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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평범함 속 낯선 여행 그리고 음식

여수의 맛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평범함 속 낯선 여행 그리고 음식


불안한 기운이 여전히 온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오랜 시간을 익숙함과 마주하는 데 보내고 있다. 익숙함 속에서 나름의 새로움을 찿는 것에 제법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방구석에서의 새로움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낯선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감정은 두려움으로 발현돼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적응 체계가 마련되면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어 상상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


우리는 낯선 감정에 대한 열망을 주로 여행으로 풀곤 한다. 우리집 동네에선 볼 수 없었던 건물, 나와 전혀 다른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 그어놓았던 경계선을 넘고 싶게 한다. 하지만 그중 가장 우리의 구미를 당기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여행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여행지에서 먹어서 새롭게 다가온 음식도 있다. 전자의 경우 음식을 먹는 것 그 자체로 여행이 되며, 후자의 경우 음식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아 추억이 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식도락 여행이 된다. 필자에게는 여수에서의 여행이 그랬다. 여수 고유의 이야기가 있는 음식부터 여수의 색을 입은 음식까지, 여수의 맛은 필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에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여수 여행에서 먹었던 음식을 소개하고 이에 담긴 특별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서대회무침

서대회무침은 여수 여행을 계기로 처음 알게된 음식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서대라는 생선 자체가 여수 중심의 남해안 중서부 지방에서 주로 잡혀서, 그 외 지역에선 서대 관련 요리를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대회무침은 부드러우면서도, 살 안에 가시가 있어 까슬까슬한 식감이었다. 전반적으로는 새콤한 맛이 강한데, 이는 1년 이상 발효된 막걸리로 회를 무치는 게 서대회무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평소 회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지라 서대회무침은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이었다. 여행에서 먹은 첫 끼니가 아주 성공적이어서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식당 사장님의 친절함이 이 음식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사장님은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서대회무침을 만드는 방법과 함께 먹는 방법도 알려주시며,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셨다. 그래서인지 맛 없으면 어떡하나 고민하기보다 맛있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음식을 잘 먹음으로써 다음 여행지로 잘 나아갈 수 있게 빌어주는 사장님이 고마웠다.


서대회무침을 다 먹은 후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전하자, 사장님께서는 "맛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며 나가려는 필자를 붙잡으셨다. 인터넷에 리를 남겨달라는 말인가 싶어 돌아보니, 사장님은 큰 달력과 펜을 꺼내 인사를 남겨달라고 부탁하셨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부러~ 이것도 다 인연인데 말 한 마디만 남겨주시쥬"

온라인 리뷰를 부탁하는 요즘 시대에, 달력에 손글씨를 남겨달라는 요청이 참 특별했다. 특히 '이것도 인연'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나 좋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냥 비즈니스라며 모든 관계를 단정지었던 필자에게는 서대회무침 하나만으로 이어진 인연이 낯선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또한 여행이 주는 낯선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돌문어삼합

돌산대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자산공원에 내린 후 하멜등대가 있는 부두로 가면 여수 낭만포차가 줄 지어 있다. 여행 갔을 당시인 7월엔 코로나19의 여파로 문을 닫은 포차가 많아 TV에서 봤던 낭만포차의 불빛 가득한 저녁을 볼 순 없었다. 어쩐지 휑한 낭만포차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옛날엔 그저 소음이었던 왁자지껄한 말소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다.


낭만포차 거리의 메인 메뉴는 돌문어삼합이다. 돌문어삼합은 메뉴의 이름에 걸맞는 싱싱한 문어와 삼겹살, 갓김치를 철판에 볶아 먹는 음식이다. 낭만포차 거리가 여수의 핵심 관광지인 만큼 음식의 가격을 비싸게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하지만 돌문어삼합이 낭만포차의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라는 점, 갓김치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사 먹을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낭만포차의 돌문어삼합을 먹는 것은 여수의 분위기를 먹는 것과도 같았다. 어둑한 가운데 잔잔하게 퍼지는 빛줄기, 여행자들의 발걸음과 웃음소리를 그 어떤 곳에서보다 확실히 담을 수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들로 인해 평범했던 문어, 삼겹살, 김치의 맛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나 보다.

평범함 속에서의 신선함, 이는 이번 여수 여행에서도 적용됐다. 국내 여행인 만큼 전혀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여수 지역만의 냄새를 생생하게 맡을 수 있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글로는 도무지 형용할 수 없는, 서늘하면서도 삼삼한 그런 냄새였다. 아마 어느 곳이든 직접 여행하는 자만이 그 장소의 냄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풍경 속 다른 냄새, 익숙함에 부여된 특별함, 내게 여수는 이런 곳이었다.


황채현 컬쳐리스트