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을 따름

논어 1장 학이學而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에는 그 뜻을 관찰하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니, 3년 동안 아버지께서 걸으신 길을 고치지 않으면 가히 ‘효도’라 말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子曰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논어』를 읽다보면 전혀 와 닿지 않고 재미도 없는 것 같은 내용들이 불쑥불쑥 나와요. 위 구절에 공감이 잘 되시나요? 아마도 어렵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런데 자세히 풀어보면 ‘양심성찰’을 기가 막히게 해서 나온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논어』에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자식의 입장이 거론되죠. 기본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자식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하고 헤아려보려고 하거든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동물들도 그러하듯이 ‘내리사랑’은 보편적인 현상이죠. 

 

그런데 자식은 부모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합니다. 보편적으로 그렇죠. 그래서 자식의 얘기를 먼저 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그 자식은 누굴 사랑하나요? 자기 자식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내리사랑’은 자연스러우나, ‘치사랑’(부모를 향한 사랑)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죠. 

 

예전에 율곡도 이런 주제에 관해 논문을 썼어요. 치사랑이 어려우니 자식은 늘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이러한 은혜를 갚고자 끝없이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죠. 인간에게는 자신의 자손을 위해서라면 모든 물자를 아끼지 않는 아주 원초적인 본능이 있어요.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존재가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하고 싶은 것이죠. 그러니 자식을 향한 부모의 역지사지는 좀 더 유리한 것이죠. 

 

그런데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가하지 말라!”는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육체적 본능에만 끌려갈 것이 아니라 “아! 부모님 마음은 이렇겠구나!” 하고 역지사지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식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즉 ‘효성’은 양심이 있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는 것입니다. 논어의 이 구절은 이러한 효성이 자식에게 있는지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구절을 살펴보죠. 꼭 ‘아버지’라고 제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뜻’을 관찰하라는 게 무슨 말일까요? 여기서 뜻이란, 부모님의 뜻이 아니라, ‘자녀의 뜻’을 잘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경우에는,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처리를 하지 못하거든요.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명령을 거역하기 힘들어서 부모님의 뜻을 따를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어떤 사람이 진짜 효성스러운 사람인지를 파악하려면, 그 사람의 속마음까지 관찰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지금 부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뜻을 관찰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그 사람의 행동만 봐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이제 통제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할 것 아닙니까? 그때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행동으로 잘 드러나죠. 

아버지의 길을 따름

"이눔이 청개구리 같은데... 내 뜻을 보여? 말어?" (삽화: 차망우인)

“3년 동안 아버지께서 가신 길을 고치지 않으면 가히 효도라 할만하다.” 이 말은 곱씹을수록 참 오묘한 말입니다. 그분이 하신 일이 양심상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 3년이 아니라 평생 해야 옳을 것입니다. 반대로 비양심적인 일이면 절대로 하면 안 되겠죠. 아무리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라고 해도, 3년씩이나 비양심적인 일을 하고 있으면, 효도를 떠나서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양심에 어긋나지는 않으나, 자식이 반드시 계승하여 할 필요는 없는 일을 말한다고 봐야 타당할 것입니다. 자식이 꼭 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존중해서, 평소에 추진하셨던 일을 돌아가신 뒤 3년 정도 더 이어간다면, 참으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진짜 효자일 것입니다. 그런 일은 효성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평소 어딘가에 계속 기부를 하셨다고 가정해보죠. 자식이 봤을 때 “그런 식으로 기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여 돌아가시고 3년 정도 더 기부를 더 이어갔다면, 참으로 효자라고 할 수 있겠죠?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죠. 세월호 같은 사건으로 자식을 먼저 보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녀가 평소에 하던 것이나 이루고 싶어 하던 뜻을, 부모가 대신해서 이루어주기도 하죠. 이건 효도는 아니지만 똑같은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죠. 그리고 이 사랑의 마음이 부모님을 향할 때 효성이 되는 것입니다.

 

내리사랑은 쉬워도 치사랑은 어려운 법이니, 우리는 더욱 이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부모님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공자께서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한결같이 진심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여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효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공자께서 가르치신 효성의 실전팁입니다.

201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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