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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현대건축가시리즈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

by디아티스트매거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독일과 미국에서 살았던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이 시기에 서구를 휩쓸었던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다. 독일에서는 바우하우스의 학장으로, 미국에서는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의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모더니즘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그는 많은 추종자와 비판자를 낳았다. 말년에 많은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현대 도시를 삭막한 고층 빌딩으로 채우는 데 앞장선 주범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예컨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미스의 말에 로버트 벤투리는 “더 적은 것은 지루하다(Less is Bore).”라는 말로 반박했다. 더구나 미스는 말년에 스스로의 작품을 계속 복제하여 모든 건물들이 비슷비슷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미스 반 데어 로에

그러나 미스 건축의 진정한 의미는 그가 판박이처럼 자신의 작품을 복제했다는 실망감을 넘어서야만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동어 반복이 아니라 따뜻하고 아름다운 재료를 차갑고 깔끔한 구조와 완벽하게 조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었다. 역동적으로 흐르는 공간에서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까지,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건축에서 최고 경지에 이르기 위한 그칠 줄 모르는 노력이 미스의 위대한 건축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전통에서 모더니즘으로 옮겨 가다: 펄스 하우스, 우르비히 하우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도 태어날 때부터 모더니스트였던 것은 아니다. 그의 초기 건축들은 당시에 유행하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펄스 하우스(Haus Perls)와 우르비히 하우스(Haus Urbig)다. 특히 우르비히 하우스는 미스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더라면 모던한 스타일로 지어져야 했지만, 건축주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전통적인 박공지붕과 장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미스는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단순하고 비례감이 살아 있는 건물을 만들어서 자신의 스타일 역시 잘 표현해 냈다.

모더니즘이 꿈꾼 새로운 주거: 바이센호프 주택단지, 라피엣 파크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바이센호프 주택단지(출처:GHDI)

진보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미래의 건축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1927년에 독일공작연맹의 후원으로 완성된 바이센호프 주택단지(Weissenhofsiedlung)는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모여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주택 부족 현상을 해소하고 미래의 주거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미스가 기획하고 당대의 유명 건축가 38명이 참여한 바이센호프 주택단지 전시는 최초로 모던 건축이 한꺼번에 소개된 장으로,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모던 건축의 이론들이 하나의 양식으로 정리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로 1959년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진행된 라피엣 파크(Lafayette Park)는 바이센호프 주택단지와는 30여 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역시 주거에 대한 모더니즘의 이상을 표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넓은 녹지에 둘러싸인 고층 아파트에서 거주하게 하고 쾌적한 외부 공간에서 자연을 즐기게 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던 라피엣 파크 프로젝트는, 그러나 평가 면에서는 엇갈린다. 특히 유사한 도심 재개발 지역들이 슬럼화하는 등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면서 라피엣 파크 역시 같은 평가를 받았다. 휴먼 스케일(human scale, 인간의 몸을 기준으로 삼은 척도)과 동떨어진 초고층 대형 블록, 똑같은 형태가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집들을 도시에 계획한 모더니즘의 기획 자체가 실패했다고 여겨진 것이다. 더구나 건축가의 공공성과 개발업자의 이익은 항상 충돌을 일으켰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발업자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갈수록 쇠락해 가는 디트로이트 안에서 라피엣 파크는 인종적, 경제적으로 다양한 주거 블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재평가받고 있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빌라 투겐타트, 크라운 홀

미스는 1920년대부터 공간과 기능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나중에 자신의 건축에서 중심 주제로 삼은 ‘무한정 공간(universal space, 거대한 하나의 빈 공간)’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그는 건물의 기능과 공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동료 건축가들과 논쟁할 때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공간을 충분히 크게 만드세요. 당신은 정말로 그 공간이 어떻게 사용될지 확신하나요? 사람들이 그 공간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지, 우린 알 수 없어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빌라 투겐타트, 크라운 홀은 이러한 생각을 실제로 구현한 작품들이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은 1929년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의 독일관으로 지어진 것으로, 특별한 기능이 없었기에 미스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미스는 내부 공간에 X자 모양의 크롬 기둥 8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그 대신 벽을 자유롭게 배치했다. 이 덕분에 공간의 움직임이 강조되었고,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 사이에 자유롭고 역동적인 흐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빌라 투겐타트(Villa Tugendhat)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미스가 추구했던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실제 주거로 완성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엄청난 크기의 이 건물은 비탈면에 지어져서 도로에서는 단층처럼 보이지만(사실 이 층이 3층이다) 반대편의 정원에서 보면 3층으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의 핵심은 2층의 거실 공간으로, 이곳에는 값비싼 오닉스 도레로 만든 벽과 미스가 직접 디자인한 의자와 가구들이 놓여 있다. 특히 정원을 향해 있는 대형 유리창은 전동 기계 장치에 의해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는데, 덕분에 따뜻한 날씨에는 커다란 거실 공간을 외부 테라스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크라운 홀_일리노이,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 있는 크라운 홀(S. R. Crown Hall)은 미스가 ‘무한정 공간’이란 자신의 콘셉트를 더 적극적으로 실현해 낸 작품이다. 이 건물은 거대한 내부 공간에는 놀랍게도 기둥이 하나도 없으며 건물 외벽에만 기둥 8개가 있다. 미스는 이 건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만족감을 나타냈다. “우리가 이제껏 해 왔던 것들 중에서 가장 깨끗한 구조이고 우리의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한다.” 그러나 이 건물은 한쪽 수업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다른 쪽 수업이 방해를 받는다든지, 냉난방을 하는 데 비효율적일 정도로 공간이 지나치게 크다든지, 큰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수업하기가 어렵다든지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현대 도시의 경관을 만들다: 시그램 빌딩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시그램빌딩_뉴욕,미국

많은 추종자와 반대자를 만들어 냈던 미스의 건축을 가장 잘 상징하는 건물은 아마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일 것이다. 이 건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리와 철로 된 고층 빌딩의 전형으로, 미스의 후예들이 20세기 중반의 대도시에 마구잡이로 세운 건물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시그램 빌딩은 무수한 복제품들이 따라올 수 없는 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디테일의 완벽함과 미학적 측면이다. 미스는 당시 법규가 허용하는 많은 면적을 포기하고 거리에서 27미터나 뒤로 물러난 곳에 건물을 위치시켰는데, 그 결과 건물 앞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광장이 조성되었다. 이 광장은 빽빽한 고층 건물들이 들어찬 도심에서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미스는 포디움에 사용한 대리석을 로비 안까지 사용하여 광장이 건물까지 연장되는 듯한 효과를 노렸으며, 건물에 덧붙인 콘크리트 벽을 대리석으로 감싸고 다시 멀리온으로 둘러싸서 건물 전체의 통일성을 추구했다.

 

우리나라에도 시그램 빌딩을 모델로 삼은 건물이 있는데, 청계2가 사거리에 있는 삼일 빌딩이다. 이 건물은 단순하고 명료한 외관 디자인으로 완공 당시에 우리나라의 건축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평가받았지만, 후면부에 보기 싫게 붙어 있는 회색의 콘크리트 기둥, 행인들의 숨통을 틔우기에는 너무 비좁고 차마저 주차되어 있는 광장 등이 아쉬움을 남긴다.

거대한 열린 공간을 추구하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베를린 신국립미술관_베를린,독일

미스 말년의 대표작인 베를린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은 실현되지 못한 바카디 사옥과 셰퍼 미술관을 거치면서 디테일의 완성도와 개념의 명료성을 갖추게 된 작품이다. 관절염이 도졌던 미스는 병원에서도 도면을 검토할 정도로 이 작품에 애정을 쏟았는데, 이는 자신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베를린으로 금의환향하여 그곳에 위대한 미술관을 짓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완성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전시물이 되었다. 포디움은 예술품을 지지하는 전시대와 같은 역할을 하며, 유리로만 둘러싸인 내부는 안과 밖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한다. 지붕을 떠받치는 십자 모양의 철골 기둥 8개는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데, 이런 섬세한 디테일들이 모여 이 건물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베를린 신국립미술관_베를린,독일

사실 거대한 유리 공간은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는 부적합했는데, 실제로 전시를 할 때는 내부를 칸막이로 막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러나 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정말 커다란 홀이다. 따라서 당연히 예술을 전시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이 공간은 이러한 어려움들만큼이나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이 미술관은 거대한 열린 공간과 구조적 투명함이 갖는 의미들의 논리적 집대성일 뿐이었다.

추천도서 : 현대건축을 바꾼 두 거장ㅣ천장환 저ㅣ시공아트

[THE ARTIST 매거진=김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