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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치명적인 중독,
연백 (lead white)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흰색을 사랑한 화가, 휘슬러(with 미술관에 간 화학자)

치명적인 중독, 연백 (lead wh

납으로 만드는 인공적인 백색안료 연백[white lead(鉛白)]은 19세기까지 서양의 미술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던 안료이다. 연백은 특유의 하얀 빛깔로 화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에, 주성분인 납의 치명성을 뒤로 감춘 채 서서히 화가들을 병들게 했다. 특히 이 연백의 빛깔을 사랑했던 화가, 제임스 휘슬러는 연백 사용으로 축적된 납 중독으로 죽음에 이른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인 아직까지도 그 특유의 색감을 위해 이 치명적인 색을 사용하는 화가들이 존재하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안료는 화려한 겉모습에 뒤에 죽음의 그림자를 가진, 색감으로나 납 자체로나 치명적인 중독임에 분명하다.

 

연백[white lead(鉛白)]은 은처럼 빛나는 특징이 있어서 실버 화이트(silver white), 작은 조각처럼 반짝인다고 해서 플레이크 화이트(flake white), 바탕칠에 애용되어서 파운데이션 화이트(foundation white)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제임스 휘슬러(1834~1903)는 연백을 자주 활용한일명 ‘흰색을 사랑한 화가’다. 그는 미국 출신의 화가로 매너리즘적 성향을 가지고, 장식적인 옷을즐겨 입는 화가로 유명했다. 그는 음악과 미술을 사랑한 예술가였으며, 음악에서 하모니를 중시하듯 그림 자체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며, 그림의 색채와 형태의완벽한 배치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림 자체의 미학적인 면을 강조하는 그는 부드럽고 물기 있는 착색법, 안개가 자욱하고 은은한 색조의 풍경화 등의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야상곡, 심포니, 교향곡, 변주 등 음악적인 용어를 제목에 삽입하고, 부제목을 다는 특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치명적인 중독, 연백 (lead wh

휘슬러의 흰색 사랑이 두드러지는 작품은 바로 흰색 교향곡 시리즈이다. 휘슬러의 정부 겸 모델이었던 조안나 히피넌을 모델로 삼은 <흰색 교향곡 1번>이 그려졌던 당시에는(1862) 『흰옷을 입은 여인』이란 소설과 더불어 흰색 의류들이 유행하고, 매우 창백한 화장이 인기를 끌었는데, 휘슬러의 그림 역시 그러한 ‘흰색 열풍’의 한 자락이었다. 하얀 커튼 앞에서 하얀 옷을 입고 서 있는 조안나는 차분하고 잔잔해보인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이 그림은 초기엔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다가 후에 ‘누드가 아닌데도 몸매와 속마음까지 드러내는 듯한 투명한 분위기’를 가진 걸작으로 평가 받게 된다.

치명적인 중독, 연백 (lead wh

휘슬러, [흰색 교향곡 1번], 1862, 캔버스에 유채 2.14m x 1.08m,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치명적인 중독, 연백 (lead wh

휘슬러, [흰색 교향곡 2번], 1864, 캔버스에 유채 76cm x 51cm, 영국 런던 테이트 미술관

그녀를 모델로 한 또 다른 작품은 <흰색 교향곡 2번>에서는 우아한 분위기가 감돈다. 하얀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벽난로에 기댄 채 거울 앞에 서 있는데 거울 속에 보이는 그녀의 우수에 찬 표정이 시선을 끈다. 왼 손에 있는 반지, 곳곳에 보이는 일본풍의 소품들이 그림에 재미를 주며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일본풍(자포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치명적인 중독, 연백 (lead wh

휘슬러, [흰색의 심포니 3번] 1867, 캔버스에 유채 51.1x76.8cm, 버밍햄 대학

흰색 교향곡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흰색 교향곡 3번>은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 둘이 역시 흰색 의자에 기대 앉은 모습을 보여준다. 휘슬러는 넓은 흰색 면이 만들어내는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부채와 머리카락의 오렌지색으로 생동감을 주고, 부드러운 녹색 카펫으로 자칫 가벼울 수 있는 화면에 무게를 더했다. 더불어 화면 전체를 가로로 나눈 긴 의자의 수평선들은 여인들이 만들어내는 곡선으로 분할되어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여인들의 부자연스러운 자세는 그녀들이 휴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화면의 균형을 잡아줄 세로 곡선을 만들기 위해, 동시에 의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로선을 맞추기 위해 결코 편안하지 않은 과장된 포즈로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흰색을 사랑했던 화이트 홀릭, 휘슬러에게 연백은 치명적인 중독이었다. 그 특유의 색깔도, 그리고 그것의 성분이 납도 모두 그를 중독시켰다. 지속적인 연백의 사용으로 축적된 납은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현재에는 납중독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티타늄 화이트 등 여러 다른 백색 안료들이 연백을 대체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특유의 색을 위해 이 색을 사용하는 화가들이 존재한다. 여러모로 연백은 화가에게 치명적인 안료라 할 것이다.

치명적인 중독, 연백 (lead wh

한나라 에디터 flqlddkd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