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피플, 갓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인턴들의 이야기

20대, 포장하고 입증하고 드러내야 하는 불안정한 시기

할아버지는, 인생의 어떤 시기를 선택해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20대를 선택하진 않을 거라고 하셨다. 차라리 공자가 말한 흔들리지 않는 나이 불혹 쯤으로 돌아가 그 평온함을 다시 누리고 싶을 거라고. 20대의 청춘들은 흔들리고 번민한다. 어느 시대에나 시대상 속의 본질적 고민이 있고, 젊은이들은 그 고민에 누구보다 취약하다. 예컨대 한국 근현대사 속의 20대들은 이념 갈등의 쓰나미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세우도록 강요받았을 것이며, 현대의 청년들은 이념의 굴레에서는 해방되었으나 자본주의의 고도화 속 자신의 '상품 가치'를 취업 시장에서 증명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 지금 내 나이, 스물다섯은 나를 포장하고 입증하고 드러내야만 하는 불안정한 시기다. 고등학교의 입시 경쟁보다도 더 치열한, 사회경제적인 지위와 밀접히 연관된 생존 경쟁을 치러내야 하는 때가 되어버린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들고 괴로워도, 많은 청년들은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세상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고 적극적인 예비 신입사원의 흉내를 낸다. 그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찡하다.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굿피플'이라는 채널A의 새로운 예능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현재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방학을 활용하여 로펌에서 인턴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총 8명의 인턴들이 출연하는데, 그 중에 오직 두 명만 신입 사원이 될 수 있고, 만일 연예인 판정단들이 주어진 미션(누가 과제에서 1등, 2등을 하는지 맞추기)을 잘 수행하면 신입 사원이 세 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아직 2화까지밖에 방영하지 않았지만 꽤 화제성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인물탐구 1. 이상호 인턴 - 대충대충이여, 안녕

그런 사람이 있다. 처음 만나는 찰나 동안에 보이는 표정, 웃음, 말투만으로도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사람. 찰나의 직감은 꽤나 정확해서, 그런 느낌을 가졌던 사람과는 쉽게 가까워지거나, 혹은 너무나도 닮은 바람에 오히려 쉽게 충돌하게 되고는 한다. 직접 만나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 이상호 인턴을 TV 속에서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참 서글서글해보이면서도 또렷한 인상을 가졌다. 꽤 잘생겼는데, 날카롭고 부담스러운 잘생김이 아닌 부드럽고 호감형인 잘생김이다. 굉장히 명석하기까지 한데, 무려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재학 중이신 분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위 '엄친아'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모두 알다시피 그가 2화에서 보이는 모습은 엄친아와는 거리가 멀다. 인턴 첫 과제에서 마감시간 두시간 전에 제일 먼저 제출했지만, 판례가 지나치게 빈약하며 오탈자까지 많아 대충 작성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며 냉혹한 평가를 듣는다. 인턴 둘째날부터 10분 지각을 한다. 이 두 가지 실수 때문에, 멘토와의 점심식사에서도 한참 훈계를 듣게 된다.

 

그런 그의 모습이 참 친숙하게 느껴졌다. 작년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침 8시까지 출근하는 게 죽을 만큼 힘들어서 지각을 일삼던 내 모습, 학부 시절 과제를 할 때마다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이는 게 왠지 달갑지 않아 최소한도의 에너지로 모든 것을 끝내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만 서툰 것은 아니구나'라는 약간의 안도감도 들었다. 성격 자체가 본디 꼼꼼하고 체계적이며, 아침형 인간인 사람에게 사회생활은 인생의 큰 변화를 수반하지 않겠지만, 이상호 인턴과 나 같은 성격의 사람에게 사회생활에 입문한다는 건 거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수준의 급변을 요구하는 일이다.

 

2화 마지막에 나온 그의 일기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대충대충이여, 안녕. 20대에게 '취업 성공'과 '대충대충 살기'는 양립할 수 없으나 매력적인 두 가지 대안들인 것이다.

인물탐구 2. 임현서 인턴 - 호감 가는 반골

나는 임현서 인턴을 만난 적이 있다. 학부 때 수업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이후 연락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를 신기하면서도 인간적 호감 어린 눈빛으로 쳐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분명 남달랐다. 슈퍼스타k에 출연하여 '엄마카드'라는 다소 생소한 느낌의 노래로 화제를 일으켰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듣고, 그는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롭고 엉뚱하며 활달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스타일이 굉장히 강하지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것 같은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한 것도, 내 진로 희망 분야에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어떤 이미지로 나올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임현서는 여전히 참 자유로웠다. 그는 면접 자리에서 '본인의 단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저는 반골기질이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큰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아니 대체 누가 면접에서 나오는 장단점 질문에 이렇게 솔직하게 대답한단 말인가! 이건 거의, '제 단점은 늦잠을 많이 자서 약속 시간을 잘 어긴다는 것입니다' 혹은 '제 단점은 주장이 세서 사람들과 마찰을 잘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급의 폭탄 발언이다.

 

사실 면접에서 위와 같이 답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가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면접에서의 이러한 실책(?)에 전혀 주눅들거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실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단점 질문 이외에 지식적 측면을 물어보는 질문들에서는 완벽하게 선방했으며, 이후 과제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다. 선배 변호사들은 그의 소장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고히 구축함으로써, 사람들이 흔히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본인의 자유분방하고 스타일 강한 성격마저도 매력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그의 저력이 참 부럽다.

'굿피플'의 승승장구를 바라며

'굿피플'은 최근 두 시즌 모두 흥행에 성공했던 '하트시그널' 제작진이 새롭게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하트시그널' 역시 매주 내 여가 시간을 책임졌던 프로그램이었는데, 6-7명의 남자와 여자들이 출연하여 한 달간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짝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었다. 하트시그널이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남녀 간의 묘한 긴장감과 질투, 연애 전선의 형성 및 변화의 과정을 섬세한 연출 및 음악과 함께 쫄깃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었다.

 

'굿피플'에도 이러한 장점들이 모두 녹아들어가 있다. 회사의 선배 변호사들과 인턴들 사이의 관계, 처음 만난 인턴들 사이의 어색함, 묘하게 느껴지는 경쟁심, 짧은 시간 안에 과제를 완료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긴장감 등이 연애 프로그램을 볼 때만큼의 설렘과 짜릿함을 선사해준다. 굿피플과 하트시그널의 음악 감독님은,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탁월한 선곡 능력으로 프로그램의 재미를 두 배로 높여준다. 회사에게 걸맞는 '좋은 사람들(굿피플)'이 선발되는 과정을 엿보는 건, 힘든 겨울을 보냈을 인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너무도 흥미롭고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하다.

 

특히 나처럼, 아직 맘 편히 몸담을 직장을 구하지 못한 불안한 청춘들에게 '굿피플'을 추천하고 싶다.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는 인생의 모든 고통을 정당화하는 말인 것만 같아 좋아하지 않았지만, 때로 이 말을 되뇌는 것이 현재를 버텨내기 위한 힘이 되는 것 같다. 나도, 이 세상 모든 청년들도,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창희 에디터

2019.04.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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