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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

by디아티스트매거진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을 느끼지만 또한 없기를 바라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여행을 다닐 때는 더 그렇다. 사람이 아예 없기를 바라면서도 조금이라도 붐비는 건 싫다. 여행지를 검색할 때마다 '사람이 없는' , '한적한', '소소한'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건 그런 이유일 테다. 녹차로 유명한 다희연도 그런 장소 중 하나였다. 비가 내리고 있었던 탓인지 다희연을 찾은 손님들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도착할 무렵에는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

다희연은 녹차밭으로 유명하다. 물론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녹차밭은 오설록이지만...

사실 오설록은 가본 적이 없어 이곳 다희연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다희연은 1990~2000년대 유행했던 테마파크와 흡사한 느낌이었다. 쓸쓸한 풍경이랄까, 있는 둥 마는 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스코트들과 녹차밭 사이에 불쑥 올라와 있는 전망대. 예쁜 풍경에 드문 인적은 이곳의 쓸쓸함을 더했다.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

비가 온 탓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쓸쓸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녹차밭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는 동안, 내심 궁금한 장소가 하나 있었다. 바로 '동굴 카페'라는 곳이었다. 사실 애초에 입장권을 끊을 때도 동굴 카페 음료권을 끊어 들어온 나에게 그곳은 필수 코스였건만 왠지 테마파크에 들어오자마자 그곳으로 향하고 싶진 않았다. 그것은 과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5,000원이나 주고 산 입장권인데 만약 생각보다 별로면 어떡하지?' 나는 기대감을 낮추고자 끊임없이 녹차밭을 서성거리며 언덕을 올라갔다가, 전망대로 향했다가, 흔들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곤 했다.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

그래도 사진 찍기 참 괜찮은 곳이다.

약 3~40분 간 그렇게 '생쇼'를 하다 드디어 동굴 카페로 입장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마음 먹을 필요가 있으랴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매일 계속해서 쏟아지는 비 때문에 가는 여행지마다 실망을 금치 못했던 나에게는 장소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특히 (다희연의 동굴 카페같이) 실내인 곳은 더욱 그러했다. 열심히 찾아간 그곳이 생각보다 별로라면? 제주도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 실외인 점을 고려할 때, 다희연의 동굴 카페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동굴 카페에 상당히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

다희연 동굴카페 입구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

동굴카페 내부

그리고 마침내 동굴카페로 입장했다. 아주 으스스한 분위기를 품기는 입구라 마치 박쥐라도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그나마 일행이 있어서 허세를 부리며 여유 있게 입장하는 척했지만, 만약 혼자 왔더라면 들어가는 일조차 어려웠으리라. 사람이 많지 않은 그날 오전 다희연의 특징은, 그러한 공포감을 더 증폭시켰다. 상당히 진짜 동굴 같은 입구를 지나 카페로 들어가자, 탄성을 금치 못했다. 생각보다 커다란 카페의 실내공간, 그리고 정교하게 꾸며 놓은 동굴 형태의 인테리어. 카페 안에도 역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비가 내릴 때의 카페는 제법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람들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적요는 동굴만이 지니고 있는 신비감 혹은 신성함을 더해주었다. 물론 늘어서 있는 녹차판매상품들은 그런 분위기를 조금 깨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곳이 실제 동굴처럼 느껴졌다.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

포토존도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행운의 '7'이 보인다는데.

녹차라떼를 시켜 서늘한 곳에 앉았다. 첫맛은 달콤한데 끝맛은 쓰다. 입 안에 알갱이들이 씹히는 게 제법 진한 녹차맛을 느낄 수 있었다. 녹차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자주 마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었다. 입장권과 함께 챙겨온 리플렛을 읽다 보니 내가 한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동굴 카페는 인공적으로 꾸민 동굴이 아니라 '진짜' 동굴이었던 것. 즉, 다희연의 동굴 카페는 천연 동굴을 그대로 카페로 만든 것이었다. 어쩐지, 속으로 감탄하며 다시 동굴을 바라보니 새삼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커다란 동굴과 녹차밭이 함께 있다니.

 

동굴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제 제법 날씨가 개었는데도. 그래도, 다소 이기적인 마음이지마는, 이곳은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기를 바랐다. 북적이는 동굴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 동굴 카페가 갖고 있는 적막함, 고요함, 쓸쓸함. 그런 것들이 바로 이곳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향하는 동안 도로에 깊은 안개가 피었다.

 

다희연/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600

 

[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