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언제까지 사과만 해야 하나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며칠 전, 아이돌 그룹 ‘러블리즈’의 멤버가 인터넷으로 실시간 방송을 하다 욕설을 한 것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해당 영상은 일파만파 퍼지고 순식간에 관련 기사가 뉴스 연예란을 점령하며 관련 검색어도 차트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소속사는 해명 및 사과문을 냈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달군 논란은 단순히 욕설 자체에 대한 비판에 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방송 당시 러블리즈 멤버가 볼 수 있는 채팅창에 악플 및 성희롱 댓글이 달렸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멤버의 욕설을 이해한다는 반응이 비판으로 떠들썩하던 여론에 반기를 든 것이다. 멤버의 욕설이 실제로 악플을 보고 행해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성 아이돌이기에 마주했을 수년 동안의 악플과 성희롱은 묵과된 채 단 한 번의 욕설에 대중의 용서를 구해야 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여성 아이돌을 보는 시선이 어떠한지 함축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이는 여성 아이돌에게 상대적으로 모욕적인 언사가 쉽게 행해지는 경향성과 여성 아이돌과 남성 아이돌의 욕설에 관한 반응이 상이하게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전자는 주로 남성 팬, 후자는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을 주체로 행해지며 두 갈래의 시선은 여성 혐오라는 교차점에서 만난다.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를 내포한 시선들이 여성 아이돌에게 어떠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지 분석하며 그들이 처한 부정적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남자가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지

흔히 여성 아이돌을 ‘극한직업’이라고 부른다. 특히 남성 팬이 많은 경우 그렇다. 남성 팬이 여성 아이돌에게 장난을 치고, 짓궂게 놀리며 심지어는 울리기까지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룹 ‘우주소녀’의 팬 사인회에서 한 남성 팬이 멤버를 향해 축구선수의 이름을 대며 그를 아느냐고 물었고, 다른 남성 팬들과 함께 킬킬대며 웃자 멤버는 그게 자신에 대한 조롱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불쾌감을 표했다. 그들은 멤버가 잘 모르는 ‘축구선수’라는 소재로 자신들만의 은어를 만들고 해당 축구선수와 멤버가 닮았다는 뉘앙스로 면전에서 그의 외모를 조롱한 것이다. 아무도 저지하는 이가 없었다. ‘남성성’을 대표하는 하위문화를 매개로 결속하고 연대를 구축하여 여성을 소외 및 대상화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이 남성 팬을 주체로 한 팬덤 문화를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남성 팬에게 여성 아이돌은 그래도 되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으면 안 되는, 인형 같은 존재.

걸그룹, 언제까지 사과만 해야 하나

서두에 언급한 그룹 러블리즈의 팬 사인회에서는 남성 팬이 멤버에게 볼살을 만지게 해달라고 요구한 사례가 있다. 팬 사인회에서는 보통 악수를 하거나 손을 잡는 행위를 제외한 신체 접촉은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며 처음 만난 사람 간의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팬의 무리한 요구에 멤버는 자신의 볼을 내줬고 사람들은 멤버의 표정이 떨떠름해 보인다며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팬 사인회에서는 남성 팬이 치마를 입은 멤버에게 다리를 올려보라고 거듭 요구하며 성희롱을 가했다. 벌칙으로나 시킬 법한 애교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다. 계속된 요구에 러블리즈의 멤버가 반대로 남성 팬들에게 애교를 보여 달라고 하자 남성 팬들은 야유했고, 멤버는 “우리한테는 맨날 시키시면서”라며 일갈했다. 그렇다. 남성 팬들은 ‘맨날’ 그래왔다.

 

며칠 전 러블리즈에게 가해진 악플과 성희롱이 실제로 남성 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안티 팬이 할 법한 말을 팬이 했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든 사실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팬’들의 소행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동안 펼쳐진 수많은 사례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아티스트의 서비스를 소비하는 팬이 아티스트 개인에 대한 사적인 소유욕을 품게 함으로써 소비를 부추기는 아이돌 산업의 마케팅 전략은 젠더 권력의 여성 혐오와 만나 남성 팬의 저열한 인식을 배양한다. 물론 모든 남성 팬이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성 팬이 여성 아이돌에게 무례를 범하는 일이 여성 팬이나 남성 아이돌의 경우에 비해 매우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이 구축된 배경을 면밀히 살펴볼 때,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정치성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룹 ‘여자친구’의 팬 사인회에서는 남성 팬이 몰래카메라를 부착한 안경을 착용한 후 사인을 받아 멤버의 불법 촬영을 시도한 일이 벌어졌다. 안경의 특이한 모양새에 눈치를 챈 멤버는 팬에게 해당 사항을 지적하고 관계자에게 제재를 부탁했다. 멤버가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퍼지면서 불법 촬영의 실태를 비판하고 여성 아이돌을 걱정하는 여론이 일었으나 일부 누리꾼들은 멤버의 대처가 과했다며 오히려 멤버를 비난했다. 팬이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면 그럴 수 있어, 네가 참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적인 여성들이 남성 또래와 어울리기 시작하는 태곳적 순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다. 여성 아이돌을 향한 무례가 범해졌을 때 그 주체를 흔히 남성 팬으로 상정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자가 좋아하면 여자에게 그럴 수 있다’라는 합리화를 통해 고착되고 주입되는 남성과 여성의 소유 종속 관계에 대한 도식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을 조롱하고, 욕하고, 울리고, 성적으로 모욕하고, 허가 없이 카메라에 담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으로 삼아도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며 그것은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손쉽게 참작된다.

걸그룹, 언제까지 사과만 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아이돌은 참아야 한다. 사실 러블리즈의 멤버가 무심코 뱉은 욕설은 채팅창을 메운 악플과 성희롱의 수위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건 이후 멤버에게 쏟아진 포화 같은 비판들은 마치 그 멤버가 모든 것을 함구했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앞에서 언급한 다른 사례들에서도 멤버가 남성 팬의 무례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비치면 순식간에 ‘드센 여자’가 되어 예외적인 여성 아이돌로 분류되었다. 불법촬영을 하든, 성희롱을 당하든 ‘참아야’ 이상적인 여자가 된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남성의 욕, 여성의 욕

이는 남성 아이돌의 욕설에 대한 반응이 상이하게 나타나는 현상과도 관련된다. 똑같은 아이돌이지만 남성 아이돌의 욕설은 가벼운 유머로 취급되며 오히려 친근함이나 ‘남성성’을 보여주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심지어 욕설을 하는 모습을 모아놓은 영상이 유머로 소비되며 방송에서도 웃음 유발을 위해 묵음 처리된 상태로 거리낌 없이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사과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들을 지탄할 생각은 아니다. 가벼운 욕설은 옳은 일은 아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이므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여성에게만 엄격하게 사과를 요구하는 풍조는 분명 잘못되었다. 모욕에 불만을 품고, 따지고, 화를 내는 여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획일적 여성상의 강요는 여성 아이돌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여성을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중하지 않고 남성의 조작법대로 움직이는 인형 취급하는 차별적 시선은 남성 팬에게 갑의 위치를 부여하며 다양한 양상으로 여성 아이돌에게 비수를 꽂는다. 여성 아이돌이 여성 혐오의 사지로 내몰리는 동안 제작자 및 기획사는 방관하거나 혹은 더욱 부추긴다. 남성 팬의 충성심을 유발하기 위해 제작자들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상을 투영한 가사와 콘셉트로 인형 같은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렇게 아티스트의 주체성은 지워지고 여성 아이돌은 젠더 권력이 가하는 위협에 더욱더 쉽게 노출된다. 러블리즈의 기획사는 협소하고 난잡한 공연장에서 무대에 오른 러블리즈를 남성 관객들이 위협적으로 접촉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저지하거나 아티스트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팬 사인회에서의 신체 접촉 및 성희롱 역시 제재하지 않았다. 이번 논란의 해명문에서도 악플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강조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비단 러블리즈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기획사의 방관과 소극적인 움직임은 여성 혐오의 대표적 타깃이 되어가고 있는 여성 아이돌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아가고 있다.

#러블리즈_죄없어

논란 이후 트위터 등 SNS에서는 ‘#러블리즈_죄없어’, ‘#러블리즈_기죽지마’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러블리즈를 응원하는 게시글들이 올라왔다. 동시에 남성 팬과 그들을 관통하는 여성 혐오적 사회 인식이 여성 아이돌을 위협하고 있는 실태에 대한 고발도 뜨거웠다. 러블리즈를 모르던 이들도 함께 이 해시태그에 동참하여 러블리즈를 응원하고자 한 이유는 러블리즈와 여성 아이돌을 위협하는 젠더 권력이 한국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해야 했고, 기가 죽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그들은 죄가 없다. 누가 진짜 죄를 짓고 있는지에 대한 재고찰이 필요한 때다.

 

조현정 에디터

2019.02.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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