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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예술가와 인간 그 사이,
오귀스트 로댕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예술가와 인간 그 사이, 오귀스트 로

오귀스트 로댕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오귀스르 로댕. 그는 근대 조각의 창시자이자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1840년 11월12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14살 때 국립 공예실기학교에 입학하여 조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갖가지 부업을 하면서도 그는 조각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1864년 살롱에 처음으로 출품한 <코가 깨진 사나이>라는 작품이 낙선하게 된 후 크게 실망한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건축 장식업에 종사하며 유럽각지를 여행하였다. 특히 이탈리아 여행은 훗날 로댕의 예술 세계에 커다한 여행을 끼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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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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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문

첫 실패 이후 13년만인 1878년 로댕은 <청동시대>라는 작품을 다시 살롱에 출품하는데, 살아있는 모델을 그대로 석고뜬 것이 아니냐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로댕은 드디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1880년 이 작품은 다시금 재조명되어 살롱에서 3등상을 받게 된다. 이후 로댕은 <입맞춤>,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발자크 상> 등 무수한 걸작들을 만들었다. 사실적 묘사와 함께 인간의 내면과 생명력을 담은 로댕은 서양미술사에서 세계 3대 조각 거장이라 불릴 정도로 근대 조각 예술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로댕은 확실히 그의 생애에 있어서 훌륭한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고 예술가로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단지 한 인간으로서 본 그의 삶을 어땠을까? 그가 한 말(이젠 명언처럼 치부되어버린) 중엔 ‘중요한 것은 감동을 받고, 사랑하며 소망하며 요동하며 사는 것이다. 예술가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 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겐 명언이 되었을 이 말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익히 들어왔던 내겐 매우 모순적이고 가식적인 말로 들렸다. 예술가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고 말했던 로댕. 그는 그의 말처럼 예술가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었을지 의문이 든다.

 

그의 인생에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한‘ 이라는 핑계로 만남을 가져왔던 여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 수많은 여자들 중 로댕의 인생사를 논할 때 빼놓지 말아야할 인물이 두 명이 있다. 로즈뵈레와 까미유끌로델이다. 로즈뵈레는 로댕의 곁을 한평생 지켜온 여인으로 로댕보다 4살 어린 재봉사였다. 그녀와 로댕은 동거를 했고 아들 오귀스트 외젠 뵈레를 낳았다. 그러나 로댕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로즈뵈레와의 결혼을 피해왔고 1917년 로즈뵈레가 생을 마감하기 2주전에서야 로즈뵈레를 부인으로 인정하며 결혼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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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 끌로델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이 로즈뵈레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와중에 만난 여자였다. 어리고 예쁘며, 조각가로서도 재능이 있던 까미유는 로댕과 함께 사랑에 빠지면서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리고 순수했던 까미유에게 로댕은 첫사랑이었으나 로댕에게 까미유는 그간 만나왔던 수많은 여자들 중 한명이었다. 까미유에게 사탕발린 말로 유혹하던 로댕은 그녀가 결혼하기를 원하자 결국 까미유를 버리고 오랜 기간 그의 곁을 지켜왔던 로즈뵈레에게로 돌아갔다. 당시 사회는 능력 있고 돈 많은 남자의 여성편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홀로 남은 까미유만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고 작품 활동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륜녀로 불리며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뒤 정신병적 증세를 보여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후 까미유는 숨을 다할 때까지 정신병원에서 홀로 고독하게 늙었다.

 

로댕은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오고 아들까지 낳은 여자를 한평생 외면하다가 죽기 전에서야 부인으로 인정하는 매정함과 어린나이에 과감 없이 자신을 사랑해준 여인을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잔인함을 가졌다. 명언처럼 굳어버린 예술가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고 말했던 그에게 모순적임을 느낀다. 예술적 영감을 받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두 여자의 인생을 비극적이게 만들었던 그는 예술가이기 전에 그가 내뱉은 말대로 인간이 되었어야 했다.

 

죗값이라도 치룬 것일까 로댕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었다. 항상 곁에서 지켜주었던 로즈뵈레가 떠난 이후, 로댕에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독감으로 폐가 완전히 망가졌던 그는 병원비가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추운 날씨에 난방도 때지 못했다. 결국 그는 1917년 11월 17일 동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큰 인기와 명성을 누리던 그의 마지막엔 아무도 없었던 것을 보니 그가 예술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살아온 삶이 어땠을지 감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훌륭한 예술과 다수의 명언을 남겼던 로댕이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파고드니 인간으로서 갖춰야할 인성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말한 대로 예술가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춰야할 인성을 갖추고 살았더라면 그의 마지막은 조금 더 따뜻하지 않았을까.

 

이미지 출처: 구글이미지

박윤진 에디터 dbswls57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