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여행]by 볼로

인터넷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길 때, 나는 그곳을 여행지 리스트에 적어두곤 한다.

 

그리고 그런곳들은 흔히 남자친구와 '이번 주말에 뭐하지?' 하는 고민이 들 때면, 기억속에서 떠오른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떠나게 된 곳이 바로 군산. 철길 옆으로 늘어서있는 낡은 집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빨랫줄들의 모습이 나를 현혹시켰다.

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철길마을 가는 길에 만난 어떤 집

실제로 가본 그곳은 그저 철길 옆.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있는 동네였다.

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이 특이한 철길은 1944년 4월 4일,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페이퍼코리아'사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나르기 위해 처음 놓여졌다고 한다. 사람사는 집이 옆에 있는 터라 기차의 속도는 느렸다. 재밌는 건, 기차가 들어올 때 역무원 세 명이 기차 앞에 탄 채로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화분이며 빨랫감이며 살림살이들을 집안으로 들여놓고 아이들과 애완동물들을 불러들였다.

 

현재는 기차가 다니지 않아 이런 풍경들을 볼 수 없지만, 기찻길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을 보며 그러한 모습들을 상상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그러다 문득 태국에 있다는 기찻길 시장이 생각났다. 그곳은 기찻길을 중심으로 시장이 생겼다는 점이 다르지만, 사는 모습은 우리의 과거와 다를게 없어보였다.

 

사실 이러한 생활들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 집앞을 내 맘대로 마음놓고 사용할 수도 없거니와, 기차가 지나갈때마다 소음과 진동을 견뎌야 하는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살던 곳이기에 떠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은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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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왜 그렇게 사람들마다, 가는 곳마다 흔적을 남기고 싶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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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중간에 있는 가게에서 파는 추억의 음식, 쫀드기

기찻길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 쭉 뻗은 기찻길 사진을 찍기도 힘들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너무 춥고, 꽃이 피거나 녹음이 우거지지 않아 조금 휑해보였다.

 

그렇지만 철길마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삶의 모습들, 그리고 연탄불에 구운 쫀드기같은 추억의 먹거리 등의 재미요소가 어우러져 특별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옛날교복을 대여해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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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철길마을 다음으로 간 곳은 근대화거리. 사실 계획없이 간 여행이라 일본식 건물들이 쭉 줄지어 서서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알고보니 그곳이 근대화거리였다.

사진 한 장에 흔들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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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거리에 있었던 게스트하우스. 숙박을 하게된다면 이곳에서 해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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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대표적 일본식 가옥인 히로쓰 가옥. 창살이 만들어내는 형태가 아름다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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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쓰 가옥 안에서.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집이 생각났다.

철길도 그렇고 일본 가옥들도 그렇고, 일제의 잔재가 유독 많이 남아있는 도시가 군산인데, 알고보니 그 시기에 쌀을 수탈하기 위한 주요 거점으로 군산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을 보면 괜히 아픈 역사가 떠올라 찝찝하고 기분이 나빠지지만, 그렇다고 그 흔적들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역사를 누가 기억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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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그 다음으로 갔던 절 동국사도 일본의 건축 양식을 닮아있었다. 구경할 때는 그저 무언가 특이하게 생겼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일본에서 갔던 절들과 비슷하게 지붕이 크게 강조된 형태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큰 키의 대나무들이 늠름하게 서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의 군산은...

아픈 역사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던 군산. 누구에게는 그리운 고향일 것이며 누구에게는 첫사랑의 추억이 떠오르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자리해 있을 것이다. 비록 하루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내 기억속의 군산은 그 하나하나의 기억들이 한데 섞여 오묘한 색을 발하고 있었다.

 

by JUHO KIM

2018.02.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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