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뻑"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다: 예술가의 이유있는 오만함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자뻑"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다:

Self Portrait with Black Dog, Courbet, 1842-1844

이따금씩 그림을 그린다. 붓을 꺾고 대신에 펜을 든지 오래되었으나 그림이라는 것이 본래 중독성이 강해서 종종 금필(禁筆) 현상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신 안 보겠노라 호기롭게 절교선언한 후에 민망을 무릅쓰고 다시 빼꼼히 얼굴을 드미는 철없는 연인처럼, 새로운 다짐을 야무지게 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애정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다툼이 잦은 연인이 그렇듯 원망하고 실망하고 스스로를 채근하고 종국에는 친밀한 관계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누군가 그랬다. 예술가가 지녀야 할 자질 중에 으뜸은 “자뻑”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이토록 드는 좌절감은 지극히 낮은 자신감과 자기 불신에 기인하는 것일까? 천부적 재능의 결핍은 논외 하고서 말이다.

"자뻑"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다:

Salvador Dali, 1954

하기야 “자뻑”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스스로를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그의 기이한 언행과 거들먹거림은 초현실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앙드레 브르통이 절실히 지키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의 순수성과 엄격성에 반(反) 하는 것으로, 종국엔 브르통의 심기를 건드려 초현실주의 화단에서 제명을 당하고서도 의기소침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보란 듯이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맹렬히 비난하는 이념인- 자본주의와 파시즘을 찬양하며 피카소와 브르통에게 대섰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달리의 주목할 만한 자뻑은 그가 직접 지은 자신의 예명(藝名)에서 극명히 나타난다. 'Avida Dollars', 자신을 달러에 게걸들린 자라 불렀다. 돈과 직결되는 자신의 작업에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주변 예술가들이 품는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 따위는 모두 뒤로하고 자신이 불러들인 물질적 풍요를 즐겼다. 달리는 자신이 설정해 놓은 Avida Dollars라는 모습에 무척이나 당당했던 것이다.

"자뻑"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다:

Duchamp's pissoir

마르셀 뒤샹은 또 어떠한가. 남성 소변기를 전시장에 떡하니 세워두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길 “예술가가 선택한 오브제는 예술이 된다.”라고 하지 않았나. 그의 뻔뻔함이 아카데미 전통의 절대적 양식을 전복하고 예술의 정의를 다시 쓰게 했다. 그리고 뒤샹보다 더 뻔뻔한 앤디 워홀은 슈퍼에서 파는 브릴로 세제 박스를 잔뜩 쌓아놓고서 현대미술사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자뻑"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다:

Basket of Apples - Paul Cezanne

이뿐만이 아니다. 예술가들의 심지 있는 자뻑은 실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파리 미술대학 에꼴 데 보자르 입학시험에 세 번 낙방하고도 자신의 미적 재능을 의심치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려나간 세잔은 결국엔 입체파의 선구자가 되었고, 미술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비난과 야유를 받고 파리 살롱전에 낙선한 마네는 호기롭게 낙선전을 펼쳐 보임으로써 파리의 화단을 발칵 뒤집어 놓고 프랑스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오늘날 현대미술을 창시한 분수령으로 평가받는다.

"자뻑"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다:

Luncheon on the Grass, Manet, 1860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주문을 받고 그림을 그리면서 주문자의 요구 조건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그림을 완성시켜 결국 돈을 제대로 받지 못 했다. 작품 <야경>은 집단 초상화로 그림의 모델들이 각자 그림의 제작비를 지불하기로 했는데 작품이 완성됐을 때 어둠 속에 가려져 얼굴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은 불만을 품고 돈을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다. 돈을 따르지 않고 대중의 기호를 무시하고 화면 전체의 구도와 빛과 어둠의 대응으로 빚어지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킨 렘브란트는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

"자뻑"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다:

The Night Watch. Artist, Rembrandt

그런데 위대한 예술가들이 이토록 오만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작업의 최대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예술가들의 자뻑은 숱하게 받는 비난과 조롱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자뻑”이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를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갔다가 다시 되살리고 끝까지 붓을 놓지 않게 하는 힘이 되었으리라.

 

예술가 마크 로스코가 이런 말을 했다. “포기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변명 거리가 되지 못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운명을 두 눈 부릅뜨고 받아들이고, 희생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관련해서 어떤 자비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내 안에 몹시도 갈망하는 이것, 그러나 자꾸만 자취를 감춰버리는 이 연약한 것을 세상 제일 오만한 팔로 둘러쌓아 살뜰히 품고 보듬어야겠다.

 

[디아티스트매거진=양효주]

2017.02.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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