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논어 1장 14절

학문을 좋아함

by윤홍식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가 음식을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고, 일을 실천함에 있어서 민첩하고 말을 삼가며, 도道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 바로잡는다면, 가히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만하다.”라고 하셨다.

 

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

자신이 얼마나 학문에 있어 오타쿠인지를 알고 싶다면, 공자의 이 말을 통해 스스로를 한번 점검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공자는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음식을 먹을 때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맛있는 것을 먹고, 편안하고 좋은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학문보다 음식을 더 좋아하고, 학문보다 거처의 편안함을 더 원한다면, 그 사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음식이나 거처가 거칠고 박한 것이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학문을 진심으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음식도 박하게, 거처도 박하게 산다면, 정말 사는 맛이 없겠죠? 이 글은 학문을 닦는 재미가 너무 커서, 밥을 먹어도 그 밥 먹는 재미보다 공부하는 것이 더 즐겁고, 집에서 편안하게 잘 쉬는 것보다 도(道) 하나 얻는 것을 더 즐기는 사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학문을 닦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면, 음식이나 거처에서 오는 안락함을 채우는 일에 지나치게 열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학문을 통해 진리를 더 얻고 싶어 하겠죠. 그러면서 일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민첩하다고 했는데요, 이것은 ‘양심’(인의예지)을 펼칠 기회가 오면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바로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논어의 다른 구절에도 나와 있듯이, ‘사랑’(仁)에 있어서 만큼은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죠.

 

양심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끝없이 ‘인의예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할 일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인의예지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그럴 때에는 나와 남을 해치는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정신을 잘 모아서 깨어있는 것이 곧 사랑(仁)입니다. 남과 나를 가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니까요. 평소에 자기가 살 궁리만 하면서 자신만 챙기고 있다면 이미 사랑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이 없을 때에는, 자신의 이름을 잠시만 “몰라!” 하고 내려놓아 보세요. 잠시만 온전히 쉬어 보세요. 그러면 금세 마음이 밝고 선명해질 것입니다. 나와 남을 가르지 않으면서 욕심을 내려놓고 쉬다 보면, 마음이 자연히 평온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이죠. 부족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그 때에는 우주와 어떠한 부조화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 일이 없을 경우에는 이런 방식으로 우주와 조화를 이루어 보는 것도 사랑(仁)의 표현입니다.

 

또 이런 글 한 구절을 읽고 들을 때에는, 진지하게 그 저자의 마음이 되어 들어주면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남의 글을 읽을 때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는 도대체 이 말을 왜 했을까? 공자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하고 저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죠. 우리가 깨어서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양심적으로 결정하고, 양심적으로 행동을 펼치는 것, 생각 하나라도 양심에 맞게 하는,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잠시라도 끊어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군자가 ‘사랑’(仁)을 버리고 어찌 명성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시간에도 ‘사랑’을 어겨서는 안 되니, 급박한 순간에도 반드시 사랑을 어기지 않으며, 엎어지고 넘어질지라도 반드시 사랑을 어기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양심과 진리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니,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곧 ‘사랑’(仁)입니다. 인의예지를 모두 포괄하면 사랑이 되는 것이죠. 정의롭고, 무례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랑 말입니다.

학문을 좋아함

'군자는 밥을 먹는 시간에도 사랑을 어겨서는 안되니...' (삽화: 차망우인)

그래서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우리는 늘 민첩해야 합니다. 남과 시비가 붙거나, 어려운 일을 처리하는 순간에도, 항상 자신과 남을 모두 배려하는 ‘win-win’의 결정을 내려야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것에 민첩해야 하는 것이죠. 깊이 살펴보면 모든 곳에 사랑이 통해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저것 다 따질 수는 없겠지만, 굵직한 것이라도 꼭 따져봐야 합니다. 당장에 내 마음에 찔리는 것만이라도 사랑의 관점에서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여러분의 인격이 변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곳에서 남의 입장까지 배려한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민첩해야 합니다. 뭔가 사랑에 맞는 것이 보이면 곧장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 너무 앞서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행실이나 역량보다 말이 앞서면 결국 ‘사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이란 게 별게 아니라, 말을 세게 하고 실천이 약한 사람을 말합니다. 설사 좋은 의도로 한 말이더라도, 아무리 인의예지를 이야기하고, 진리를 이야기했더라도, 자신이 그 말을 지키지 못하면 남에게 실망을 주고, 결국 사기를 친 것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늘 말을 조심해서, 자신의 역량 이상으로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사랑에 맞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道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 바로잡으라는 말은, 반드시 진리를 얻은 사람(양심의 달인)에게 가서 점검을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혼자의 공부에 만족하지 말고, 양심 전문가가 있으면 찾아가서, 양심을 더 잘 닦을 수 있는 비법이나 조언을 꼭 얻으라는 것이죠. 그래야 그 고수의 지도를 통해 여러분의 영성지능을 더 계발시킬 수 있으니까요. 양심 닦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이렇게 할 것이라는 것이죠.

 

요컨대 맛있는 음식이나 편안한 거처보다도, 양심의 실천과 양심의 계발이 더 즐거워야 ‘양심의 오타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고수를 찾아다니면서, 자기 양심의 능력치를 높이려고 노력하겠죠. 이 정도가 되어야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