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푸근함과 신비로움이 물씬, 넓고 푸른 1박2일 하동여행

우연찮게 22-23일 하동으로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서울에서 꽤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느라 돌아와서는 머리부터 손끝발끝까지 몸살기가 돌아서 하루종일 쉬고 있지만 그 기억이 사라질까 싶어 얼른 블로그에 남기려 합니다. 서울토박이인 저는 하동 역시 처음 들려보아서 눈이 휘둥그레해져 정신없이 돌아다녔는데요, 제가 짧게나마 느낀 하동은 땅의 푸근함과 신비로움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땅의 푸근함과 신비로움이 물씬, 넓고

4시간 여를 달려서 도착한 하동에서의 첫 끼는 청학동 청뫼향 식당의 대나무통밥과 산채나물이었습니다. 같이 여행을 간 분들은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도착했는데 식사에 내심 육해공 중 하나도 없다며 고기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각종 나물과 짭조름한 대나무 통밥 한 끼가 부담없이 가볍고 깔끔한 느낌이었습니다. 대나무통밥을 다 먹고 나면 대나무 통을 가져갈 수도 있는데 버리고 가게 될 경우에는 다시 쓰지 않고 소각처리가 된다고 합니다. 밥을 다먹고 나니 딸기가 익어서 한 광주리 가져다 주셨는데 얼마나 달던지! 서로 딸기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나물만 보면 고추장 한 숟갈 덜어 비벼먹고 싶으신 분들은 산채비빔밥 등의 메뉴도 있으니 찾아보실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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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하동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환인, 환웅, 단군 이렇게 세 명의 성인을 모시고 있다는 뜻의 삼성궁입니다. 건국전이라는 곳을 찾으면 세 성인의 모습도 함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삼성궁은 하동을 '신비로운 곳'으로 기억남게 해준 일등공신이기도 한데 속세와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세상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삼성궁은 수많은 돌벽과 돌길로 만들어져 있는데 신기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사람들이 만들었고 그 많은 돌 또한 여기에서 나는 돌들만을 이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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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또아릴를 튼 것 같이 생긴 벽을 따라가다보면 신령스러운 길이라는 '검달길'을 지나게 되고 사슴모양의 형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참 올라가다 보면 요새 같은 건물과 더불어 탄성이 나오는 옥빛 물가를 만나게 됩니다. 삼성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경치를 꼽는다면 저는 단연 이 곳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삼성궁을 함께 탐방하던 분들과 공통적으로 생각난 것은 '토테미즘'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입구부터 돋보이는 오리모양의 소도들과, 신령스럽다는 표현, 길 곳곳에 있는 묘한 조각들과 동굴벽화들 덕분이지 싶네요. 삼성궁이 특별한 매력을 지니게 된 이유는 어려운 시기에 탄압받던 사람들이 종종 숨어와서 지리산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이야기와 민초들의 염원을 담긴 곳이라는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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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조각이 있다면, 이 조각은 제 주관적인 '삼성궁의 미소'가 아닐까 합니다. 삼성궁만의 묘하고 신비로운 매력이 드러나는 조각이라 담아보았습니다. 삼성궁은 그 신비로움이 '기운'에 대한 해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설사 선생님께서는 삼성궁의 길은 매년 사람들이 일정 기간 오고 간 후에는 그 길을 막고 다른 새로운 길을 뚫는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는 땅이 사람들로 인해서 잃은 기운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과거에 비해 현재의 삼성궁에 대해서 다소 많이 관광지처럼 되어버려서 좀 아쉽다는 말씀도 남겨주셨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와보는 곳이긴 했지만 저도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조각들이 있고 돌벽을 쌓는 노고가 놀라우면서도 인위적으로 신비스러움을 주려는 느낌도 없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삼성궁은 얽힌 이야기나 건국전 등을 보아도 충분히 신비롭고 매력적인 곳이니 오히려 예전의 자연스러움을 되찾는다면 그것이 삼성궁다운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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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발걸음을 옮긴 곳은 조영남 선생님덕분에 널리 알려진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바로 그 화개장터입니다. 실제로 조영남 선생님 동상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화개장터에는 초가지붕이나 한옥가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화차, 여주, 돼지 감자 등 몸에 좋은 차나 약재들을 구매할 수도 있고 아기자기한 기념품은 물론 수수부꾸미와 씨앗호떡, 고로케와 음료 등으로 심심한 입을 채울 수 있기도 합니다. 저도 조금만 먹는다고 시작한게 수수부꾸미며 크림치즈호떡이며 한 입씩 하고야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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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화개장터 근처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요 '벚굴'입니다. 처음에는 발음을 잘못 들어서 벚꿀인가 했는데, 벚굴은 민물과 바닷물 사이에서 살고 심해에서 자라는 모습이 벚꽃같기도 하고 벚꽃이 만개할 때 제철이라서 또 벚굴이라 합니다. 보통 굴의 두 세배 이상의 크기를 자랑하는데 가격 또한 한개에 3,4천원이 넘습니다. 안그래도 벚꽃이 졌으니 제철은 지나긴 했지만 시험타자로 맛본 벚굴은 다른 굴처럼 비린 맛 없이 깔끔했습니다. 날씨가 더 더워지면 혹시 생 벚굴을 먹고 탈이 날 수 있으니 조심하시구요! 3분정도면 바로 찔 수 있다는 찐 벚굴도 추천드립니다. 벚굴이 부담스러우시면 하동먹거리로 빼놓자면 서럽죠. 벚굴과 반대로 아주 작은 제첩국을 시원하게 맛보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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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하동 차체험관에서 직접 녹차를 우려서 마셔보는 활동을 했습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서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주인으로서 차를 내어주고 나머지는 손님 역할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따뜻한 물로 먼저 찻잔을 따뜻하게 덥혀놓고, 각 잔에 우려낸 녹차를 마시다보니 화기애애하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격식을 차리게 노력하게 된 기억이 납니다. 물이 또르르륵 굴러가는 소리가 워낙 예쁘기도 하고 차를 세 번 정도 우리면서 처음엔 향을 느끼고 다음엔 맛을 느끼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신기하게도 물이 적은 상태로 우러난 녹차를 진한 녹차라고 하지 않고 '짠' 녹차라고 한다더군요. 녹차는 워낙 탈취효과가 강하다고 하니 냉장고나 냉동실에 절대 넣지 말고 직사광선을 피한 실온에 두어야 한다는 팁을 배웠습니다. 2년 정도 지나면 녹차를 먹지 못하게 될 수 있다니 아끼지 마시고 티백으로 마신다고 해도 너무 오래 두어서 떫고 차갑게 드시지 마시고 30-40초만 담갔다가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녹차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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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험을 마치고 나왔더니 어제 저녁 숙소근처에서 마주쳤던 멍멍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금세 친해져서 나잡아봐라까지 시전하더니 갑자기 막 달려나가길래 한번 쫓아가보았더니 이 친구가 쌍계사 가는 길목의 길잡이 노릇을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한참 앞질러 나가더니 길목에 앉아 기다리더니 저희가 근처에 도착하니 다시 앞서나가는 걸 보니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눈빛은 좀 슬프지만 붙임성이 좋고 활발한 멍멍이, 쌍계사로 다시 가게 된다면 이 친구도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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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멍멍이 친구가 데려다준 이 곳, 다음으로 푸른 나무와 잘 어울려서 시간이 여유있을수록 더 오래 즐기고픈 하동의 명소 쌍계사입니다.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원각사지 8각 9층석탑과 비슷하게 생긴 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쌍계사는 조계종의 한 교구로서도 명망이 있지만 선(禪),  다(茶), 음(音)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선은 불교에서의 선(禪)종과 연관이 되어있는데 쌍계사의 금당에는 흔히 들어본 '돈오(갑자기 깨우침)로 유명한 중국의 혜능 대사의 두개골이 안치되어있습니다. 다(茶), 쌍계사의 진감국사가 중국에서 들여온 녹차를 처음으로 이 근방에 심고 전파했다고 전해집니다.마지막으로 음(音)으로서 쌍계사는 인도의 불교음악인 범패가 처음 우리나라에서 도입된 곳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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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가올 부처님오신날 때문인지 쌍계사에는 알록달록한 등이 가득했는데요, 대웅전 앞 길목에는 국호 47호이자 고려시대 명문장가 최치원의 문장이 남아있는 진감국사대공탑비가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관리가 잘 된 편이라 오래된 국보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절 곳곳에는 스님들이 수행하고 공부하는 곳이 있기도 했고 구수한 염불소리가 울려퍼지곤 했습니다. 일정에 쫓겨서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경치와 느낌이 좋아서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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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를 돌고 맛본 음식은 참게가리장국입니다. 곡식가루와 갈아있는 참게를 함께 끓인 음식인데, 고소한 맛이 매력이면서도 함께 한 사람들께 호불호가 많이 갈린 음식입니다. 취향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참게탕을 드시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들깨가루와는 또 다른 곡식가루의 맛이라서 맛이 오묘했지만 따끈하게 한 그릇씩 하고 매실차 한 잔으로 마무리했을 때의 기분이란! 참게 중에 어떤 게는 발에 까만 솜 같은 털이  집게 발에 가득해서 눈여겨보았더니 집게발에 털이 많은 것이 수컷이고 털이 적거나 없는 게가 암컷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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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게가리장국으로 배를 채우고 마지막으로 하동에서 들린 곳은 박경리 소설가 원작의 드라마 <토지> 촬영지인 최참판댁입니다. 저는 김현주 서희 버전의 토지를 본 기억을 안고 최참판댁을 찾았는데 알고보니 <군도>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영화의 촬영지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최참판댁을 둘러보니 당차고 까칠한 서희아씨가 이해도 가는 것이 엄청 넓은 집뿐만 아니라 대문을 나서면 보이는 넓디 넓은 평야가 다 자기 것이라면 그 정도 배포가 생기고도 남겠더라구요. 최참판댁은 연중 이뤄지는 마당극은 물론 굴렁쇠와 제기, 투호 같은 추억의 놀이를 즐길 수 있어서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땅의 푸근함과 신비로움이 물씬, 넓고

어머니같이 푸근한 지리산의 땅의 기운이 쇠하지 않게 열심히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 삼성궁, 박경리 작가의 길이 남는 대하소설 <토지>를 찬찬히 생각하다 보면 하동이란 공간에서 땅이 갖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비로운 요새느낌의 삼성궁, 쌍계사까지 저를 빠른 코스로 데려다주었던 고맙고 신기한 멍멍이의 기억뿐만 아니라  진국선사덕분에 오랜 시간 남아있는 하동의 녹차, 범패,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한 최치원의 문장까지 오랜 시간이 현재까지도 굳건히 이어져 오는 하동은 제게 신비로운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는 꽤 먼 거리기는 하지만  땅의 듬직하고 푸근함, 그만큼 쌓여있는 시간들, 그리고 신비로운 느낌이 궁금하시다면 짧게나마 하동여행을 추천드립니다! 봄이외에 가을에 또다른 매력이 있다고 하니 잊지 말고 찾아가 보세요!


[장지원 기자 rhksfl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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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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