감정을 현실의 벽 사이에서 잘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과감하고 애틋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화양연화’를 가장 돋보이게 한 부분은 무표정한 배우들의 표정과 담담한 듯 애절한 그들의 대사였다. 스치기만 했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밥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는 소려진의 핸드백과 주모운의 넥타이였다. 각자의 배우자들이 서로 이상하다는 낌새로 각자의 배우자들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서로의 삶에 대해 결혼이라는 것과 연결 지어서 대화를 이어간다. 서로에 대한 동질감에서였는지, 그에 따라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였는지 그 둘의 감정 출발선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서로가 나눈 대화, 그 대사 속에 숨어있는 애틋함은 감추기 힘들었다

'화양연화'가 말하는 이별

영화'화양연화' 스틸컷

소려진이 말한다. “날 사랑했다는 말인가요?” 이에 주모운은 “나도 모르게..처음부터 그런 감정은 아니었소. 하지만 조금씩 바뀌어 갔소”

 

택시 속에서 손을 잡으려는 주모운의 손을 뿌리치던 소려진은, 그 다음 택시에 탄 장면에서 그 손을 맞잡게 되고, 몰래 서로의 집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어떤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장면들 없이 그들의 사랑이 짙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서로가 맞잡았던 손보다도 미리 이별연습을 해보자는 주모운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소려진의 모습이 훨씬 더 애틋하고 절망스럽게 보여졌다. 싱가폴로 긴 출장을 떠나게 되는 주모운과 소려진은 각자의 집을 떠나 이사를 가게 되고, 몰래 목소리를 들으려는 소려진의 전화는 더할 수 없이 안타깝게 느껴졌고, 그들이 이사를 가고 난 후의 러닝타임은, 더 이상 서로를 볼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절망적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화양연화'가 말하는 이별

영화'화양연화'속 소려진(장만옥)

'화양연화'가 말하는 이별

영화'화양연화'속 주모운(양조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처음과 수미상관을 이루며 끝이 난다. 검정색 배경에 빨간 글씨로 이렇게 써내려 간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영화 ‘화양연화’가 아직도 무엇을 위한 영화였는지 알 수 없다. 담담한 표현들과 무표정한 배우들은 남자와 여자의 감정 묘사라기 보다는 영화의 분위기를 표현해주는 정도의 용도로 쓰여진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빌려 표현했달까. 익숙하지 않은 ‘화양연화’의 이러한 연출은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심리에 대해 현실적이고 적절하게 전달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듯 하다.

'화양연화'가 말하는 이별

영화'화양연화' 서로 마주보는 주모운(양조위)과 소려진(장만옥)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주모운과 소려진의 가장 빛났던 순간은 서로가 서로의 삶 속에 그토록 조용하게 스며들어 무겁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자리잡았다. 서로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는 먼지가 쌓일 테지만 그 흔적은 변함없이 짙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이 그러했듯 우리들 또한 누군가의 삶 속에 짙고 중요하게 자리잡을 수 있길. 우리들의 화양연화 또한 애틋하고 아름답길 그렇게 바란다.

 

[디아티스트매거진= 박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