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어린 괴물'을 '아이'로 만드는 포옹 - 도희야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도희야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도희'(김새론)에게 폭력은 일상적인 일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도희에게 행해지는 가혹한 폭력을 아이는 무기력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도희에게 서울에서 온 파출소장 '영남'(배두나)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유일한 사람이다. 도희는 자신을 구원해 준 영남의 손을 놓지 않으려 하고, 집착하게 된다.


한편 도희의 폭력적인 계부 '용하'(송새벽)는 자기 일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영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남의 비밀을 알게 된 용하는 이를 이용해 영남을 사회에서 배제하고자 한다.

폭력의 메커니즘 안에서

도희의 첫 등장 장면에서 아이의 얼굴은 긴 머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도희의 손에 잡힌 개구리를 클로즈업한다. 도희가 개구리에게 무당벌레를 들이밀자 개구리는 무당벌레를 잡아먹는다. 도희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먹이사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강자와 약자의 위치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알고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인 모습이다. 가정과 학교에서의 끊임없는 폭력 앞에 도희는 언제나 약자였고 피식자였다.


작은 어촌에서 고령화는 심각한 문제다. 용하는 유일하게 젊은 남자고, 동네를 굴러가게 해주는 존재다. 그렇기에 그의 많은 잘못은 용인된다. 도희 역시 용하의 울타리 안에 있는 그의 소유이기 때문에 그저 술만 탓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외부인이 개입하기는 어렵다. 영남은 도희가 폭행당할 것을 알면서도 가족이 아니기에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도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순간은 용하의 가족이 해체되었을 때이다.


도희는 약하고 무기력하지만, 자신이 숨 쉴 방법을 찾아내는 아이다. 바다에 빠지지 않고 춤을 추는 아이다. 폭력에 오랜 시간 노출된 도희는 영남에게 집착한다. 영남의 모자를 써보고, 같은 수영복을 입고, 같은 모양의 머리로 자른다.


처음 받아본 따뜻한 애정에 보답하는 방법을 모르는 도희는 자신의 특기대로 영남을 따라 하고, 자신을 버릴까 봐 스스로 벌을 준다. 영남을 독점하고자 하는 도희의 자학은 안타깝다. 잘하면 맞지 않고 버려지지 않으며 잘못을 하면 맞고 버려지는 가정 폭력의 메커니즘은 아이의 몸과 마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도희는 자신을 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구해달라고 영남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린다.


괜찮으냐고, 배고프냐고 물어봐 주고 밥 먹여주고 재워주는 그 기본적인 보호는 도희에게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하지만 영남이 용하의 고소로 경찰에 잡혀가자 도희는 또다시 스스로 약자의 위치에 서서 영남을 구한다. 도희는 따라 하는 것과 거짓말에 능하다. 어른들이 믿을만한 이미지를 던져주고 그들이 원하는 말을 들려준다.


결국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폭력의 메커니즘을 이해해야만 했고,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력의 메커니즘을 이용했다.

경계 밖의 사람들

보수적인 경찰 조직 내에서 영남은 동성애를 이유로 지방 발령까지 받는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에도 동성애는 영남의 가장 큰 약점이 된다. 이때 영남을 바라보는 주변 남성 형사들의 눈빛은 동료를 바라보는 눈빛이 전혀 아니다. 이들에게 영남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다.


영남이 용하와 불법 체류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자 마을 사람들은 영남을 탓한다. 작은 마을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영남은 파출소장이지만 철저한 외부인으로 취급된다. '계급장 단 젊은 년', 심지어 외부인인 영남이 마을의 원동력인 용하를 끌고 가자 마을 사람들은 면전에서 영남을 힐난한다.


마을은 일할 젊은 사람이 부족해서 불법 체류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그들의 자유를 앗아가며 유지되고 있다. 불법 체류자인 이들은 노동은 해야 하지만 보호받지는 못한다. 사회의 경계 밖으로 내몰린 이들에게는 어떤 발언권도 없다. 유치장에 갇힌 불법 체류자 바킴과 영남의 병렬된 쇼트는 그들이 경계 밖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반면 용하는 경계 내의 사람이다. 용하는 바킴과 손쉽게 합의를 한다. 도희와 영남은 성추행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용하의 주장으로 미성년자 성추행범이 확실시된 영남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결국, 영남이 갇힌 가장 큰 이유는 용하의 심증과 발언이다. 용하는 쉽게 발언권을 얻으며, 사람들은 그의 말을 쉽게 믿어준다.


그러나 용하에게 너그러운 사회도 기반을 뒤흔들 금기 앞에서는 그를 봐주지 않는다. 도희는 사회에서 배제된 아이지만 사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사회 안팎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을 속이는 모습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도희를 의경처럼 불편한 '어린 괴물'이라 여긴다.


하지만 영남은 도희를 '어린 괴물'로 내버려둘 수 없었다. 괴물들 틈에서 자란 아이의 처절한 생존방식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하고 갈래?"

몸과 마음이 엉망인 아이를 구원해 줄 사람은 엉망이었던 어른뿐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가다듬고 다시 빗속으로 향한다. 앞으로 험한 길을 걸어가겠지만, 도희는 마음 놓고 잘 수 있다.


김채영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