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아이유가 재정의하는 ‘말괄량이’ – ‘삐삐’
아이유의 옐로카드가 10년차 아티스트의 출사표처럼 보이는 이유는
“데뷔 10주년 독보적 아티스트 아이유”
아는 형님은 아이유의 출연을 예고하며 위와 같은 문장을 썼다. 여자출연자들에게 짧은 교복치마를 입히고,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 남자 연예인들이 가득한 그 프로그램에서조차도 아이유는 ‘아티스트’다. 5년 전만 해도 전혀 몰랐을 결과다. ‘좋은 날’이 아무리 성공했어도, ‘너랑 나’에서 아이유가 아무리 귀여웠어도 아이유는 ‘국민 여동생’, ‘러블리’, ‘실력파’, ‘예쁜’ 여가수라고 불렸다. 요정 혹은 여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연스럽게 신격화되고 동시에 상품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이유는 ‘아티스트’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악 비평에서 가수가 아티스트로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음악 색을 드러내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음악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아이유는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CHAT-SHIRE] 앨범을 스스로 프로듀싱했고, 로엔엔터테인먼트(현 페이브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한 뒤로 더욱 활발하게 자신의 음악 세계를 주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정점 혹은 지금까지의 관계 정립처럼, 아이유는 다시 한 번 당당하게 짚고 넘어간다. 나는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것이니까 걱정들 하지 마시라고.
데뷔 10주년 기념 싱글 앨범 ‘삐삐’가 발매되었다. 10대 팬미팅에 다녀온 내 동생도 몰랐을 정도로 팬들에게는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아이유는 깜짝 선물처럼 ‘삐삐’를 발표했다. 아이유가 처음 시도하는 얼터너티브 알앤비 장르로, 경쾌하게 쌓이는 비트와 직설적이고 쿨한 가사가 특징이다. 아이유와 여러 번 호흡을 맞춘 이종훈 작곡가가 곡을 쓰고, 아이유가 가사를 썼다. 3집 [Modern Times] 때만 해도 아이유의 참여는 주로 자작곡(Voice mail, 금요일에 만나요)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CHAT-SHIRE] 앨범을 기점으로 아이유는 발표하는 대부분의 곡의 작사까지 참여 범위를 넓혔다. 전달할 메시지를 직접 정하는 것이다.
이번 곡은 선을 넘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한 옐로 카드다. 이는 아이유의 주변 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무례한 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포인트다. 이 경고 메세지에서 웃음이 나는 포인트는 이 곡의 톤앤매너다. 경고지만 무척 쿨하고, 쿨하지만 무척 뼈가 있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제목부터. 제목 ‘삐삐’는 경고음이기도 하고 ‘말괄량이 삐삐’의 주인공 삐삐 롱스타킹이기도 하다. 경고음 ‘삐삐’가 가사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면 ‘말괄량이 삐삐’는 뮤직비디오에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뮤직비디오 속 아이유의 스타일링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 중 가장 다양하며 실험적이다. 옐로 레오파드 프린팅의 베레모와 자켓, 옅은 보라색의 드레드락, 주황색 양갈래 땋은 머리, 화려한 프린팅의 스카프 레이어링, 심지어 투명 플라스틱 소재의 옷까지. 하나로 정리될 수 없다는 것으로만 요약할 수 있다. 이 종잡을 수 없음은 인형 같은 표정을 하던 2집 [Last Fantasy] 앨범 커버 속 아이유의 수동성을 지우고, 이를 스물 여섯 아이유의 주체성으로 대체한다.
‘말괄량이’라는 단어가 가진 뉘앙스는 다소 부정적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말괄량이’는 길들임 당해야 할 대상이었다. 남편이 말하는 바에 곧이곧대로 순응해야만 말괄량이가 아니라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달을 보고 해라고 하는 헛소리더라도. 말괄량이 주인공은 남편의 뜻에 동의하는 것이 고분고분한 아내의 역할이라고 교육받는다. 결국 그 책은 말괄량이가 아닌 정숙한 여인이 된 딸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던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지금, 아이유가 말하는 ‘말괄량이’는 다르다. 아이유는 스스로 말괄량이 삐삐가 되어 ‘말괄량이’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하고, 그 이름을 차용하여 경고음을 울린다. 이것이 바로 국힙의 펀치라인! 아이유는 길들여지고 바뀌어야 말괄량이가 아니다. 그의 개성은 하나로 통일조차 안되는 대중의 상상 혹은 이상과 다를 뿐이다. 이는 주황색 조끼일 수도 있고 노란색 레오파드 자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아이유가 ‘상상 속의 아이유’로 남길 바라며 제멋대로 그를 규정짓는다. 여기에 아이유는 노란 색 선을 긋고, 이 선을 넘으면 정색할 것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
제목 뿐 아니라 가사 전반에서도 아이유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참견을 직시한다.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걱정이야 쟤도 참
(중략)
꼿꼿하게 걷다가 삐끗 넘어질라 다들 수군대는 걸 자긴 아나 몰라
요새 말이 많은 걔랑 어울린다나? 문제야 쟤도 참’
그러니까 이건, 몰래카메라를 하다가 사실 주인공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역으로 내가 당하는 상황에서의 기분 같은 것이다. 아이유가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옷, 사생활,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해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당혹스러움 그리고 머쓱함. 그래 맞아, 이건 선을 넘은 거였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무표정으로 쿨하게 주머니에서 꺼내는 옐로카드의 힙함이란. (이 뮤직비디오에서 아이유는 단 한 순간도 미소 짓지 않는다.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건 당신이 아이유의 사랑스러움에 감탄하다가 한 편으로는 그의 센스 있는 옐로카드에 머쓱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유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는 자신를 영악하다고 좋아하고, 누군가는 그래서 싫어한다고,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그게 다 자신인가보다-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유는 ‘그게 다 나인가보다’라는 체념적 서술보다는 ‘이게 나야’라는 능동적 소개가 더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지만 공통점은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것’이란 자신감. 그것이 아이유가 무표정으로도 ‘삐삐’를, 그동안 참아왔던 옐로카드를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이유다. 옐로카드가 앞으로의 출사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나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