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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논어 1장 학이學而편

백성들의 덕을
두텁게 하는 법

by윤홍식

증자가 말하길 “장례를 신중히 하고 멀리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면, 백성들의 덕이 두터운 데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말하기를 “장례를 신중히 하고 멀리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라.”라고 했습니다. ‘신’(愼, 삼갈 신)은 마음(心)이 참된(眞) 것으로, 조심하고 신중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신종’(愼終)은 사람이 죽었을 때 장례를 조심해서 치루는 것을 말하며, ‘추원’(追遠)은 돌아가셔서 멀리 계신 분을 추모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덕이 두터운 데로 돌아간다는 것은, 백성의 덕이 두텁게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신중히 한다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효도, 즉 부모님이 낳고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하려는 공감능력이 있다는 것이니, 역지사지를 잘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인(仁, 사랑)’의 마음이 있다는 얘기지요. 그리고 돌아가신 지가 오래된 분이더라도 늘 기억해 준다는 것은, 그분들이 계신 덕분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이죠. 


만약 리더가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갖추고 있다면 백성들도 결국 덕스러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얘기를 한 이유는 뭘까요? 현실 속의 리더들은 도덕군자인 체 하면서, 막상 부모님이 유산을 물려주고 돌아가시고 나면 나 몰라라 했기 때문이겠지요. 당시 제사와 같은 예절을 중시했어도 실제로는 형식만 남아있을 뿐, 장례식장에서 진지하게 공감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잘 하는 것은 뭔가 이득을 보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겠지만, 돌아가신 뒤에 잘 하는 것은 이득을 보려는 게 아니라, 역지사지의 마음 때문에 잘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리더가 있다면 백성들의 마음까지도 두텁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백성들의 마음까지 잘 공감해주고 아껴줄 것이니까요. 

백성들의 덕을 두텁게 하는 법

덕스러운 리더... 이 덕이 그 덕인가? (삽화: 차망우인)

결국 리더가 덕스러워야 합니다. 그리고 리더의 덕이란 것은 별게 아니라 바로 ‘공감능력’입니다. 물론 공감을 잘 한다는 것이 곧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남과 공감을 쉽게 해서 슬픈 일을 보고 같이 울지만 그것으로 끝인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따라서 도덕적이라는 것은 곧 ‘영성지능’이 높다는 의미이지, 단순히 공감 능력만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기꾼도 공감은 잘 합니다. 다중지능 이론의 지능 중에는 사람들과 공감을 잘하는 ‘인간친화지능’이란 게 있는데, 이 지능을 악용하면 사기꾼이 돼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빨리 읽어서 쥐락펴락 할 수 있으니까요. 상대방은 자기 마음을 이렇게까지 알아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같이 어울리다가 금방 털리고 끝납니다. 


그런데 ‘인(仁)’이라는 공감에는 나와 상대방 모두가 잘 되게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仁)은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으로 어느 한 부분만 공감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정도의 공감에서는 나에게 조금만 손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금방 자기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인의 마음이란 일반적 공감이 아니라 상생적 공감인 것이죠. 


이런 공감 능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면 여러분이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남을 나처럼 여길 수 있을 만큼 깊이 공감해야 하는 것이죠. 단순히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영성이 작동해야 합니다. 남의 마음을 공감하고 난 뒤에, 진지하게 남을 나처럼 여겨서, 그 사람이 잘 되게 해주려는 뭔가가 더 있어야 해요. 그건 영성의 영역, 양심의 영역이죠. 


상대방을 끝까지 살펴줄 수 있는 공감은 결국 양심이 밑에서 받쳐주는 공감입니다. 그런 공감은 나와 남을 둘로 여기지 않고 끝까지 모두를 책임지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仁)이라는, 진정한 공감인 것이죠. 불교에서는 이렇게 끝까지 책임지는 것을 ‘자비’라고 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존재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잃어버린 어린 양을 끝까지 찾겠다는 발상이지요. 같이 있을 때는 양들끼리 서로 친하다가 양 하나가 사라졌는데 “누구 어디 갔나?” 하고 그냥 가버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설픈 공감일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공감을 정말 잘한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공감은 자신이 정말 힘들 때에도, 자신에게 손해가 오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그 공감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는 양심적인 공감인가요? 아니면 나한테 혹시 해가 되거나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바로 냉정해질 수 있는 일시적인 감정인가요? 여기까지 확인해 보면 자신의 공감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 마음을 못 잊어서 계속해서 추모하고 기려줄 수 있는, 그런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이 리더가 된다면 백성도 그런 리더의 마음을 금방 배워서 감화될 것입니다. 꼭 임금이 아니더라도 이것이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