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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그로테스크함의 천재,
퀘이 형제의 전시에 다녀오다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인형의 숨'에 주목하여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를 승낙한 이유

먼저 내가 동경하는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기에 과연 그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또 어렸을 적부터 < 쏘우 >, < 그것 >, < 컨저링 >과 같은 공포물을 좋아했던 나기에 초현실적인 그로테스크함을 체험할 수 있다는 퀘이 형제의 전시회를 다녀오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며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는 놀란이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단 점을 미루어 볼 때, ‘인셉션’의 무의식 속 초현실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그 결과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들의 초대를 승낙하게 되었다.

퀘이 형제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쌍둥이 형제인 스티븐 퀘이와 티모시 퀘이는 1970년대부터 영국에서 영화감독이자 애니메이션 감독 겸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들은 애니메이션, 실사영화,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들의 작품은 산업사회 이면의 부조리와 불안, 초현실주의, 에로티시즘과 나르시시즘 같은 철학적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이 상당히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칸영화제 단편 경쟁작 <악어의 거리>(1986) 가 있다.


그들은 특히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외에도 니콘, 코카콜라 같은 텔레비전 광고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펼쳐 나가고 있다.

구성

퀘이 형제 :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는 6가지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미술, 사진 문학, 설치같은 다양한 장르 간의 융복합 전시로 퍼핏 애니메이션(나무, 철사,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인형을 조금씩 변형시켜서 이를 한 장면씩 끊어서 촬영한 애니메이션), 도미토리움, 초기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등 총 10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인형의 숨과 그 뼈대’에 주목하자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단언컨대 ‘인형의 숨’이라고 할 것이다. 퀘이 형제의 가장 최신작인 2019 ‘인형의 숨’. 이에 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퀘이 형제의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수수께끼 같은 장치들에서 영감을 받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들과 함께 한 작품이다. 이는 < 다크 나이트 >, < 인터스텔라 > 등 유명 작품들에 참여한 영화 제작사 Syncopy Inc.의 의뢰를 받아 제작되었으며, 우루과이 작가 펠리스베르토 에르난데스의 ‘수국’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주인공의 강박관념으로 인한 사랑, 배신, 질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등장하는 인형으로 관절이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The Doll's Breath "Maria's Revenge"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The Doll's Breath "Horacio, Horacio as Child&Manikin"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The Doll's Breath "Loplop Assassinating Hortensia"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3가지의 괴상하고도 독특한 감성의 인형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각각의 매력과 서사를 지닌 인형은 움직이지 않아도 생동감이 느껴졌다. 기묘한 신체와 그 생김새, 날 것 그 자체로의 구성과 배치. 조그맣게 보이는 눈은 마치 관객들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조종하는 인형 술사가 있다면, 퀘이 형제가 바로 그 주인공이 아닐까? 인형은 정지된 상태로 멈춰있었지만, 무슨 얘기를 끊임없이 전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영화 속 인물을 그대로 가져와서일까? 전시를 보면서 이렇게나 섬뜩하고 오싹한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Wuchan Kim

‘인형의 숨’의 뼈대는 바로 옆쪽에 전시되어 있다. 스톱모션(물리법칙과 시간의 연속성을 배제할 수 있는 표현기법) 애니메이션 퍼핏의 금속관절 뼈대 제작자로 한국 최초의 아마추어 스페셜리스트인 김우찬의 작품이다. 그는 팀 버튼의 < 유령 신부 >, 예능 < 무한도전 >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4년 퀘이 형제가 그에게 직접 작업을 의뢰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스톱 모션에 있어 뼈대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 이유는 한 프레임에 한 움직임을 정확히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뼈대는 퀘이 형제로부터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뼈대는 그 자체로 굉장히 탄탄하고 견고해 보였다. 이를 만드는 데 2개월이나 걸렸다니, 그의 노력이 막혀있는 유리를 넘어서까지 전달되었다. 작품과 비교해서 봤을 때, 이렇게나 큰 뼈대가 어떻게 저 조그만 몸을 구성했는지 의문이다.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보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에 쏟은 열정과 노력이 눈앞으로 한층 다가와서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총평

이 작품 외에도 놀라운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도미토리움에서 ‘확대경’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고, 보였던 것은 또 다른 시각으로 보이며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방면의 시야로 보니 그 작품 또한 여러 번 보였다. 기존 전시에선 접하지 못한 신선한 방식에 계속 감탄사를 내뱉었던 것 같다.

Rehearsals for Extinct Anatomies "The Inscriber as forger"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나는 퀘이 형제에게 ‘그로테스크함의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들의 천재성에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모르겠다. 어떤 작품에서는 마치 박제된 동물을 감상하는 듯한 소름을 느꼈고, 다른 몇몇 작품에서는 정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극단적으로 공포감에 휩싸이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초현실적인 작품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전시를 보는 내내 숨죽이고 감상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영화 등 그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감상하며 놀란이 그들에게 빠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를 뒷받침해주는 표현력이 만나 놀랍도록 섬뜩하고 저릿한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퀘이 형제의 초대를 승낙하길 바란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Quay Brothers: Welcome to the Dormitorium)

  1. 일자 : 2020.06.27 ~ 2020.10.04
  2. 시간 :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3.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4. 티켓가격 : 성인 12,000원, 청소년 10,000원, 어린이 8,000원
  5. 주최 : 전주영화제, 예술의전당, (주)아트블렌딩
  6. 관람연령 : 전체관람가

최수영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