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가 작품을 만든다?

갤러리 공간을 벗어난 예술에 대해 생각해보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트릿 아티스트 뱅크시, 그의 재미난 소행(?) 중에는 미술관에 자신이 제작한 그림들을 붙여놓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무려 뉴욕 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 자연사박물관에 이런 도전을 한 것인데, 놀랍게도 모두 성공이었다.

영상의 뒷부분이 잘려있지만, 그의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보면 뱅크시가 마음대로 걸어놓은 작품들을 관람객들은 진지한 태도로 살펴본다. 심지어 경비원들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며 그림은 며칠 동안 전시되었다고 한다. 물론 뱅크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아티스트이지만, 그 그림들은 의도적으로 잘못 걸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의심받지 않았다.

 

그럼 여기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작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어린 아이가 막 색칠한 종이 한 장이 추상화들 사이에 걸려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의, 관람자의 역량 부족일까?

 

브라이언 오 도허티의 <하얀 입방체 안에서>는 일찍이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하얀 입방체, 화이트 큐브로 정의되는 갤러리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1. 이상적인 갤러리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방해하는 모든 단서들을 미술작품에서 제거한다.
  2. 미술작품은 그 자체의 가치를 손상시킬지 모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다.
갤러리가 작품을 만든다?

그렇다. 갤러리 공간은 무엇이든 예술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마치 화장실에서는 소변기가 그저 소변기일 뿐이지만, 전시장 안에 들어선 순간 뒤샹의 <샘>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역으로 갤러리를 나와 밖으로 내던져진 작품들은 하찮기 그지없다. 이번에는 뱅크시가 한 허름한 노인에게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자신의 그림을 팔게 한다.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작품이라기보단 누군가의 낙서 정도로 생각하고, 매우 저렴한 가격에도 사려 하지 않는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림을 사간 뒤 이것이 뱅크시의 작품임이 밝혀지자 뒤늦게 난리가 난다. 모두가 그것을 갖지 못해 안달이다.

 

작품의 가치는 무엇으로 매겨지는가, 또 어디에서 부여하는가? 미술관이 그것을 참 편리하게 만든다. 작품을 고요하고 성스러운 관조의 공간에 집어넣음으로써.

갤러리가 작품을 만든다?

그렇다면 모든 작품들이 갤러리 공간에 있어야만 하는걸까? 그 속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게 작품인걸까? 관람자가 '대단한' 벽에 걸려있는 작품에서만 숭고함을 느끼면, 그걸 감상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사람도 그렇다. 많은 부모들은 선생님이, IQ 검사 결과가, 또는 전문가가 나와 "당신의 아이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기 전까지 가장 가까운 자기 아이의 재능조차 몰라본다. 눈 앞에 보여줘도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을 두고 나는 결코 우리의 무지함이나 판단력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전시들이 등장하긴 하였다. 일반적인 갤러리의 틀을 벗어난 전시공간들이 나타났고, 일반적인 전시 방식을 거부하는 작품들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작품들이 비싸고,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은 작품들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별로 바뀌는 것이 없다.

 

어떻게 해야할까? 제도적인 공간 밖에서 천재적인 작가, 세상에 둘도 없을 작품을 알아보는 경우는 왜 전과 같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여전히 의문이 든다.

 

황인서 에디터 seohwang7@gmail.com

2018.01.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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